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렘이 돌아왔다. 그동안 <골렘(The Golem)>, <확대된 골렘(The Golem at Large)> 등의 책을 통해서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자극했던 과학사회학자 해리 콜린스와 트레버 핀치가 이번에는 현대 의학에 메스를 댔다. 최근 나온 <닥터 골렘>(이정호·김명진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은 그 결과물이다.
'가짜 의사'의 진실
좋은 책이 그렇듯이 <닥터 골렘> 역시 읽는 이의 관심사에 따라서 수많은 독해가 가능하다. 우선 과학계, 의학계에 몸을 담고 있지 않은 일반 독자라면 '가짜 의사'를 다룬 2장이 눈에 확 들어올 것이다.
1966년에서 1994년까지 영국 언론은 총 91명의 가짜 의사 적발 사실을 보도했다. 그 중 의사 사칭과 같은 수준이 아니라 실제로 의료 행위에 관여했던 이들도 총 27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사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충격적이다. 그들은 '가짜' 의사였지만 '진짜' 의사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콜린스와 핀치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자.
"가짜 의사들 중 대다수가 엉뚱한 약을 처방하거나, 수술을 망치거나, 병을 어떻게 진단하는지 모르거나, 능숙하게 의료 검진을 하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정체가 탄로 났을 거라고 상상할 것이다. 그러나 실은 그렇지 않다. (…) 부적절한 의료 행위가 조사의 일차적인 원인이 되어 결국 정체가 드러난 사례는 (적발 이유를 아는 17건 중) 3건에 불과했다."
예를 들면 마취과에서 의사로 일하던 카터(가명)가 가짜 의사 혐의로 경찰에게 잡힐 때, 그의 상사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에 그때처럼 큰 충격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같이 일하던 간호사 역시 마찬가지다. "만약 가짜 같아 보이는 의사를 하나만 찍어 보라고 했다면 가장 아닐 것 같은 사람이 바로 닥터 카터였어요."
실제로 가짜 의사의 대부분은 의료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의사로서의 전문성을 (서서히) 획득했다. 같이 일하던 의사는 그들을 의심하기는커녕, 때로는 허물을 덮어주면서 그들이 전문성을 획득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그들 중 일부는 직무 수행 능력만 놓고 보면 진짜 의사와 큰 차이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실제로 훈련이 안 된 신출내기 의사나 혹은 의사 자격증은 갖고 있지만 의료 환경은 전혀 다른 (제3세계와 같은) 곳에서 훈련을 받은 의사는 직무 중 학습을 성공적으로 해낸 가짜 의사보다 무능할 가능성이 크다. 콜린스와 핀치가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것처럼 "직무 중 학습을 한 가짜 의사의 일부는 능력이 떨어지는 진짜 의사보다 더 유능하다."
의사 뺨치는 환자
▲ <닥터 골렘 : 두 얼굴의 현대 의학, 어떻게 볼 것인가>(해리 콜린스·트레버 핀치 지음, 이정호·김명진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프레시안 |
1984년 에이즈가 바이러스를 통한 전염병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자, 치료법을 찾으려는 경쟁이 시작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에이즈 환자가 의사, 정부, 제약 업계의 처분만 기다리지 않고 직접 나섰다. 이들은 신약의 임상시험을 놓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나름대로 고안한 새로운 임상시험 방법을 제안했다.
이런 에이즈 환자의 활약은 기존의 의사-환자 관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처음에 비판을 무시하던 상당수 의사, 정부도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에이즈를 옮기는 HIV를 발견한 로버트 갈로가 대표적이다. 처음에 에이즈 환자의 비판을 "과학적인 이해가 아니다"라고 비난했던 그는 나중에 입장을 이렇게 바꿨다.
