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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유럽의 꿈은 어떻게 무너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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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19세기 유럽의 꿈은 어떻게 무너졌나"

[홍기빈과 함께 읽는 칼 폴라니③]자유주의 삼위일체와 사회의 자기보호 운동

'위기의 시대에 읽는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세 번째 강연에서는 인간과 자연을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으로 만든 자유주의 경제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살핀다.

자유 시장과 제도적 규제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게 많은 이들의 믿음이다. 하지만, 칼 폴라니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말한다. "자유방임 경제는 중앙계획을 통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중앙계획은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통념과 달리, 자유 시장은 인간의 이기적 본성에 의해 저절로 생겨난 게 아니다. 금본위제를 비롯한 몇 가지 제도를 통해 인위적으로 지탱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유 시장이라는 인공 구조물이 세계를 평화와 풍요로 이끌리라는 19세기 유럽인들의 믿음이 허구로 드러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믿음이 깨진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제국주의 전쟁이었다. <편집자>

첫 번째 강연 : "폴라니는 마르크스나 케인스 아류가 아니다"
두 번째 강연 : "모든 빈민을 죽게 두라"… 자유주의의 탄생

21세기 경제학과 14세기 의학

세 번째 강연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경제 전망을 업으로 삼는 이들이 종종 나온다. 불과 일주일 전에는 세계 경제 전망이 어둡다고 말했던 이들이, 금세 전망이 좋다며 말을 바꾼다. 이런 이들이 내놓는 전망을 소개해야 하는 처지가 되면, 자괴감을 느낄 때가 많다.

그 때마다 드는 생각이 "21세기 경제학 발달 수준이 14세기 유럽 의학 발달 수준과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것이다. 14세기 팔레스타인 출신 유태인 의사가 유럽을 방문한 기록을 읽은 적이 있다. 유럽 의사가 다리를 다친 사람을 치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식이다. 의사는 환자에게 다리를 자르면 살고 안 자르면 죽는다고 말한다. 그럼 환자에겐 무슨 선택지가 있겠나. 다리를 자르는 수밖에. 그런데 막상 다리를 자르니까, 환자가 쇼크로 죽었다. 비슷한 이야기가 많다. 정신이 이상하다며, 두개골에 구멍을 내고 소금을 뿌리는 장면도 나온다. 지금 우리가 보기엔 황당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19세기 초만 해도 유럽 의사들이 만병 통치술로 여겼던 게 피를 뽑는 것이었다.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도 이런 치료를 받다 죽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런 치료가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을 몰랐을까. 그렇지 않았으리라고 본다. 그런데 이런 황당한 치료가 횡행한 이유가 뭘까.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에, 그게 가장 권위 있는 의학 지식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최근 경제학자들이 세계 경제에 대해 내놓는 처방을 보면, 옛날 유럽 의사들을 떠올리게 된다. 이런 말이 어떤 이들에게는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아주 긴 역사적 시각으로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경제학자들이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이야기를 해도, 별 반발이 생기지 않는 이유가 뭘까. 아마 그들이 권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전 세계에 수많은 경제학자가 있지만, 사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들과 영국 옥스브리지(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합의된 내용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이비리그와 옥스브리지에서 나온 이야기가 꼭 옳을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지금 우리가 확인하고 있다.

경제학자 조앤 로빈슨은 "경제학 공부의 목표는 경제학자들의 거짓말에 속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 정도면 좋게 이야기한 거라고 본다. 요즘이라면, "교수가 되기 위해서"라고 하는 게 솔직한 대답 아닐까.

최근 금융 위기의 원인으로 흔히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꼽는다. 타당한 이야기지만, 나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지 않는가 싶다. 바로 경제학 자체의 문제다. 주류 경제학에 대한 비판에 대해 아무런 응답이 없다. 토론과 비판에서 벗어난 곳에 있는 학문과 제도는 무너지게 돼 있다.

"개인도, 계급도 아니다. 사회다"

이제 본격적인 강연으로 들어가겠다. 이번에 다룰 내용은 <거대한 전환> 제2부 시장경제의 흥망 가운데 2편인 '사회의 자기보호'다. 11장부터 18장까지다.

