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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부가가치세 올리고 4대강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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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차라리 부가가치세 올리고 4대강 하지 마라"

[김종인ㆍ전성인의 한국경제論]재정정책과 정부 조직 개편

지난 2월 취임할 때만 해도 확신에 가득 찬 것 같았던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행보가 요즘 어지럽다. 법인세 및 소득세 추가 감면 등 감세정책에 대해 하루 동안에도 말이 달라진다. 김종인 박사는 "재정운용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고 평가를 내렸다.

이처럼 자신감이 떨어진 윤증현 경제팀은 '부자감세'로 세수가 부족해지니까 뒤늦게 각종 증세 수단을 찾느라 분주하다. 술-담배세 인상, 각종 비과세.감면제도 폐지 검토 등에서 대표적인 간접세인 부가가치세 인상 얘기까지 나온다. 하지만 부가가치세의 경우 워낙 정치적 민감도가 높은 세금이라 세수 부족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부가가치세 인상을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김 박사는 이상한 세금 따로 붙여서 세제에 혼란을 주느니 "차라리 부가가치세를 인상하라"고 강조했다. 부가가치세(간접세)의 역진성(소득 재분배 효과에 반하는) 문제는 세출을 통해 해결하면 된다는 것. 하지만 각종 간접세 인상을 검토하는 이명박 정부는 세출에 있어서도 '4대강 살리기' 등 역진성이 뚜렷한 정책에 우선적으로 배분하고 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이 서민중심의 '중도실용주의'를 강조하고 나선 것에 대해 김 박사는 "건실한 중산층을 육성하려면 1-2년으로는 되지 않는데 이를 위해선 설득력 있는 프레임 워크가 생겨야 한다. 경제정책을 담당하는 이들이 과연 그런 걸 만들 능력이 있는지 회의적"이라며 정치적 수사에 그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제정책=경기정책' 정도로 협소하게 생각하는 정부 관료들이 과연 사회정책까지 아우르는 큰 틀에서 사고할 수 있을니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김 박사는 "한국의 경제정책이 최근 와서 협소해졌다"고 비판했다.

정부 조직개편 문제에 있어서는 거시경제정책 및 재정과 금융을 담당하는 부서를 분리할 것을 제안했다. 김 박사는 "재정을 만지는 부처에서 금융까지 연관 지어놓으니까 금융만 붙들고 있다"며 과거 재정경제부의 환율 조작 등 부작용에 대해 지적했다.

다음은 지난 6일 김종인 박사 사무실에서 진행된 김종인 박사와 전성인 교수(홍익대)의 대담 후반부다. (대담 전반부 바로 보기 : "하반기 플러스 성장 전환? 낙관하긴 이르다")

▲ 전성인 교수(왼쪽)과 김종인 박사(오른쪽) ⓒ프레시안
건전한 재정 덕에 IMF 위기 넘겼는데…

전성인 : 이제 재정정책을 짚어봤으면 합니다. 오늘 일부 언론에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감세한다고 했다가 안 한다고 했다가 하는 식으로 발언을 바꾸는 걸 두고 '언론 떠보기용 아니냐' 하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감세 논리는 감세를 해야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니 세수도 더 걷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세 정책을 펼치면서 정부는 작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커지는 모습입니다. 민간도 활력을 찾지 못하니 세수를 더 걷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올 법 합니다.

돌이켜보면 집권 여당이 야당 시절에는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목소리를 강경하게 내던 기억이 있는 터라 지금 모습은 자가당착에 빠진 것 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지금 정부는 적자재정을 더 감수해야 한다는 입장도 때로 보입니다. 박사님께서는 감세로 인한 재정적자 확대 우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김종인 : 내가 보기에 윤 장관이 언론을 떠보기 위해 그러진 않았다고 봐요. 재정운용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말이 왔다갔다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감세를 하면 상식적으로 봐도 세금이 덜 들어올 수밖에 없는 거니까요.