"(에이즈 활동가 마틴 딜레이니를 놓고) 분야를 막론하고 내 인생에서 만난 사람들 중 단연 가장 인상적인 사람 중 한 사람. (…) 그 사람을 연구소에서 채용해도 되겠다고 말한 사람은 여기서 나 하나만이 아니다. (에이즈 환자들이) 얼마나 많이 알고 있고 그들 중 일부가 얼마나 똑똑한지를 생각하면 때때로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이런 언급은 일반인이 전문가 뺨치는 전문성을 획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그들의 몇몇 주장은 많은 전문가의 지지를 이끌어냈고, 결국 정책 변화도 이끌어냈다. 그들은 "과학이 자격을 갖춘 과학자만 할 수 있는 뭔가가 아니라, (…) 적어도 일부 영역에서는 (일반인도) 전문성을 획득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전문가 되기
이 책에서 가장 논쟁적인 부분은 이런 사례를 놓고 콜린스와 핀치가 내리는 결론이다. 앞의 <골렘> 시리즈에서 "과학기술의 능력이 과도하게 그려지고 있는" 세태를 날카롭게 비판했던 두 사람은 이 책에서 노골적으로 "좀 더 과학의 편에" 선다.
가짜 의사 사례는 적절한 학습만 받는다면 일반인도 진짜 의사처럼 의료 행위를 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콜린스와 핀치는 이 사례에서 다른 의미를 찾는다. 그들은 가짜 의사를 둘러싼 해프닝을 '전문성이라는 것이 결코 단순한 정보 습득으로 쌓을 수 있는 만만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예'로 이해한다.
"(이 사례의) 역설적인 의미는 정보 수집보다 경험에 더 큰 무게를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목적을 위해서는 경험이 풍부한 가짜 의사가 의대를 갓 졸업해 많은 정보를 갖춘 인턴보다 나을 수 있다. 더욱 골치 아픈 점은 정보가 잘못된 정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 정보가 인터넷처럼 알려지지 않은 출처에서 나온 경우에 그러하다."
그렇다면, 일반인이 전문가에게 영향을 준 에이즈 환자의 예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콜린스와 핀치는 이렇게 말한다. "결정적인 문제는 (에이즈 활동가들이 획득한) 전문성을 (기존의 전문가로부터) 전문성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에이즈 활동가들이 성취해낼 수 있었던 것도 다름 아닌 바로 이것이었다."
이런 그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일반인이 충분한 검증 과정을 거쳐서 전문가로 인정을 받을 때, 비로소 그들의 전문성은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과학자(전문가) 되기'는 아주 어렵다. '전문성'에 대한 이들의 이런 주장은 (콜린스가 관련 논문을 쓴) 2002년부터 과학기술학(Science & Technology Studies)계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과학으로서의 의학 vs 구원으로서의 의료
콜린스와 핀치가 이렇게 "과학의 편에" 서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 책의 열쇳말인 '과학으로서의 의학'과 '구원으로서의 의료' 사이의 긴장 때문이다.
암에 걸린 한 개인이 항암 치료 대신 (한 때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한다고 여겨졌던) 비타민 C를 복용할 수 있다(4장). 실제로 많은 사람이 이렇게 기존 의학의 울타리 밖에 있는 이른바 '대체 의료'에 의존한다. 또 그 중에는 성공을 거둔 이들도 많다. 현대 의학의 불확실성 탓에 이런 극적인 예는 더욱더 눈에 띈다.
그러나 콜린스와 핀치는 이렇게 반박한다. "이런 개인 차원의 눈에 띄는 성공 사례 때문에 공동체가 '과학으로서의 의학'을 포기하는 것이 맞는가?" 자원의 희소성을 염두에 두면 이런 질문은 더욱더 무게를 갖는다. 두 사람은 이 질문에서 확실히 '의료의 기사(과학·의학)'의 손을 들어준다.
"'의료의 기사'가 빛나는 갑옷을 입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판금은 삐걱거리고 녹이 슬어 벗겨졌고, 들쭉날쭉한 가장자리 때문에 상처를 입거나 피부가 찢기기도 하며, 검은 무디고 이가 빠져 있다.
따라서 기사에게 접근할 때에는 충분한 지식을 갖추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되, 이를 키우고 연마하고 미소도 보여 주어야 한다.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기사의 임무는 변함이 없을 것이고 보검은 여전히 허공을 가를 것이다."
현대 의학의 옹호자와 비판자, 양자 모두 이 주장을 놓고 여러 가지 답변을 내놓을 것이다. 당신은 어떤가? 덧붙이자면, 아이에게 부작용의 위험이 있다고 여겨지는 백신을 접종할지를 놓고 저자 콜린스와 핀치가 날카롭게 대립하는 과정을 그대로 옮겨놓은 8장은 이 책의 백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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