'사회의 자기보호'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단어는 '사회'다. 이 책 후반부에 가면 "사회 실재의 현실"이라는 표현이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하는데, 처음 읽는 독자들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앞에서는 별로 언급되지 않다가 너무 갑자기 등장한다는 느낌 때문이다. 이유가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사회'가 이 책에서 워낙 중요한 개념인 까닭에 책 전체에 걸쳐서 개념이 녹아 있다.

폴라니가 이야기하는 '사회'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를 비교해 보자. 자유주의 사상에서는 단위가 개인이다. 개인을 단위로 삼아 모든 설명이 이뤄진다. 반면,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단위가 계급이다.

그런데 이 두 사상에는 공통점이 있다. 개별 단위의 움직임을 경제적 동기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자유주의 사상에서는 개인의 경제적 동기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그렇게 설명할 수 없는 요소는 비합리적 선택으로 취급한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생산관계를 둘러싼 인간집단, 즉 계급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 경제적 동기를 가장 중심에 놓는다는 점에서는 자유주의와 마찬가지다.

폴라니의 사상이 돋보이는 것은 이 대목에서다. 폴라니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사회다"라고 말한다. 개인도, 계급도 아니다. 사회다.

"사람은 돈 계산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게 아니다"

폴라니의 사상에 대해 흔히 마르크스주의에서 이야기하는 계급투쟁과 비슷한 방식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지 않다. 폴라니는 사회 전체의 반응에 부응하는 계급은 살아남고 그렇지 않으면 사라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시장이 자율적으로 균형을 찾아간다는, 실현 불가능한 믿음을 현실에 무리하게 덧씌우려는 폭력에서 사회를 보호하려는 노력이 시장과 충돌하면서 빚어지는 '이중적 운동'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 운동의 단위는 개인이나 계급이 아닌 사회 전체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계급투쟁과는 다른 개념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주장은 19세기 유럽 사회의 상식과 배치되는 것이다. 당시 유럽인들은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은 경제적 동기라고 믿었다. 다만, 사회 현상을 인식하고 설명하는 단위가 개인이냐 계급이냐 하는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폴라니는 인간이 경제적 돈 계산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고 봤다. 물론, 경제적 동기는 중요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게다. 인간은 매우 복잡한 존재이며, 문화의 영향을 깊이 받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이런 본성을 해치는 질서에 대해 사회는 자기 보호 운동을 진행한다.

"문화적 공백은 시장이 메울 수 없다"

폴라니가 보기에 19세기 유럽에 등장한 자기조정 시장은 전혀 실현 가능성 없는 것이면서, 사회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영어에 휴먼 트래쉬(Human Trash)라는 말이 있는데, '인간 쓰레기'라는 뜻이다. 시장이 사회에 들어오면서 인간은 짐승이 되고, 토지는 황무지가 됐다. 사회는 파괴되고, '인간 쓰레기'들이 생겨나게 됐다. 이에 대해 폴라니는 '생체 해부'로 비유한다. 살아 있는 생명체에 해부용 칼을 쑥 집어넣었을 때와 비슷한 충격을 사회가 겪는다는 게다. 생명체에 칼이 박히면, 몸 전체가 수축된다. 사회도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는 게다.

이 책 424페이지의 설명을 보자.

"그런데 이런 문화적 진공 속에서의 삶이란 결코 삶이 될 수 없다는 점에 기꺼이 동의하는 이들조차도, 경제적인 필요와 욕구만 생겨난다면 그것으로 문화적 공백도 저절로 메워지고 아무리 끔찍한 상태에서도 삶을 살아갈 만한 것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인류학적 연구 조사의 결과와는 날카롭게 모순되다. '개인들로 하여금 움직이게 만들어주는 노동의 목표란 문화적 차원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식량의 부족과 같은 외부적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그것의 성격이 문화적 차원에서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상태라면 단순히 그 배고픔에 대한 인간 육체의 반응으로서 노동의 목적이 생겨난다고 할 수는 없다'라고 마거릿 미드 박사는 말한다.

'미개인들은 자신들의 집단이 파괴된 후 뿔뿔이 흩어져 졸지에 금광의 광부나 선원으로 전환하는 일도 있지만, 열심히 살아갈 모든 동기를 빼앗겨버린 상태로 방치되어 시냇가에는 여전히 물고기가 득실거리고 있건만 냇가에 그냥 멍하니 드러누워 고통도 모르는 채 그대로 죽어가기도 한다.