하나 짚고 넘어갈 게 있는데, 지금까지 한국 경제의 위기대처 능력은 재정 건전성에서 나왔어요. 비상시 정부 행동반경에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IMF 사태도 극복한 거지요. 최근에도 다른 나라에서 나오는 얘기를 들어보면 한국은 아직 재정에 여유가 있는 편이라는 말들이 있어요. 물론 한국의 GDP 대비 정부 재정적자율이 제대로 계산된 것 맞느냐는 걸 짚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이건 일단 별개의 문제고, 그 동안 일반 재정을 건전하게 끌어온 건 사실입니다.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게 있는데, 감세정책이 현 정부에서만 실시하는 특별한 대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김대중 정부 때부터 계속 한 거잖아요. 노무현 정부에서도 기업환경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내놓은 게 법인세 인하와 소득세 인하였습니다. 그렇게 오랜 기간 감세정책을 이어왔으니 적자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

그래서 감세정책에 대해 평가를 하자면, 지금 상태로 계속 가면 어차피 세수는 계속 줄어들게 돼 있어요. 재정적자는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거지요.

미국에서도 1980년에 레이건이 등장해서 래퍼 커브(세율이 특정 수준을 넘어서면 오히려 세수가 감소한다는 주장)를 내놓으면서 감세정책을 추진했어요. 그런데 감세를 하면서도 국방력은 강화한다고 지출을 잔뜩 늘렸으니 재정적자가 심각해졌지요. 클린턴 정부 와서 많이 해소됐는데, 사실 흑자난 걸 보면 당시 사회보장기금 흑자가 컸어요.

최근에 이명박 대통령도 중도로 간다고 말씀하시던데, 대통령이 말하는 중도가 이념이 아니라 저소득층과 고소득층 사이 중간소득자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사람들 쪽으로 가려면 감세를 하면 안 돼요. 당장 미국의 소득분배 변화를 보면 대체로 민주당이 정권 잡으면 개선되고 공화당이 들어서면 악화돼요. 감세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대통령 말을 보면서 든 생각이 도대체 무엇으로 중도를 해나가겠다는 건지 잘 납득이 안 돼요.

정부 입장에서 감세로 세수는 줄었는데 재정정책은 펴야 되니 재정에 공백이 생기는 게 두렵죠. 그래서 기껏 생각한 게 술, 담배세 올리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담배는 올려봐야 지방세입니다. 국세랑 관계 없어요. 주류세도 국민 건강을 위한다는 게 인상 목적인데, 인상 목적을 달성하면 세수는 '0'원이 돼야 합니다. (왜냐 하면 정말로 인상 목적을 달성할 정도로 세율을 충분히 올려서 술의 소비가 없어지면 당연히 거래세인 주류세로부터의 세수도 0이 될 것이기 때문임, 즉 주류세 본래의 의미에 충실할 경우 세율의 인상은 세수의 증대와 큰 관련이 없다는 뜻: 편집주 주) 술, 담배 등은 가격 변동에 비탄력적이라 명분은 국민 건강을 위한다면서 세금을 더 걷겠다는 게 목적이죠.

재정부에서 한 때 부가가치세 인상방안을 두고 재정학회에 검토를 요청하기도 했어요. 그러니까 거기 대답이 '부가세 인상이 가장 올바르다'고 나왔어요. 사실 합당한 얘기예요. 우리가 부가세 도입한 게 1977년 7월 1일이라서 지금 30년이 지났는데도 부가세율(10%)을 그 동안 한 번도 인상하지 않았어요. 제정할 때 처음에는 13%안이 나왔는데 하도 반대가 많고 논란이 되니까 10%로 내려 지금까지 그대로 왔어요.

왜 그러면 그동안 부가세를 건드리지 않았느냐. 정치권의 평가가 공화당 정권이 무너진 게 부가세라는 것입니다. 공화당이 77년 부가세 도입한 직후 치러진 78년 선거에서 야당에 득표율이 1.3% 뒤졌어요. 정치적으로 워낙 민감한 세금이다보니 아무도 못 건드렸어요.

