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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빈민을 죽게 두라"… 자유주의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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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모든 빈민을 죽게 두라"… 자유주의의 탄생

[홍기빈과 함께 읽는 칼 폴라니②] '자기조정시장' 개념의 탄생

'위기의 시대에 읽는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 강연의 두 번째 주제는 바로 자유주의, 곧 주류경제학의 모든 이론의 기본 중 하나인 자기조정시장에 대한 비판이다. 수요와 공급은 시장 안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재화가 상품화된다는 믿음은 현대 세계사를 관통하는 신앙과도 같다. 폴라니는 이를 전면 부정했다.

이번 강연에서는 자기조정시장 개념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점차 거슬러 올라가 짚어본다. 공장의 탄생과 그로 인한 빈민 급증은 세상을 바라보는 당대 사람들의 인식체계 자체를 뿌리서부터 뒤흔들었다. 지난 16일 저녁 참여연대에서 열린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의 두 번째 강연을 요약, 정리한다. <편집자>

첫번째 강연 : "폴라니는 마르크스나 케인스 아류가 아니다"

▲<거대한 전환>(칼 폴라니 지음, 홍기빈 옮김. 길 펴냄) ⓒ프레시안
일단 가벼운 얘기로 시작해보자. 지금 우리의 모임을 시장주의적으로 볼 수 있을까?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러분들은 일정액의 돈을 내고 강의에 참석했다. 저도 강연료를 받는다. 소비자와 판매자가 모이는 장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실질적'으로 의미가 있느냐다.

형식(form)과 내용(substance)이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 생기는 갖가지 일에 어떤 형식을 씌우느냐가 중요하다.

제 생각에 여러분은 무언가를 소비하기 위해서 이곳이 오시지 않았다. 저도 강의료가 주목적이 아니다. 그런데 시장이라는 형식을 씌우는 순간 무서운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형식에 의해 내용이 재편되는 일이 생긴다.

다른 예를 또 들어보자. 대한민국에 우리가 왜 모여 있는가? 재작년 참여연대에서 실시한 '대한민국을 다시 묻는다' 시리즈에서 이 질문이 나왔는데 대답들이 시원치 않았다.

87년 6월에는 '민주주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잠깐이나마 사람들이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이 통하지 않는다. 최근 등장한 새로운 정체성은 바로 '주식회사 코리아' 정도가 될 것 같다. 우리가 이 나라에 돈 벌려고 산다는 얘기다. 나라가 주식회사이니 대통령은 CEO가 되는 게 당연하다.

이제껏 든 예들에서 볼 수 있듯, 형식에 따라 내용이 변한다. 화폐경제의 발달로 '시장'이라는 형식이 내용을 바꿔왔다. 폴라니는 이를 영혼의 파괴라고 얘기한다.

오늘 말씀드릴 얘기는 책 6장부터 10장까지와 3장의 내용이다. 이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자기조정시장 개념과 허구적 상품 개념을 먼저 말씀드리겠다. 강의를 듣다 보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아이디어로 어떻게 경제를 운용하겠다는 생각을 했을까'란 생각이 드실 것이다.

다른 하나는 스핀햄랜드 제도(speenhamland system)다. 이 제도가 자기조정시장 개념을 탄생시켰다. 실업률 증가에 사람들이 얼마나 황당한 대응을 했는지, 그리고 그 황당한 대응에 대한 더 황당한 대응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너무나 황당했던 인류의 대응이 바로 오늘날 신화처럼 받들어지는 고전파 경제학과 자유주의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1. 자기조정 시장

우리 고등학교 다닐 때 상품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배웠다. 수요-공급 곡선. 그런데 이 그래프가 왜 움직이는지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 자기 스스로가 합리적인 가격을 찾아간다(자기조정시장)고만 들었을 분이다.

유럽인들은 16세기에 아주 중요한 경제학적 발전을 거친다. '한 상품 가격은 다른 시장의 상품 가격과 관련이 있다'라는 것이다. 이후 17세기 말 또 굉장한 발견이 나온다. '시장의 모든 가격은 알아서 결정된다'는 것. 너무 당연한 얘기로 들리지만 당시 시대상과 시장의 특성을 보면 새로운 발견이라 부를 수 있다.