이러한 일들은 너무나 괴상하고 낯선 것으로 보일 것이며, 사회의 본성과 정상적인 작동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병리학적인 현상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덧붙인다. '폭력적인 방식으로 외부에서 도입된 혹은 최소한 외부에서 생겨난 변화의 한가운데로 어떤 집단의 인간들이 휘말려들 때에 바로 이러한 사태가 보통으로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라고. 그래서 이러한 결론을 내린다.

'단순한 생활을 영위하던 집단의 인간들이 이렇게 폭력적인 접촉으로 인해 자신들의 사회적 관행과 도덕 관념을 뿌리째 뽑혀버리는 일은 너무나 자주 벌어지는 것이어서, 사회사가들은 이러한 과정에 응당 진지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사회사가들은 이러한 문제제기에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지금 식민지 세계를 혁명적으로 뒤집어놓고 있는 문화 접촉의 기본적 힘이 1세기 전 초기 자본주의의 을씨년스러운 광경을 만들어냈던 힘과 동일하다는 명백한 사실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착취보다 위험한 사회 파괴…사회의 자기보호 운동 등장

공동체가 파괴된 후, 열심히 살아갈 모든 동기를 빼앗겨버린 상태로 방치되어 시냇가에는 여전히 물고기가 득실거리고 있건만 냇가에 그냥 멍하니 드러누워 고통도 모르는 채 그대로 죽어가는 일. 이런 일은 경제적 동기만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 가운데 대부분이 그렇다. 잘 찾아보면, 우리 주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10대 가출 청소년의 경우를 보자. 이들 가운데 많은 수가 사회에 던져지는 순간 인간이 아닌 그냥 몸덩이로만 취급받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되고 나서, 이들의 선택은 앞서 나온 예처럼 그냥 멍하니 있는 것이다.

시장이 사회에 들어오면서 인간이 상품으로 거래되는데, 이런 상황이 주는 충격은 만만치 않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억지로 강요하는 순간, 반발이 생기기 마련이다. 바로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이다. 이는 경제 논리로 설명할 수 없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경제적인 착취를 문제의 핵심으로 설정하는데, 폴라니의 생각은 다르다. 착취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파괴라는 것이다. 인간과 사회의 파괴. 이게 진짜 문제라고 봤다.

자유주의 삼위일체…舊구빈법 철폐, 곡물법 철폐, 금 본위제

그렇다면 인간을 인간이 아닌 것으로 취급하게 하는 자유주의 경제 논리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자유주의 논리니까, 자율적인 움직임에 따라 저절로 생겨난 걸까. 그렇지 않다. 제도가 만들어낸 것이다.

자유주의 경제 논리는 상품이 될 수 없는 것을 상품으로 만드는 게 핵심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가 있다. 인간의 노동력, 토지를 비롯한 자연, 화폐 등이다. 이런 세 가지를 모두 상품으로 만들면서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실현 불가능한 꿈이 생겨났다.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생겨난 세 가지 제도적 장치가 이와 맞물린다.

구(舊) 구빈법 철폐(신(新) 구빈법 제정), 곡물법 철폐, 그리고 금 본위제가 그것이다. 이들 세 가지 조치는 1832년 부르주아들이 영국 의회에 대거 진출하면서 생긴 이른바 '개혁의회'에서 잇따라 통과됐다. '자유주의 삼위일체'에 해당하는 조치들이다.

부르주아들이 주도하는 개혁의회가 탄생한 지 2년 뒤인 1834년, 스피넘 랜드법, 그러니까 구(舊) 구빈법 철폐됐다. 대신 신(新) 구빈법이 제정됐다. 이는 사람이 오직 노동시장에서의 수요 공급에 따라 임금이 정해지는 상품으로 거래되도록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노동자에 대해 직접적인 금전 지원을 하는 스피넘 랜드법이 사라진 대신, 구빈소가 세워졌다. 그런데 당시 기록을 보면, 가난한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구빈소는 지옥 그 자체였다.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에도 잘 묘사돼 있다. 당시 제도를 만든 이들이 일부러 그렇게 했다고 한다. 구빈소를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 놓아서, 노동 규율을 세운 것이다. 공장에서 잘리면 갈 곳이 없도록 한 것이다.

