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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총궐기는 저지됐다. 그러나…"

21일 농민총궐기, 경찰 원천봉쇄로 미약

2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청소년광장에 모인 1000여 명의 농민들은 '분노'를 애써 누르고 있었다. 쌀 재협상안 국회 비준을 저지하기 위해 아침밥도 거르고 상경한 이들의 '궐기'는 경찰의 철통봉쇄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이날 집회를 봉쇄하기 위해 모두 300여 개 중대, 4만여 명의 병력을 동원했다. 주요 고속도로와 국도에 배치된 경찰은 농민들의 상경을 사전 차단하는 데 성공했다. 5만 명 참여가 목표였던 이날 집회에 고작 1000명만 모였으니 말이다.

경북 영주에서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온 김의식(47) 씨는 경찰의 집회 원천봉쇄에 대해 강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김 씨는 "관광버스 6대를 마을에서 준비했지만, 이틀 전부터 공무원과 경찰들이 마을로 들어와 '올라가봐야 별 것 없다'고 협박과 회유를 했다"며 "결국 10명만 대표로 올라왔다"고 했다. 그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며 경찰과 정부에 대해 쓴소리를 내뱉었다.

'우리 농업 살리기 전국 농민 총궐기'라고 이름 붙여진 이날 집회가 무기력했던 것은 비단 경찰의 원천봉쇄에 기세가 꺾였기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김의식 씨가 전한 바에 따르면, 농민들은 이미 '무력감'에 휩싸여 있었다.

"서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지방에서는 쌀 협상 다시 하라고 하루가 멀다 하고 관공서와 농협 앞에서 야적시위도 하고 구호도 외치고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뭐 합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착착 국회 비준을 준비해가는데요. 마을 사람들 모두 지쳤습니다."

"농민들이 죽으면 우리 민족 다 죽는 걸 왜 똑똑한 서울 사람들이 모르는지 정말 답답합니다. 힘없고 빽없는 우리는 죽으면 그만이지만, 후일 이 대가를 누가 책임질지 노무현 대통령은 알는지 모르겠네요"

농민들은 쌀 재협상 국회 비준에 대해 자신감을 잃은 동시에 현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기대와 미련도 접고 있었다.

오후 2시경 시작된 본대회는 최근 음독 자결한 고 오추옥 씨에 대한 추모식으로 진행됐다. 농민단체 대표들이 추모시와 조사를 읊었고, '열사의 정신을 이어받아 농민의 힘을 보여주자'는 류의 투쟁발언도 이어졌다.

정광훈 전국민중연대 상임대표는 고 오추옥 열사의 자결은 정부에 의한 '사형집행'이라며, 모든 농민들이 '사형'을 기다리고 있다고 단언했다. 정 대표는 "초국적 자본이 만든 신자유주의 헌법 앞에 우리 350만 농민 모두가 사형대에 올라있다"고 덧붙였다.

오종렬 전국연합 상임대표는 "추수가 끝난 요즘 인절미 뽑고 막걸리 내놓고 모두 더덩실 춤을 춰야 할 때 우리 농민들은 열사의 영정을 앞에 두고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만여 년 동안 손가락이 갈퀴가 되도록 땅을 일궈 우리 민족을 먹여 살린 존재가 바로 농민"이라며 "우리 농업이 몰락하면 미국의 식량 메이저 그룹의 손아귀에 우리 민족의 목숨줄이 넘어간다"고 덧붙였다.

한편 집회 대오와 멀찍하게 떨어져 아이를 업고 서있는 한 여성 농민이 눈에 띄었다. 그는 고 오추옥씨와 함께 경북 성주에서 전국여성농민회 활동을 했다는 이현정(40) 씨였다. 그는 고 오추옥씨와의 기억을 더듬고 있었다.

"언니는 무척 쾌활하고 명랑한 성격이었어요. 힘든 농삿일을 하면서도 정부의 잘못된 농업정책만큼은 바꿔야 한다며 농민활동을 했던 활기찬 운동가이기도 했죠. 그런 언니가 이렇게 죽을 줄은 몰랐어요. 많은 농민들이 죽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 있던 사람이 죽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이 씨의 등에는 100일도 채 지나지 않은 갓난아기가 업혀있었다. 아이가 농사 지었으면 좋겠냐고 기자는 물었다.

"농민들은 모두 농사 짓는 일에 만족하고 있어요. 생명을 키우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농삿일이 기본적 생활이 안 되니까 이렇게 싸우는 거 아니겠어요? 저도 쌀 재협상안 국회 비준이 되면 농사를 계속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농사는 누군가는 계속 지어야 하는데…"

바람이 거세지자 집회장에는 소주잔이 돌았다. 얼큰하게 취한 농민들은 문화공연마다 더덩실 춤을 추기도 하고 박수를 치기도 했다. 쌀 재협상안 국회 비준을 앞둔 백척간두의 시기에도 농민은 농민이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의 한 관계자는 이런 모습을 보고 "이렇게 순박한 농민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집회는 짧았다. 경찰은 연이어 선무방송을 통해 '집회 해산'을 종용했다. 농민들은 집회를 서둘러 마치고 계획 대로 거리행진을 시도했다. 행진대오 맨 앞에는 고 오추옥 열사의 영정이 자리잡았다. 방송차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농민가'에 맞춰 농민들은 한 발 한 발 전진했다.

하지만 행진은 길지 않았다. 국회로 가는 길목에 이미 기다리고 있던 경찰들에 의해 수백 미터 못 가서 전진하지 못했다. 1000명 남짓한 농민들은 '국회에 가서 농심을 전해야 한다'고 악다구니를 써봤지만, 잘 훈련된 전투경찰이 몸으로 만든 바리케이트를 넘어서지 못했다.

결국 집회를 주최한 지도부는 현실적 결단을 내렸다. 경찰에 막혀 한 치도 못 나가는 상황에서 악다구니를 싸봐야 지칠 뿐이란 것이다. 농민들은 국회가 먼발치로 보이는 마포대교 남단에서 정리집회를 하고는 이날의 '전국농민 총궐기' 행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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