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21세기 우리 교육은 '초등학생의 방학 중 보충수업'이라는 새로운 풍속도를 만듭니다. 충청북도의 초등학교들은 올 여름방학 때 6학년 보충수업을 실시할 계획입니다. 충북교육청의 사실상 '지시'에 따른 겁니다.
'교과관련 여름방학 프로그램'?
여기에 대해 지역 내 논란이 벌어지자 다른 방식이 동원됩니다. 지난 6월 30일의 교감단 연찬회에서는 또 '권장 사항'이라며 일제고사 대비 대책 수립을 언급합니다.
문서의 첫 줄을 보면, "교과 관련 여름방학 프로그램으로 집중 지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게 뭘 의미하는 것일까요? 다음으로는 정보 교환, 핵심 정리, 기출문제 활용, 반복 지도 등이 나옵니다. '시험 보는 방법 익히기'는 OMR 카드가 생소한 초등학생을 세심하게 배려한 겁니다. 마지막 줄에는 "여름방학 한 달이 학력 향상을 위해 몰입 지도 할 시간임"이라는 강조 문구가 보입니다.
물론 '권장 사항'입니다. 지시가 아닙니다. 하지만 상급자는 권장 사항이지만, 하급자는 지시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충북의 한 초등학교 선생님은 "인성 교육이 중요시되는 초등학생들에게 학력이 최우선인 양 방학 때도 보충수업을 실시하라는 '지시'가 안타깝다"라고 의견을 밝힙니다.
충북교육청의 또 다른 방법은 장학사들이 '순회 지도'하면서 학교를 '독려'하는 겁니다. 그게 독려인지 지시인지 압력인지는 윗 분 앞에 서본 사람이라면 다들 압니다. 이런 이유로 표면적으로는 이번 여름방학 때 '학교 자율'로 10월 일제고사 대비 보충수업을 합니다.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는 말입니다.
'다양성' 충만한 보충수업 일수
덕분에 충북의 6학년 학생들은 방학 때에도 등교해야 합니다. 청주시의 경우, 학교 선생님들을 통해 파악된 사례는 아래의 표와 같습니다. 3일이나 2일인 경우도 있고, 2주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처음 4일은 보충수업 듣고 마지막 날은 시험보는 계획도 있습니다. 한 주 쭉 등교시킨 다음에, 그 다음 주부터는 하루씩 하여 총 10일 등교시키는 학교도 있습니다.
청주시 이외의 지역에서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는 매주 토요일 나오라고 한다, 저기는 7개 학교가 보충수업을 한다, 요기는 방학아카데미라고 하지만 사실은 보충수업이다, 조기는 6학년만 하는 게 아니라 전학년이 보충수업한다 등의 말들이 회자됩니다.
7월 셋째 주부터는 여름방학이 시작됩니다. 학교마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부분 그 때입니다. 그리고 충북의 학생들이 다시 가방메고 등교하는 풍경을 만날 수 있습니다.
누구를 위한 보충수업인지…
2008년 일제고사를 부활시키면서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명분이 있습니다. 부진 학생 판별이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충북에서는 일제고사를 위해 초등학생 보충수업을 실시합니다. 정부는 학생 간 경쟁이 아니라 학교 간 지역 간 경쟁으로 바꾼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소위 '다른 학교는 어떻게 하는데?'에 입각하여 학교 간 지역 간 보충수업 경쟁이 벌어지나 봅니다. 물론 더운 여름날 등교하는 이는 13살짜리 학생입니다.
일제고사는 내신이나 입시에 반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충북은 초등학생 보충수업을 하고, 서울의 한 지역은 초등 1학년을 대상으로 학력평가를 실시하고, 강남의 한 초등학교는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울산은 사설 모의고사를 봅니다. 내신이나 입시와 관계없으면 학생 입장에서는 부담없는 시험인데, 학교나 교육청 입장에서는 그게 아닌가 봅니다.
하긴 정부는 보통 이상 / 기초 / 미달 등 3단계 현황을 지역별로 공개하고, 언론은 줄세우기를 세심하고 친절하게 해주니, 부담을 갖는 분들이 있겠습니다. 더구나 내년 6월에는 전국 16개 시도의 교육감 선거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일제고사 성적이 하위권에서 중상위권으로 올랐다고 하면, 아마 선거운동하면서 주요 치적으로 내세울 수 있을 겁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전례없는 방학 중 보충수업을 받아야 하는 초등학생들은 도대체 뭘까요. 한 선생님은 "모래알만한 가치도 없는 어른들의 욕심에, 인간의 궁극적인 목표인 행복의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가 자문해봅니다"라고 언급합니다.
우리 교육에는 독특한 풍습이 몇 개 있습니다. 교육열, 사교육, 야간 자율 학습 등은 문화인류학이나 교육인류학자라면 국적을 막론하고 구미가 당기지 않을까 합니다. 이 풍습들은 영어로 뭐라고 옮겨야 할지도 마땅치 않습니다. 교육열의 경우에는 'Educational fever'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고, 'zeal'을 사용하는 분도 있습니다. 사교육도 'private education', 'private tutoring', 'shadow education' 등 다양합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흔하지 않은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한국의 특이한 교육 풍습> 사전에 앞으로는 '초등학생의 방학 중 보충수업'이나 '초등학생 야간 자율학습'도 등재해야 합니다. "21세기 들어 이명박 대통령과 몇몇 시도교육감이 만든 새로운 풍속도"라는 설명을 포함시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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