그래서 이번에 재정부에서 재정학회에 연구를 맡긴 게 명분찾기 아닌가 싶어요. 학계는 정치적 고려를 하지 않으니까. 그러면 재정학회 의견을 진지하게 검토를 하면 좋은데,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니까 이제 와서 또 정부에서 아니라고 변명하기 바쁘더라구요. 이런 식으로 세제정책을 대하면 기본적인 합리성도 추구하기 어려워요.

전성인 : 박사님 말씀을 정리하자면 차라리 부가세를 조금 올려서 거기서 나오는 세수로 재정적자 부족분을 메우고 이를 저소득층을 위해 쓰자는 것 같습니다.

세금의 역진성, 세출로 조절하면 되지만…

▲ 김종인 박사. ⓒ프레시안
김종인 : 맞아요. 무슨 이상한 세금을 따로 갖다 붙여서 감세 공백 메우느니 차라리 부가세를 올리는 게 나아요. 그러면 당장 이런 소리 나올 수 있어요. '아니 부가세는 역진적인데 이걸 왜 건드리느냐. 직접세를 올려야 되는 것 아니냐.' 그런데 지금은 이미 간접세와 직접세의 역진성이니 분배효과니 하는 것들 논의할 시기가 지나갔어요. 부가세의 부작용은 일단 세금을 걷은 다음 역진이 안 되도록 정부가 돈을 잘 쓰면 됩니다. 그 동안 역진효과가 나온 까닭이 정부에서 세금을 걷은 다음에 그걸 이상한 데 많이 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번에도 만약 부가세를 올려 걷은 돈을 4대강 사업 같은데 투입하면 역진성이 뚜렷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거죠.

최근에 독일은 아예 헌법을 개정해서 재정적자에 대한 한계를 법으로 정해버렸어요. 연방정부가 1년에 GDP의 0.3% 이상 빚을 쓰면 안 된다고 강제했어요. 우리도 이런 것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요.

전성인 : 4대강 사업이 참 재정에도 큰 부담을 줍니다. 규모가 22조 원이나 되니까요. 재정문제와도 이 사업을 연계해서 볼 수 있을까요?

김종인 : 이미 정치적으로 결정해서 한다니까 일단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정부가 지게 됐지요. 다만 우리나라 경제 현실에서 강 정비가 그 정도로 우선순위냐 이건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돈 필요한데가 지금 엄청 많은데 4대강이 그렇게 절박한 이유가 뭐가 있느냐는 거예요. 그 엄청난 사업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재정에 큰 부담이 갈 수밖에 없어요. 그만큼 딴 일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그 사업을 한다고 우리나라 경제 잠재력이 얼마나 향상되느냐, 나는 별로 큰 관련성이 없다고 봐요. 오히려 설비투자 늘리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최근 우리나라 수출입동향 보면 잠재력 줄어드는 게 눈에 띄게 보여요. 수입이 줄어드는 게 너무 확연해요. 예를 들어서 IMF 사태 이후 98년에 흑자가 한 400억 달러 났는데 설비투자를 안 하니까 그런 거였어요. 최근에 4개월 연속 흑자가 났는데 그것도 똑같은 거예요. 그런데 이런 경상수지 흑자를 놓고 경제 운용을 잘했다고 착각하면 안 되죠.

