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씻고 찾아봤지만 없다. 여야 원내대표가 장장 7시간 30분 동안 마라톤 협상을 벌였다기에 혹시 논의가 됐을까 싶어 찾아봤지만 일언반구, 일점일획도 없다. 비정규직법 개정안은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버렸다.
이해할 수 없다. '원안 고수'를 주장해온 민주당이야 그렇다치더라도 '반드시 개정'을 주장해온 한나라당의 태도만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들갑을 떨었다. 비정규직법 시행을 유예하지 않으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나앉을 것이라며 일분일초라도 빨리 비정규직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랬던 한나라당이 꿩을 구워먹었는지 입을 닫았다. 비정규직법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채 미디어법에 올인하고 있다.
민주당이 비정규직법 개정에 반대하기 때문이라는 이유, 김형오 국회의장이 비정규직법 직권상정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 이유 때문에 체념한 것이라면 미디어법도 일찌감치 접었어야 한다. 그게 일관된 태도다.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밑밥'이었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 조문정국을 끝내고, 원외에 머물던 민주당을 끌어들이기 위해 비정규직법을 활용했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 '정치의안'인 미디어법 처리를 위해 '민생의안'인 비정규직법을 멍석으로 활용했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
오해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말하면 '왜 비정규직법을 개정하지 않느냐'고 다그치는 것처럼 들을지 모르겠다.
▲ 6월 30일 비정규직법 처리 촉구 결의대회를 갖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 ⓒ한나라당 |
정반대다. 마다 할 이유가 없다. 비정규직법 원안이 뒷전으로 밀리다가 자연스럽게 유지된다면 굳이 성낼 까닭이 없다.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최선책은 '시행 유예'가 아니라 '시행 고수'라는 생각을 바꿀 근거가 생기지 않는 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양면성을 새삼 거론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정규직법 논의를 뒷전으로 밀어놨다가 어느 순간 기습 상정해 처리할 가능성을 100%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형오 의장이 비정규직법 직권상정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고는 하나 자고나면 상황이 달라지는 게 우리 정치판이기 때문이다.
행여 이런 상황이 도래하면 파장은 엄청나게 커진다. 쌍용자동차 문제로 일촉즉발의 상황에 내몰린 노동계에 휘발유를 붓고 노정 대립을 극한으로 치닫는다. '시행 고수' 분위기를 감지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사업주를 다시 들썩거리게 만들면서 노동시장을 불안정 상태로 몰아넣는다.
분명히 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차제에 비정규직법 개정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개정을 포기한 것인지, 포기하지 않았다면 개정 논의를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를 밝혀야 한다. 민주당은 요구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내놓는 그때그때의 의제에 즉자적으로 대응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입에 올리지 않는 게 비정규직법 개정을 막는 데 효과적이라는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고 오히려 고리를 걸어야 한다. 미디어법 논의가 비정규직법 개정 포기를 전제로 한 것이냐고 한나라당에 묻고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이게 그나마 의정의 소모성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차악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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