요즘은 공장에서 산업재해를 입으면 보상이 이뤄진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개념이 없었다. 공장에서 일하다 다친 노동자가 해고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여겨졌다. 효용이 없는 상품에 가격을 지불할 수 없다는 논리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부상을 입어도 이를 숨기고 일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공장 밖에는 자연의 징벌, 즉 굶주림이 있다는 공포가 노동자를 상품으로 만든 힘이었던 게다.

노동력 상품화의 계기였던 스피넘 랜드법이 철폐되고 10년 뒤인 1844년, 영국 총리 주도로 필 은행법(Peel's Bank Act)이 제정됐다. 화폐의 총량은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금의 양과 정비례해야 한다는 '금본위제'를 명시한 법안이다. 금본위제는 시장이 저절로 균형을 찾는다는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믿음을 뒷받침하는 세 가지 핵심적인 축 가운데 하나다.

이를 이해하려면 약간의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금본위제'를 따르는 어떤 나라가 수출을 많이 해서 금이 많이 유입됐다고 하자. 그럼 국내에 물건은 줄어들고, 돈은 많이 풀리게 된다. 자연스레 물가가 오르게 된다. 국내 물가가 오르면, 이 나라는 수출 경쟁력을 잃게 된다. 이번에는 수출이 줄고, 수입이 늘게 된다. 이 나라가 보유하고 있는 금의 양은 줄어든다. 화폐의 양은 금의 양과 비례하므로, 돈이 적게 풀린 상태가 된다. 이번에는 물가가 떨어진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다시 수출 경쟁력을 회복한다. 이런 식으로 경제가 균형을 이룬다는 게 '금본위제'를 주장하는 이들의 생각이다.

이런 생각이 나온 데는 배경이 있다. 이보다 이전에는 유럽에서 중상주의가 대세였다. 무조건 수출을 많이 해서 금을 많이 확보하는 게 국가의 부(富)를 늘리는 길이라는 믿음이다. '금본위제'는 이런 믿음이 허구라는 것을 입증하면서 힘을 얻었다.

그런데 영국이 '금본위제'를 도입해서 정말 경제가 균형을 이뤘을까. 현실은 금본위제 신봉자들의 믿음과 달랐다. 필 은행법 제정 이후, 영국은 10년마다 금융공황에 시달렸다. 정부가 중앙은행을 통해 적절하게 돈을 빌려주지 않으면, 기업들이 위기를 헤쳐가기 어렵다. 그리고 한번 망한 기업은 저절로 살아나지 않는다. 적절하게 돈을 빌려주는 기능은 산업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그런데 오직 금의 보유량에만 비례하여 화폐를 공급하는 금본위제 하에서는 이런 기능이 작동할 수 없다. 산업이 위기를 맞는 게 당연하다.

당시 유럽 지도자들 역시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19세기 후반에는 금본위제와 중앙은행을 동시에 유지하는, 논리적으로는 모순인 선택을 유럽 국가들이 취하게 된다.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믿음을 구현하기 위해 도입된 나머지 하나의 조치는 곡물법 철폐였다.

잘 알다시피 영국은 토질이 안 좋은 편이다. 그래서 농사를 짓기에 좋지가 않다. 당연히 농업 경쟁력이 약하다. 수입 농산물에 높은 관세를 물리는 곡물법이 오랫동안 유지된 것도 그래서였다. 그런데 1846년, 이 법이 폐지됐다. 지주들의 반발을 부르주아가 누른 결과였다.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가격이 정해지는 상품이 될 수 있으려면, 곡물법 폐지가 필수적이었다.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식량 가격을 낮춰야 임금을 탄력적으로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조치는 농촌의 급격한 황폐화로 이어졌다.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프레시안 최형락

규제 없는 시장은 작동 불가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믿음을 실현하기 위한 세 가지 조치, 즉 구(舊) 구빈법 철폐, 금본위제, 곡물법 철폐는 삼위일체로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는 게 폴라니의 생각이다. 어떤 이들은 이들 조치들을 따로 떨어진 채 일어난 일련의 사건으로만 이해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

금본위제가 실시되면, 기업이 위기를 맞았을 때 자금을 융통하는 게 쉽지 않아 진다. 이런 상태에서 기업주, 즉 산업자본가가 살아남으려면 노동시장이 유연해져야 한다. 구(舊) 구빈법 철폐를 통해 노동자에게 직접적인 지원을 하는 제도를 없애고 실업에 대한 공포를 심는 게 필수적이라는 뜻이다.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임금이 오직 시장에서의 수요 공급에 따라 탄력적으로 정해지도록 하려면, 임금 하한선이 최대한 낮아져야 한다. 결국 식량 가격을 낮춰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수입 곡물에 높은 관세를 매기는 곡물법을 철폐해야 한다.