중세시대 유럽의 경제 규모가 100이었다고 가정하자. 시장은 주변부에 10도 안 되는 크기로 머물렀다. 삶에 굉장히 중요한 곡물, 고기 등은 교환될 뿐이었고 비본질적인 것들, 예를 들어 예수님 십자가나 아라비아에서 온 사랑의 묘약이니 하는, 삶에 큰 의미를 지니지 않는 상품만 시장에서 거래됐다. 당시만 해도 상품가격은 장사꾼의 수완, 나쁘게 말하면 사기술에 의해 결정됐다. 상품 간 가격변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물건의 종류가 많아지면서 점차 삶에 중요한 것들도 거래되게 된다. 발트해에서 들여온 곡식이 지중해에서 거래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발트해의 곡식 가격이 지중해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차액거래도 생겨났다. 이런 현상이 점차 심화된 17세기 말이 바로 정치경제학의 본격 시작 지점이다.

쉽게 밀가루와 자장면으로 생각해보자. 밀가루 가격이 오르면 자장면 가격도 오른다. 따라서 시장 가격이 얼마에 결정되는지, 그리고 이 가격 이동이 얼마나 신속해질지가 굉장히 중요해진다. 물론 상품마다 가격변동이 사회에 미치는 충격은 다르다.

그렇다면 당시는 물론, 지금도 변동에 가장 큰 충격을 미치는 상품은 무엇일까. 18세기 후반이 되면 △토지 △임금 △이자(자본가격) 등 세 가지로 정리된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개입되지 않고 만들어지는 물건은 없기 때문이다. 이들 요소의 가격결정 공간을 각각 △토지시장 △노동시장 △화폐시장이라고 한다. 이들을 생산하는 집단은 △지주(토지) △노동자(임금) △자본가(자본)로 나뉜다. 영국의 경제학자들이 이처럼 과감한 분류를 하면서 '모든 인간은 이들 삼대 요소 중 하나'라는 논리가 퍼진다.

이제 자기조정시장의 개념을 정리해보자. 앞서 본 3대 요소 시장에서 각각 소득이 발생한다. 지주는 지대를, 노동자는 임금을, 자본가는 이윤을 가져가게 된다. 자연스럽게 3대 요소시장과 더불어 사회를 지탱하는 3대 계급이 형성된다. 이들 요소들이 경제 변동을 '스스로' 결정하는 소득범주라는 믿음이 아담 스미스의 책에 이론화된다. 데이비드 리카르도, 칼 마르크스 등도 이 영향력에 무관하지 않다. 자기조정시장 개념의 탄생이다. 시장 참가자들이 '스스로' 가격을 결정한다는 뜻이다.

자기조정시장이 제대로 작동하는데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3요소 이외의 누군가가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동네 불량배가 나타나서 자장면 가게 아주머니의 가격 결정 과정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부당한 개입에 따라 자기조정규제 매커니즘이 침해당하면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이다.

2. 허구적 상품

그런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들 3대 요소시장은 3자의 개입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이들을 두고 '허구적 상품'이라고 한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토지는 자연에 귀속돼 있다. 원래 판매되기 위해 존재했던 요소가 아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원래 임금을 받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화폐 역시 그렇다. 신용네트워크에서 사용되는 증서일 뿐이었지, 상품은 아니다. 폴라니는 화폐의 이런 본질적 특성을 두고 '화폐는 사회과학에 묻혀 있었다'라고 했다.

따라서 자연과 사람, 상인 간 신용관계의 다른 이름을 몽땅 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들(3대 요소)을 가격결정 변수로 이해하고 소득 발생의 원천으로 이해하는 것은 허구가 될 수밖에 없다. 상품이 아닌데 상품인 척 한다는 얘기다. 폴라니는 말이 되지 않는 소리라고 한다.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3대 요소가 다 상품이라고 배워왔고, 이를 더욱 강조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다시 각각의 예를 들어보자.

전라도 남원에서 생산되는 쌀이 15만 원, 캘리포니아 쌀은 3만 원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남원의 농토는 유지될 이유가 없다. 남원땅은 수익성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자기조정시장을 믿는 정부는 '남원은 부동산일 뿐이다. 가치가 떨어지면 사라지는 게 마땅하다'고 얘기할 것이다. 이런 일이 실제 영국에서도 일어났다. 곡물의 수출입을 규제한 곡물법이 리처드 코브던의 주도로 1846년 폐지된다. 당시 코브던이 반발하던 지주들에게 한 말이 이렇다. "농촌이라고 별 것 있나. 수익성을 좇는 비즈니스일 뿐이야."