전성인 : 아까 이 대통령의 중도론을 잠시 언급하셨습니다만, 6월말에 정부에서 한 2조 원 규모의 서민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이게 일단 재탕삼탕 논란이 있는 것 같긴 합니다만 그만큼 서민대책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최근 한국은 허리가 없어진 거인 비슷하게 돼 버린 것 아닌가 싶습니다. 조금만 상황이 불안해지면 위아래가 따로 놀고 휘청거리는 모습이 말이지요. 한쪽에서는 명품이 불티나게 팔리는데 반대쪽에서는 장기농성이 이어지는 게 대조적이지요. 그래서 요즘 많은 분들이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설사 총량지표가 개선된다손 치더라도 제대로 나라가 굴러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는 말씀들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또 하나 문제가 바로 재정적자에 가려져서 한 동안 관심을 받지 않던 가계문제입니다. 최근 OECD 발표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생필품 물가 상승률이 세계에서 제일 높았지요. 가계가 이처럼 큰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집값마저 오르기 시작하니 정말 어려워졌습니다. 어떻게 해야 견실한 중산층 육성이 가능한지에 대해서 박사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5만원권, 인플레 유발 효과 우려

김종인 : 중산층 육성이라는 게 1년, 2년으로 되질 않아요. 제도를 완벽히 도입해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입니다.

진짜 건실한 중산층을 육성하겠다, 중도로 가겠다면 설득력이 있는 프레임 워크가 생겨야 하는데 그게 전혀 없어요. 현 정부 경제정책 하는 사람들이 과연 그런 걸 만들 능력이 있는지도 회의적이에요.

예를 들어 2조 원이 넘는 돈을 써서 서민대책을 한다고 하는데, 제대로 하려면 정부 재정에서 직접 푸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보면 기껏 하는 게 금융기관에서 저리로 생계자금 빌려주는 정도거든요. 그런데 저소득층은 생계를 위해서 이 돈을 빌린 다음에 못 값을 수도 있어요. 그러면 은행이 부실처리를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정부에서 보증해준다고 하는데, 그러면 실질적으로 정부가 갚아준다는 건지, 아니면 다른 데서 번 돈으로 메워나가라는 건지도 알려줘야 하는데 그게 불확실해요. 사실상 정부가 할 일을 금융권에 떠넘긴 거라고요. 그럼에도 금융권 사람들은 '우리 소관이 아니요'라는 말을 못하는 게 현실이잖아요.

나는 어떤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경제정책이 최근 와서 협소해졌다'고 하는데, 그 동안 경제정책이 서민을 포괄하지 않아서 그렇지 않나 싶어요. 지금은 경제정책이 사회 일반까지 다 포괄하지 않으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시대예요. 옛날식 사고방식에 빠져서 경기정책을 경제정책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물가 문제만 해도 그래요. 이게 서민생활과 가장 밀접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번 봐요.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2%인데 금년에 가장 낮게 나타난 소비자물가가 지난 6월 2.0% 상승입니다. 그러면 사실상 실질금리가 제로 상태예요. 나는 한은 사람들도 과연 진짜 물가안정을 위해 노력하는지 의심이 들어요. 조금 다른 얘기긴 한데, 최근에 5만원권이 나왔잖아요. 이 사실 자체가 인플레 유발요인이 됩니다. 그럼에도 5만원권을 보다 많이 유통시키려고 하는 것이 한국은행입니다.

유럽에 가서 보면 500유로, 200유로 이런 고액권은 보기 힘들어요. 그런데 우리는 고액화폐 대량발행을 위해서 만원권 축소 얘기까지 나오잖아요. 그러면서 명분으로 내세우는 게 '10만 원 짜리 수표 발행을 줄이니까 연간 2800억 원을 절약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5만원권 발행으로 인한 인플레 효과가 연간 2800억 원보다 훨씬 클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하는 것 같습니다.

▲ 전성인 교수 ⓒ프레시안
한은, 물가안정에 좀더 주력해야

전성인 : 오늘 굉장히 중요한 얘기들을 많이 들려주셨습니다. 이제 마지막 이슈에 대해 한번 여쭤보지요. 금융 감독체계 개편 문제입니다. 앞서 박사님께서 한은 감독권 문제는 잠시 언급해주셨지요.