자유주의 삼위일체, 즉 구(舊) 구빈법 철폐, 금본위제, 곡물법 철폐 등을 통해 실현하려 한 자기조정 시장은 과연 제대로 작동했을까. 그렇지 않다.

통념과 달리, 그리고 자기조정 시장을 꿈꾼 이들의 믿음과 달리, 자유방임 시장은 저절로 작동하지 않는다. 강력한 규제가 필수적이다. 상품이 된 노동에 대해 시장에서 매겨진 가격이 유연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일은 현실에서 쉽지 않다. 노동자들의 반발 때문이다. 노동자도 사람인데,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임금이 떨어지면 가만히 있겠는가. 결국 자본가들과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정부의 역할이 필요해 진다. 자유 시장 경제에서 오히려 정부 기구가 확대되는 이유다. 영국이 실제로 이랬다. 자유주의 경제논리가 득세하는 내내 정부 기구는 확장을 거듭했다. 폴라니는 "자유 방임 시장은 중앙계획이 만들었다. 하지만 중앙 계획은 계획된 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국제수지의 자동적 균형을 위해 도입된 금본위제 역시 마찬가지다. 금본위제 하에서는 정부의 재정정책, 금융정책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당장 급전이 필요한 기업가들은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불법, 편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급한 돈을 빌리려 한다. 정부 역시 당장 돈을 융통하지 못해서 기업이 파산하는 상황을 마냥 두고 보기 어렵다. 금본위제에 대한 저항이 필연적이라는 이야기다. 이런 저항 앞에서 정부는 현실적인 이유로 금융정책, 재정정책에 개입할 수밖에 없다. 화폐의 움직임을 오로지 시장 논리에만 맡길 수 없으며, 일정한 규제를 동원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농촌의 붕괴를 낳은 곡물법 철폐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조치를 밀어붙인 세력은 농촌을 곡식 제조 공장쯤으로 여긴다. 국내에서 곡식을 생산하는 비용보다 수입하는 가격이 싸다면, 수입하는 게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농촌은 곡식 제조 공장과 다르다. 전통과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공동체다. 곡물법 철폐를 주장한 이들은 이런 특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경제 논리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냥 불합리한 요소쯤으로 여기곤 한다. 그러나 사회 전체의 유지라는 면에서 보면 다른 결론이 나온다. 설령 수입 농산물보다 비싼 비용을 들여서 곡물을 생산하는 농촌이라고 해도, 사회 유지를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농촌 공동체를 통해 전승되는 전통 문화는 사회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다.

식량 안보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측면이다. 아무리 자유무역이 활발해도, 곡물가격 폭등 또는 곡물 수출 금지 조치 등이 일어날 가능성은 늘 있다. 식량은 인간과 사회의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재화인 까닭에, 식량의 이런 특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은 늘 있기 마련이다.

더 실용적인 이유도 있다. 19세기 유럽의 경우, 농촌은 군인과 관료의 공급처였다. 부르주아의 자식들은 군인의 재목이 되지 못했다. 농촌에서 단련된 이들만이 군인으로 제몫을 할 수 있었다. 결국 정부가 농업에 대해 오직 시장논리로만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어떤 식으로든 시장에 규제를 가하는 조치가 뒤따르게 된다.

19세기 말, 군국주의 세력이 발호한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 19세기 중반께 정치적으로 완전히 몰락했던 귀족 지주 세력이 군국주의적인 성격을 띠며 세력을 넓힐 수 있는 조건이 생겨난 것이다. 농촌의 몰락이 가져온 군사안보 위기와 사회 불안은 심각했고, 이는 농촌에 기반을 둔 귀족 지주 세력에게 기회가 됐다.