최근 벌어지는 탄소배출권 거래제, 물 상품화도 같은 차원에서 볼 수 있다. 탄소배출권 거래제의 논리는 이렇다. 나라마다 쓸 수 있는 탄소배출량을 배정한 후, 배출 권리인 쿠폰을 발행한다. 그리고 이 쿠폰, 곧 탄소배출권을 매매할 수 있도록 한다. 그렇다면 시장의 자기조정기능에 의해 쿠폰 가격은 점차 비싸지고, 따라서 일정 수준 이상의 가격이 되면 나라들은 탄소배출을 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나라들은 녹색산업에 투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고 그들은 말한다. 쉽게 말해 쿠폰을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면 지구온난화 문제가 해결된다는 뜻이다. 실제 유럽인들의 대응은 어떤가? 탄소배출량을 줄이지는 않고 쿠폰만 잔뜩 사놓았다.

노동시장도 살펴보자. 5년 동안 잘 다니던 회사에서 어느날 갑자기 출근하지 말라는 문자가 온다. 이게 말이 되나? 된다. 우리의 몸은 상품에 불과하니까. 주류 경제학 교과서대로 설명하자면 '노동의 탄력성'이라고 한다. 주류 경제학자들이 신봉하는 논리다. 밀턴 프리드먼(신자유주의 정책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시카고학파의 거두)은 "모든 사람이 보트를 타고 평생 배를 젓는 곳"이라고까지 했다. 이들에게 노동조합은 따라서 최대의 적이 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숙명인 평생 항해(노동유연성)를 방해하는 자들이니까.

조금 고약하긴 한데, 만일 앞으로 특정 대학에서 "우리 학교는 교수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테뉴어(영년 교수제)를 없애겠다"는 정책을 내놨다고 가정해보자. 아마 '위대한 시장의 자기조정'을 찬양하던 경제학 교수들은 틀림없이 노조 만들고 "사랑도 명예도…"하며 노래 부를 것이다. 그들을 폄하하자는 게 아니다. 사람을 상품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화폐 시장도 보자. 우리는 돈이 상품이 될 수 없다는 말을 입증할 살아있는 예를 이미 보았다. 미국이 지난해 경제위기로 휘청하자 자기조정시장 논리로는 미국의 은행 절반이 파산해야 맞았다. 그런데 그렇게 했나? 미국 정부가 한 일은 은행들보고 자산가치를 자율적으로 평가하라, 곧 분식회계하라고 한 것이다. 은행이 파산하면 안 되니까. 미국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화폐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고.

자, 이처럼 본질적으로 상품화될 수 없는 것들까지도 모두 상품화하려는 노력이 사회를 무너뜨린다. 따라서 이를 막으려는 반발, 곧 사회의 자기보호가 생겨나게 된다. 시장이 혹독할수록 반발도 강해진다. 결국 어떤 사회도 존재하기 어렵게 된다. 이를 '시장경제의 유토피아성'이라고 한다. 시장경제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다는 말이다. 폴라니는 따라서 한 발은 자기조정시장에, 한 발은 사회의 자기 보호에 두면 사회가 버텨낼 수 없으니 자기조정시장을 버리자고 했다.

폴라니의 설명을 그대로 읽어보자.

"우리가 주장하는 명제는 다음과 같다. 자기조정시장은 완전히 유토피아이다. 그런 제도는 잠시도 존재할 수 없으며, 실행될 경우 인간과 자연은 파괴당하고 삶의 환경은 황무지가 될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사회는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떤 조치든, 사회 일상을 망가뜨리면서 사회는 또 혼란스러워졌다. 그래서 결국 사회는 자신을 기초로 삼는 사회조직마저 무너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프레시안

3. 노동법의 기원

이제 두 번째 얘기를 할 차례다. '이 어처구니없는 자기조정시장 개념은 도대체 어떻게 나온 것일까'가 얘기의 내용이다.

흔히들 아담 스미스가 이 이론을 정립했다고 이해하는데 틀렸다. 19세기 초 영국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먼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스핀햄랜드 제도를 이해해야 한다. 스핀햄랜드 제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클로저 운동부터 살펴봐야 한다. 책에서는 7, 8, 9장에 설명된다.

16세기 영국에서 인클로저(enclosure) 운동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토지를 수익을 낳는 자산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땅이 상품화되는 첫 단계로 이행하면서 발생했다.

원래 영국은 지주가 가진 땅의 비는 곳인 공동경작지 '오픈 필드(open field)'에 아무나 와서 농사를 지었다. 그런데 16세기 들면서 네덜란드에서 모직물 산업이 성행하기 시작하자 지주들이 돈냄새를 맡았다. 오픈 필드를 내버려둘 게 아니라 사람들이 못 들어오게 하고 그곳에 양을 키우면 거대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자기 토지에 울타리를 쳐버린다. 이게 인클로저다.

