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분기(4-6월) 경제성장률이 2.3%로 5년 만에 가장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자 정부와 일부 언론에서는 "이제 경기가 바닥을 찍은 게 아니냐"며 크게 환호했다. 기획재정부가 전망했던 2분기 성장률 1.7%보다 0.6%포인트가 높은 수치다.
그러나 2분기의 '반짝 성장'은 오히려 3분기 성장률에 부담을 준다. 2분기 성장률이 높아짐에 따라 기저효과 때문에 전기 대비 3분기 성장률이 당초 예상했던 1.0%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정부는 또 3분기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비상'이 걸렸다. 이명박 대통령이 27일 라디오.인터넷 연설에서 "출구준비는 아직 이르다"는 입장을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확장적 재정.금융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3분기 성장률 0%대 예상…'비상' 걸린 정부
문제는 '실탄'이 없다는 것. 이미 올해 상반기에 전체 계획 대비 재정지출 규모의 65% 가까이 쏟아 부었다. 따라서 하반기에 풀 수 있는 재정은 상반기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최근 유가 상승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경상수지 흑자 폭도 축소되고 있다. 수출보다 수입이 더 크게 줄면서 지난 2월부터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고, 지난 5월까지 누적 흑자액은 164억 6000만 달러였다. 원인이야 어찌됐든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는 시장에 긍정적인 시그널로 작용했는데, 하반기 들어 추세가 반전될 수 있다는 것.
또 상반기 소비 촉진에 가장 큰 역할을 담당했던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가 지난 6월 말로 끝났다. 한국은행은 재정지출과 노후차 세제혜택의 성장률 기여도를 각각 1.9%포인트, 0.8%포인트로 추정했다.
'돈 없는' 확장정책
다른 세제 지원책을 쓰자니 재정 적자가 부담이다. 소득세 및 법인세 인하 등 대대적인 감세정책으로 올해 11.2조 원의 세수가 부족할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확장정책을 쓰자면 재정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오히려 세금을 늘려야 한다. 최근 술, 담배세 등 '죄악세' 논란에서 드러났듯이 조세저항은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 현 시점에서는 소득세,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양도세 등 '부자감세'를 위해 '서민증세'를 하겠다는 모양새가 돼 버린다. 그리고 세금 인상은 소비를 위축시켜 경기회복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처럼 '돈'과 뾰족한 정책적 수단도 없는데 확장적 정책 기조는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결국 정부가 찾은 답은 '비즈니스 프렌들리'다. 정부의 경기부양책이 한계에 봉착한 만큼 소비와 투자가 살아나야 하는데 이를 위해 각종 규제완화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최근 강연에서 "한시적 규제 유예제도를 도입하고 규제 일몰제를 확대하는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며 기업들의 투자를 독려하기도 했다. 정부는 이미 지난 2일 이 대통령 주재로 열린 민관합동회의에서 20조 원 규모의 설비투자펀드 도입, 연구개발(R&D)에 대한 세액 공제 확대 방침 등을 밝힌 바 있다.
경제위기에 따른 세계 수요 위축과 경기의 불확실성 등 향후 전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과연 기업들이 정부가 기대하는 수준만큼 투자를 확대할 수 있을까? 기업들의 투자 확대는 돈을 번다는 확신이 있을 때 일어나는 것이지 정부가 읍소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따라서 정부가 기업 투자 확대를 대가로 기업들이 요구하는 규제를 풀어주지만 정작 투자는 늘어나지 않는, 이명박 정부 들어 반복된 일이 이번에도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 대통령은 27일 확장 재정기조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로 "성장을 해야 서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고 하지만 가장 직접적인 혜택은 대기업들에게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반짝 성장' 위해 부동산 거품 키워?
또 당분간 확장적 재정.금융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은 한국은행에 당분간 기준금리를 올리지 말라는 주문이기도 하다. 정부의 확장적 재정.금융정책의 결과로 나타난 풍부한 유동성과 연 2.0%라는 저금리는 최근 들어 강남 등 일부 지역의 부동산 투기를 야기하기도 했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9일 "집값이 여기에서 더 올라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경고하는 등 이번 달 들어 한국은행에서 부동산 투기에 대해 3번의 경고가 나왔다.
집권 이래로 종부세 및 양도세 완화, 재건축 규제 완화, 투기지역 해제 등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을 계속해온 이명박 정부가 최근 들어 주택담보대출(LTV) 규제 방안을 발표하는 등 투기억제책을 내놓은 것도 심상치 않은 부동산 시장의 분위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부동산 투기를 잡는데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보는 이들은 많지 않다.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은 당장에 경제성장률을 높이는데 도움을 준다. 재정정책 등 다른 정책적 수단은 '약발'이 떨어져가고 있는 상황에서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인 셈이다. 최근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투기억제책이 실효성이 거의 없는 미온적인 정책에 그치고 있다는 점도 이런 의심을 갖게 만든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28일 <프레시안> 칼럼에서 "금융적 완화정책을 과도하게 오래 끌고 감으로써 자산시장의 버블 내지 인플레이션 압력을 방치하는 것이야말로 서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최악의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블룸버그> 통신의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은 27일 '빠른 회복 신호는 그 자체가 거품(Call for Rapid Recovery Is Bubble All Its Own)'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지역 경제들이 회복하는 조짐을 보이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약효가 떨어지는 대규모 경기부양책의 효과"라면서 "이런 정책은 장기적 해법이 아니라 단기적 처방이며, 경제성장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산거품이 새롭게 형성될 뿐"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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