사회의 자기보호도 삼위일체

자유주의 경제를 구현하기 위한 조치들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것처럼, 폭력적인 시장 논리에 대한 사회의 반응도 삼위일체를 이룬다는 게 폴라니의 생각이다. 금본위제로 피해를 입는 기업가, 구(舊) 구빈법 철폐 등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조치로 피해를 입은 노동자, 곡물법 철폐 등으로 피해를 입은 농촌 지주 등이 제각각 내놓는 대응이 서로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이는 폴라니의 사상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로부터 집중적인 비판을 받은 대목이기도 하다. 금본위제에 저항하는 산업 자본가, 노동력 상품화에 맞서는 노동자, 농촌 황폐화에 맞서는 귀족 지주가 한통속이냐는 비판이다. 독점자본가와 사회주의자, 반동 정치 세력이 삼위일체를 이룬다는 지적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불쾌해 하는 것은 사실 당연하다.

물론, 폴라니 역시 이들 세 주체가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폴라니의 비유를 들면, 물 위에 떠 있는 통나무 위에 서 있는 사람이 서로 통나무를 돌리는 것과 닮았다. 시장의 폭력에 대해 한쪽이 반응하면, 다른 한쪽 역시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

예컨대 노동자들은 극단적인 노동력 상품화 조치에 맞서서 각종 사회 입법을 추진했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최저임금을 설정하는 등 조치다. 흔히 이런 조치는 사회주의자들만의 힘으로 이룬 성과라고 여긴다. 마르크스도 그랬다. 법정 노동시간을 못 박은 조치에 대해 "사회주의 운동의 위대한 승리"라고 예찬했다.

하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 노동시간 단축 등 사회입법 조치 가운데 상당수는 부르주아에 대해 반발하는 봉건 귀족 세력의 협조를 통해 이뤄졌다. 그리고 이런 조치가 도입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사회의 자기보호 운동이 있다. 사회 자체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이런 조치가 없으면 사회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합의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뜻이다. 이를 계급투쟁에서 한쪽이 승리한 것이라고만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계급이 사회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사회가 계급을 결정한다는 게 폴라니의 주장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주장일 수 있다. 하지만, 19세기 유럽인들에게 이런 생각은 새로운 것이었다. 시장이나 제도로 어찌할 수 없는 최소한의 기반이 있다는 생각이다. 잠시 군대 시절을 떠올려 보자. 군대에는 FM(야전교범)이라는 게 있다. 원칙대로라면, 군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FM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가. FM은 그저 FM일 뿐이다. 이걸 곧이곧대로 적용하려 들면, 군대 조직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공개적으로 인정하건 안 하건 많은 지휘관들이 속으로는 인정하고 있는 사실이다.

사람이 모여 있는 사회에서 규율과 제도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 이런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는 게 폴라니의 사상이다.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는 자기조정 시장은 규율과 제도를 극단적으로 엄격하게 적용 해야만 작동할 수 있는데 이런 규율과 제도를 강요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 그래서 결국 자기조정 시장은 불가능한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게 폴라니의 주장이다.

다시 노동자들이 노동력 상품화에 맞서 자신들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을 취한다는 이야기로 돌아가자. 노동자들은 결국 사회입법을 통해 최저임금을 설정하고 노동시간을 줄였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산업 자본가 입장에서는 비용이 늘게 됐다. 이들이 가만히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들 역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내놓게 된다. 노동자들의 요구가 사회정치적 방식을 띤 것처럼 이들 역시 정부를 향해 대책을 요구하게 된다. 어떤 대책이 있을까. 결국 금융, 재정 정책이다. 돈 쓸 일이 늘었으니, 돈을 풀어달라는 것이다. 이는 금본위제에 대한 저항인 셈이다.

이런 식으로 서로 다른 집단의 시장에 대한 대응은 서로 맞물려 있다. 이는 결국 자기조정 시장을 구성하는 제도들을 허무는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이런 움직임을 거치면서 19세기 유럽인들이 자기조정 시장을 구현하기 위해 쏟았던 노력은 엉뚱한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제국주의와 세계대전이다.