최근 보면 한은법 개정 이야기가 나오고 있고, 금융감독권 강화 논의도 진행 중입니다. 중앙은행이 위기 극복 과정에서 할 역할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겁니다. 여기다가 재정부와 금융위원회 사이 권한 배분 문제도 있지요. 일단 간단히 보자면 한은과 비한은의 밥그릇 싸움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법합니다. 박사님께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김종인 : 왜 중앙은행 권한 확대 얘기가 나왔냐면, 작년에 재정부와 한은의 정책판단에 차이가 조금 있었잖아요? 한은이 '우리는 오로지 물가안정을 위해서 통화량을 조절해야 한다'면서 정부 말을 안 들으니까 '한은도 경제정책에 좀 협조해야 한다, 미국 FRB처럼 고용문제나 성장에도 관심을 가져라' 이런 얘기가 나왔어요.

그런데 미국하고 우리는 성격이 조금 달라요. 한은은 일단 물가 안정부터 제대로 해야 돼요. 재정부나 한은이나 결국 다 같은 정부 맥락에서 돌아가는 건데요, 이런 한국의 현실을 볼 필요가 있어요. 부처간 정책 경쟁이 성립이 안 돼요.

그래서 한은에 감독 권한 더 부여하자는 말도 다 쓸데없는 것 아닌가 싶어요. 막말로 금감위나 재정부에서 그런 권한을 한은에 줄 생각도 안 해요. 다만 지금 한은에서 '돌아가는 상황은 파악할 수 있을 정도의 권한을 달라'는 것인데, 조사권 정도는 줘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전성인 : 저도 전에 한은 감독권한 논쟁이 일 때 '한은이 금융안정이라는 이유만으로 지나치게 많은 감독권한을 갖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식으로 언론사에 기고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통화정책이나 지급결제와 관련한 부분에서는 필요한 권한을 확보해야 하겠지만요. 그런데 최근 상황을 놓고 보면, 처음에는 한은이 약간 우위라는 느낌이 있었는데 최근에는 한은법 개정 태스크포스팀(TFT)이 사실상 기재부가 좌지우지하는 국민경제자문회의 내에 생기면서 주도권이 그리로 넘어간 것 같아요.

한은 감독권 논쟁뿐 아니라 정부 내에서도 힘겨루기가 한창이지요. 재정부와 금융위가 지난 1년 반 동안 사실 싸움을 했습니다. 이미 작년 정부조직개편 때부터 나온 얘기가 최근 다시 거론되는 건데요, 금융통화정책 권한, 외환정책 권한 등을 어떻게 조정할 것이냐가 핵심입니다. 박사님께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김종인 : 지금은 재정부가 외환 부문을 갖고 있고, 금융위는 금융통화 부문을 갖고 있지요. 이런 재조정 논의가 나온 이유가 작년 외환문제가 터졌을 때 전반적인 조정이 안 된다, 콘트롤 타워가 없다 이런 얘기 나와서입니다.

나는 그렇다고 봐요. 일단 금융위를 왜 만들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재조정을 하게 된다면 단일화를 하는 게 맞으니까 둘 다 금융위에 주는 게 낫다고 봐요. 재정부는 진짜 기획과 재정만 담당하고요. 금융위를 떼어낸 이유가 '금융까지 재정부에서 맡으면 너무 막강한 세력이 돼서 곤란하다'는 논리였잖아요. 그러니까 차라리 외환기능도 금융위에 줘버리면 되죠.

전성인 : 일각에서는 노무현 정부 때처럼 예산파트를 떼어내는 게 좋다고도 하는데요.

환율은 계속 평가절상 되는 게 맞다

김종인 : 나는 그건 아니라고 봐요. 정책 총본산을 한군데에 갖다놓으려고 한다면 예산과 거시정책을 같이하고 통화부문을 떼어 내는 게 맞아요. 재경부에서 환율 갖고 있을 때 환율 조작하면서 외환평형기금에 막대한 손실만 보았죠. 한국경제가 선진국 경제에 진입하려면은 수출경쟁력 제고를 통해 환율은 계속 평가절상 되는 게 맞아요. 정부에서 환율 평가절하로 수출경쟁력 높이는 방향으로만 가면 선진국 진입은 요원한거죠. 차라리 외환까지 뚝 떼서 금융위에 주는 게 맞아요. 금융위원회라고 하기 그러면 차라리 금융부로 만들어버리면 됩니다.