인클로저가 너무 심해지다보니 영국의 농촌이 쑥대밭이 돼 버렸다. 농민들이 갈 곳이 없어지고 떼거지가 됐다. 떼거지가 더 모이면 떼강도로 변한다.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 지나가는 마을은 초토화됐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영국 왕까지 나서서 지주들을 말리기에 이른다. 이게 법령화되고 점차 체계화되면서 오늘날 영국 노동법이 된다.

영국 노동법은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구빈법과 정주법, 그리고 직인법이다.

첫째 규약은 이것이다. 부랑하지 말라. 부랑자를 적발하면 귀를 잘랐다. 다시 적발하면 죽였다. 이게 구빈법(빈민 구제법)이다. 살벌한 것 같지만 내용이 그리 단순한 게 아니다. 부랑을 금지하는 대신, 어떻게든 직업을 찾아서 일하라고 강제했다. 그리고 일을 못 하는 병자나 노약자는 나라에서 먹여줬다. 이를 위한 시설이 구빈소이다.

그렇다면 부랑은 어떻게 막느냐, 이것이 바로 정주법이다. 영국의 지방행정 기초단위는 페리시(perish)라 불리는 교회의 교구 단위다. 우리로 치면 면 정도 된다. 이 교구를 벗어나 살 수 없도록 강제한 게 정주법이다. 교구를 잠시 살펴보면, 크게 목사와 시골 지주(squire)가 교구의 중심인물이다. 이들은 지역 행정과 치안을 돌봄은 물론, 부랑자들에게 일할 곳을 찾아주는 역할도 했다.

마지막으로 직인법은 살 곳이 정해지고 노동 의무를 받은 사람들에게 노동 연한과 규율 등을 정한 것이다. 매년 중앙정부에서 나와 임금사정도 했다.

결국 영국 노동법의 목적을 요약하면 △떼거지를 막고 △모든 영국인에게 노동을 강제하고 △일을 못하는 사람은 지방에서 먹여 살린다는 것이다.

4. 공장의 탄생과 스핀햄랜드 제도

그런데 18세기 말이 되자 무시무시한 일이 생겼다. 공장도시가 탄생했다. 영국의 전통적인 지역 구분은 크게 교구(주거지, 농업지)와 타운(상업중심지)이었다. 공장도시는 이들 구분을 완전히 망가뜨렸다. 당시 영국의 대외 교역량은 추세적으로는 상승 가도를 달리고 있었으나 진폭이 컸다. 교역량이 늘어날 때는 농촌 인구가 공장도시로 다 빨려들어갔고 공장에 일감이 떨어지면 실업자가 급증했다. 이들은 인근 교구로 흘러들어와 구빈소를 가득 메웠다. 공장도시의 등장으로 인구 이동이 엄청나게 증가한 것이다.

시골지주들은 그 부작용을 두려워했다. 사람들이 공장으로 흡수되면 그만큼 지주의 권력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 때 이들이 내놓은 대책이 바로 스핀햄랜드 제도이다. 스핀햄은 지명이다.

제도는 간단하다. 앞으로 지주들이 노동자에게 무조건 빵 1갤런 값에 맞먹는 돈을 매주 지급한다는 것이다. 가족이 많으면 더 많이 줬다. 막말로 '지주가 무조건 먹여살려줄테니 도시로 가지 말라'는 얘기다. 다른 교구 역시 이 제도를 본받아 순식간에 영국 전역으로 확산된다. 전대미문의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크게 세 가지 문제가 곧바로 불거졌다.

첫째로 더 많은 소득 하위계층이 점차 빈곤의 늪에 빠지게 됐다. 사람들에게 지급해야 할 돈은 지주들의 재산과 지역민의 세금으로 충당했다. 국가법령이 아니니 정부에서는 지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구호를 받는 자(pauper)들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의 세금부담은 더 커졌다. 점차 생활이 악화되니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 결국 구호대상자가 됐다.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이 한없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노동규율 문제도 심각하게 흔들렸다. 이제 구빈소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지역에서 다 먹여 살려주니 사람들은 굳이 일을 열심히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이 때문에 노동규율이 땅에 떨어졌다. 노동생산성이 심각하게 타격을 입었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이 제도 철폐를 강력히 요구했다.