"헌정주의, 금본위제, 자기조정 시장, 세력 균형"…19세기 유럽의 꿈은 결국…

자기조정 시장을 구현하려 애썼던 19세기 유럽인들이 꿈꿨던 세상을 국내 정치, 국내 경제, 국제정치, 국제경제 등 네 항목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우선 국내 정치에서 이들은 헌정주의 국가를 만들려 했다. 선거에 의해 구성된 의회 민주주의가 핵심이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의원들이 헌법에 따라 예산을 짜서 재정을 집행한다. 이렇게 되면, 돌발적인 재정 지출을 막을 수 있다. 예컨대 전제 군주는 갑작스런 전쟁 선포 등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결과로 재정 지출이 늘어나고 해당 국가 화폐 가치가 떨어진다. 의회 민주주의 정치가 갖는 경제적 의미는 화폐 가치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떨어지는 일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국제 경제에서 금본위제를 채택한 것과 맞물린다. 화폐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금본위제의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해당 국가 산업은 부침을 거듭하겠지만, 결국 균형을 이루리라는 게 당시 유럽인들의 믿음이었다. 이런 믿음은 다시 국내 경제에서 자기조정 시장을 구현하려 한 것과 맞물린다. 모든 자원의 분배를 시장 원리에 맡기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작동하려면 큰 전쟁이 없어야 한다. 이는 국제 정치에서 세력 균형을 도모한 것으로 나타난다. 특정 국가가 갑자기 팽창하거나 군사력을 늘리면 나머지 국가들이 응징하는 것이다. 국내 정치, 국제경제, 국내 경제, 국제정치 등에서 이뤄진 이런 시도에는 19세기 유럽인들의 꿈이 담겨 있다. 이런 방식으로 그들은 유럽이 평화와 풍요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나. 제국주의 전쟁이었다. 이렇게 된 과정을 다시 국내 정치, 국제경제, 국내 경제, 국제정치 등으로 돌아보자.

우선 국내 경제. 자기조정 시장을 꿈꿨던 이들의 기대와 달리, 자기조정 시장은 점증하는 실업에 대한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실업이 늘어나자 정부는 돈을 풀어야 했는데, 금본위제로 인해 한계가 있었다. 화폐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 선을 지켜야 했던 것이다.

결국 수출을 통해 금을 들여오는 수밖에 없다. 또 값싼 원료를 통해 금 지출을 줄여야 했다. 원료 공급처 확보와 수출이 대외 경제 정책의 핵심이 됐다.

하지만, 기존 시장에는 한계가 있다. 서구 국가들이 택한 것은 아직 근대적인 틀을 갖추지 않은 나라를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었다.

미국이 일본을 강제로 개항했을 때, 미국이 요구한 게 관세 철폐였다. 일본은 문명국가가 아니므로 관세를 매길 수 없다는 게 미국 측 논리였다. 야만국가에게 관세를 허용하면 제멋대로 관세를 매겨서 무역질서가 망가진다는 것.

이후 일본의 역사는 '우리도 문명국가다'라는 것을 서구 세계에 인정받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유럽인들이 국내 정치, 국제경제, 국내 경제, 국제정치 등에서 꿈꿨던 것들을 일본은 기를 쓰고 달성하려 했다. 이런 노력은 위에서부터 이뤄졌고, 그래서 일본 헌법은 제헌 헌법이 아니라 흠정 헌법이다. 서구 국가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메이지 천황이 만들어낸 헌법이라는 게다. 이런 노력의 끝이 러일전쟁이었다. 국제정치 영역에서 문명국가의 기준은 '세력균형'의 한 축이 되는 것인데, 이는 군사력을 통해서만 보장되는 것이다. 균형을 깨뜨리는 세력을 무력으로 응징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만 '세력균형'의 한 축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결국 일본은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며 러시아와 전쟁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이긴 뒤에야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경쟁에 참여할 수 있었다. 조선을 집어 삼킨 것 역시 그 결과였다.

일본은 가까스로 제국주의 경쟁에 끼어든 경우였지만, 나머지 비서구 국가들은 그렇지 못했다. 서구 국가들의 상품 판매처, 값싼 원료 공급처로 전락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심지어 중국마저 이런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기조정 시장을 믿었던 19세기 유럽인들의 꿈은 비서구인들의 눈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이는 다시 유럽 사회의 혼란과 전쟁으로 되돌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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