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청와대로부터 새 국가인권위원장으로 내정된 현병철 한양사이버대 학장은 18일 인권위에서 취임식을 열 예정이었다. 그러나 현 위원장의 취임에 반대하는 인권단체들은 현 위원장 취임에 강력히 항의하며 위원장실 문 앞에서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결국 현병철 위원장은 1시간 30분 가량 위원장실에 머물다가 직원들의 비호 아래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취임식은 잠정 연기됐다.
인권단체 "인권 모르는 위원장 날치기 임명…인권위법 어긋나"
이날 오후 1시 인권운동사랑방,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20여 개 인권단체로 구성된 '(가)국가인권위제자리찾기공동행동'은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이명박 정권의 국가인권위원장 부적격 인사와 날치기 임명을 규탄한다"며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내정자는 자진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국가인권위원회법 제5조 2항을 들어 현 위원장의 임명이 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했아. 이 조항에는 인권위원장과 인권위원 자격으로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자"라고 명시하고 있다.
공동행동은 "'인권 감수성'을 증명할 수도 없는 인물을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임명하는 건, 그 동안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해온 인권위를 정권의 꼭두각시로 만들기 위함"이라며 주장했다.
앞서 현병철 위원장은 내정이 확정된 지난 16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인권위원장) 내정 소식을 듣고 머리가 멍했다"며 "학자로서 인권은 알지만 인권의 현장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밝혔다. 또 그는 "인권위 업무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며 "(위원장에 취임하면)먼저 현황 파악을 해야겠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 '(가)국가인권위 제자리 찾기 공동행동'은 "이명박 정권의 국가인권위원장 부적격 인사와 날치기 임명을 규탄한다"며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내정자는 자진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뉴시스 |
기자회견이 끝난 뒤 인권단체 활동가 30여 명은 취임식이 예정된 인권위 건물 10층 입구에 도착해 취임식 중단을 촉구했다. 인권위는 10층으로 통하는 모든 출입구를 잠그고 인권단체 활동가와 기자를 모두 막았다. 엘리베이터 운행 역시 통제했다.
오후 5시 정각, 인권위 건물 1층 로비에 도착한 현병철 위원장은 곧바로 10층이 아닌 13층 위원장실로 향했다. 인권단체 활동가들 역시 13층으로 이동해 위원장실 문 앞에서 취임식 취소와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오후 5시 20분경 위원장실에 있던 김칠준 사무총장이 나와 "물리적 충돌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취임식을 하고 싶다"며 위원장의 뜻을 전했다. 이에 대해 인권운동사랑방 명숙 활동가는 "자질에 대한 고민과 자성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며 "먼저 우리의 요구서한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며 공개적인 후보 선정위원회 구성과 현병철 위원장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인권단체는 "자질에 대한 고민과 자성이 있었으면 좋겠다"라며 "먼저 우리의 요구서한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며 공개적인 후보 선정위원회 구성과 현병철 위원장의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프레시안 |
이후 인권활동가와 기자들은 위원장실 문 앞에서 1시간 가량 현 위원장의 답변을 기다렸다. 그러나 현 위원장은 오후 6시 30분경 위원장실 뒷문으로 나와 엘리베이터를 통해 빠져나갔다. 김칠준 총장은 "오늘 열릴 예정이었던 취임식을 다음주 월요일(20일)로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인권단체들은 현병철 위원장이 빠져나간 뒤 재차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를 고려하거나 임명에 대해 재검토를 하지 않고, 취임식을 연기하겠다는 것은, 취임의 뜻을 분명히 밝힌 것"이라며 "우리 역시 이곳에서 취임식을 저지하고 사퇴를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서경순 전 상임대표는 "(현 위원장이) 뭐가 그렇게 찔리는지 얼굴 한 번 내보이지 않았다"며 "위원장직을 하지 않겠다고 포기하고 나간 것 아닌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권단체들은 현재 인권위 11층에서 서울시의 장애인 탈시설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애인단체와 결합해 취임을 반대하는 농성을 이어나간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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