마지막으로 인간 자체가 망가지기 시작했다. 책 8장을 읽으면 상세히 묘사돼 있다. '현세에 아가리를 벌린 지옥의 철학이 나왔다' '이곳은 실로 을씨년스러운 비참의 구렁텅이였고, 이곳으로 이동한 농민은 … 점잖은 삶을 누리던 사람들도 일단 이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면 순식간에 진창 속의 짐승으로 변했다'고 책은 말한다. 예비군들을 생각하면 되겠다. 폴라니는 포퍼들을 노예 상선에 갇혀 숨을 헐떡이는 흑인에 비유한다.

5. 자유주의, 자기조정시장을 움직이는 법칙

우리가 살펴봤듯이, 스핀햄랜드 제도로 인해 빈민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렇다면 당시 사람들은 빈민 증가 원인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그들은 '인구 자체가 늘어났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죽이거나 살리거나 둘 중 하나였다. 살리기(스핀햄랜드)가 실패했으니 이제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다 굶겨 죽이자는 방법밖에 없었다.

일단 당시 '다 죽게 내버려두자'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된 과정을 살펴보자. 1795년 조셉 타운센드라는 목사가 재미있는 글을 배포한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서양을 오가던 영국 상인들이 바다 한가운데 무인도에 고기를 얻기 위해 염소를 풀어놓았다. 이를 질투한 스페인 사람들은 염소들을 다 잡아먹으라고 개를 풀어놓는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염소들이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섬 내의 개와 염소 사이에 일정한 개체 균형이 맞춰졌다.

타운센드는 이 내용에서 문명사적 전환을 이끌어냈다. 죽게 내버려두는 것이 바로 신께서 일하는 방식이라는 얘기. 떼거지들을 죽게 내버려두면 인류가 알아서 균형을 찾아간다는 뜻으로 이어진다.

▲토머스 맬서스. 고전경제학파의 거두 중 하나로 <인구론>의 저자. ⓒ프레시안
이런 주장에 크게 감화된 사람이 오늘날 경제학계에서도 자주 거론되는 토머스 맬서스이다. 그는 빈민구제를 위한 방법으로 "인간 세계에는 항상 식량으로 먹여 살릴 수 있는 수보다 더 많은 사람이 존재한다(수확 체감의 법칙). 따라서 잉여 인간들은 죽여야 한다. 전쟁을 조장하거나 전염병을 일으킬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1편의 내용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이후 낸 책에서는 어조를 조금 완화했고, 3편에서는 산아제한 등의 방법을 제시한다. 목사였던 그는 실제로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애를 낳지 말라고 충고했다.

맬서스와 리카르도와 같은 이들은 바로 이처럼 비관적인 시각으로 자기조정시장을 움직이는 기초 법칙을 찾아냈다. 맬서스가 말한 임금 결정원리를 정리해보자.

만일 적정 임금수요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이 주어지면 노동자들은 그만큼 영양상태가 더 좋아진다. 그런데 인간은 태생적으로 성욕을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태아가 더 많이 생긴다. 이로 인해 노동공급이 늘어나면 그만큼 임금은 떨어진다. 그러면 반대로 노동자들의 영양 상태가 나빠져 노동공급이 줄어들기 시작하고, 어느 순간이 지나면 노동자들은 줄어든다. 이 과정을 통해 적정 임금수준이 결정된다.

인간이 모여사는 사회는 자연 상태와 마찬가지다. 따라서 무조건 내버려두기만 하면 바로 희망의 계기가 싹튼다. 자기조정시장이 자율적으로 모든 균형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복음이 생겨난다. 바로 자본축적이다. 어찌됐든 자본은 계속 축적된다. 인간은 항상 균형 수준을 맞추지만 생산물은 늘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을 죽게 내버려두는 게 사회 전체의 증대를 이끌 수 있다. 이것이야 말로 한없는 진보의 힘이고, 언젠가는 도달할 풍요의 낙원으로 가는 유일한 희망이다. 따라서 자기조정시장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어떤 누구도, 싸구려 동정심으로 빈민 구제에 나서서는 안 된다. 자기조정시장이 작동해 부가 늘어날 기회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는 인류의 적이다.


맬서스나 리카르도가 냉혈한이라 이와 같은 주장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들을 포함한 당대의 경제학자들은 이 자기조정시장 법칙이 바로 뉴턴의 만유인력과 같은 과학이라고 믿었다. 절대진리로 취급했다. 다른 도리가 없기 때문에 인간이 죽도록 내버려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폴라니는 이를 실현시켜야 한다는 신념이 광신이 돼 버렸다고 지적한다. 비참한 지옥에서 헤매는 인류가 구원받을 유일한 길은 전 지구를 자기조정시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광신 말이다. 오늘날 우리가 경제학의 절대진리처럼 여기는 자유주의의 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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