전성인 : 금융부를 만들어도 외환조작은 계속 하지 않을까요.

김종인 : 아니 담당하는 부서가 바뀌면 달라질 수 있어요. 60년대 독일 정부를 보면 자유주의적인 에르하르트가 부수상 겸 경제부장관으로 있을 때 각 부처가 완전한 독립을 향유했어요. 그때 보면 경제부는 금융과 외환 권한만 갖고, 재무부는 예산만 했지요.

독일은 워낙 중앙은행 독립이 잘 지켜지기 때문에 정부가 권한을 다 줬어요. 그런데 독일도 최근 와서 감독기능 통합했어요. 그래서 중앙은행과 정부감독청 사이에 한동안 갈등이 있었는데, 결국 해결을 본 게 통합감독기구에서는 감독 지침만 만들고, 그 지침에 따라서 실질적인 감독은 중앙은행이 하라는 식으로 했어요.

우리도 그게 낫지 않나 싶어요. 자꾸 재정을 만지는 부처에서 금융까지 연관 지어놓으니까 재경부에서 금융만 붙들고 있었어요. 금융이 세제보다 쉽고 생색도 나거든요. 그러니 우리나라 세제가 아직도 70년대 상황에서 더이상 발전하질 못한 겁니다.

전성인 : 금융부로 간다면 또 관치금융이 나올 것이라는 이런 걱정들도 있습니다.

김종인 : 앞으로 관치금융은 하기 힘들어요. 그리고 이미 우리나라 금융기관 주주의 60% 이상이 외국인입니다. 정부가 자꾸 관치금융을 하려고 하면 이들 주주들이 계속 가만히 있진 않을 것입니다.

문제를 옛날식으로 풀려고 하면 해결책이 안 나와요. 나는 그런 게 걱정이라면 차라리 기재부와 금융위원회를 통합하여 금융제도에 관한 정책권한만을 갖게 하고 금감원은 따로 무자본 독립법인으로 만들고, 통화정책 권한은 완전히 한은에 주는 게 맞다고 봅니다. 두 번째 안이 될텐데요.

전성인 : 감독은 금감원, 통화정책은 한은, 제도 권한은 재정부로 정리하자는 말씀이시네요. 첫 번째 안이나 두 번째 안 모두 나름의 합리적 이유와 장단점이 있겠지요. 오히려 문제는 감독과 통화정책이 원리에 의해 움직일 수 있도록 시스템을 잘 만들고, 정부는 이를 이상한 쪽으로 이용하지 않도록 하는 관행을 만드는 게 중요하지 않나 싶기도 하네요.

김종인 : 이런 논란이 계속되는 이유가 김대중 정부 때부터 정부조직 개편이 꼬였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IMF 오기 전만 해도 금융감독 책임은 다 한은이 지고 있었는데, 그 당시 한은에 소속된 은행감독원이 감독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결국 IMF 지적에 따라 금융위원회 산하에 금감원을 만들어 오늘날의 상황을 초래케한 것이지요.

전성인 : 맞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때 순수 민간조직을 취지로 출범했던 금융감독 조직내의 관료 부분이 지나치게 비대해진 문제도 있었죠. 사무보조 조직으로 출범했던 공무원 조직이 금감위로 커지고 이번 정부에서는 금융위로까지 확대발전했으니까요. 금융감독 제도 개편은 경제원리와 이런 역사적 특수성을 잘 감안해서 이번에는 좀 제대로 했으면 합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 다시 논의할 기회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때를 기약하며 오늘은 여기서 대담을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언제나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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