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만 한국노총 상임부위원장은 9일 장대비가 쏟아지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 사자성어를 언급했다. "나무는 멈추고자 하나 바람이 나무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는 것. '나무'는 한나라당 및 현 정부와 정책 연대를 맺고 있는 한국노총을, '바람'은 이명박 정부를 비유한 말이다.
현 정부 들어 처음으로 한국노총이 장외 집회를 벌였다. 민영화를 포함한 기관 통폐합, 인력 감축에 덧붙여 대졸 초임 삭감과 단체협약 변경까지 요구하는 정부 때문이다. 전력노조, 금융노조, 철도산업노조, 공공연맹, 정보통신연맹 등으로 구성된 '공공부문 공동투쟁본부'는 이날 1000여 명의 간부들이 모인 가운데 "위헌적이고 불법적인 노사관계에 대한 개입을 중단하라"고 정부에 촉구했다.
한국노총 공기업노조의 이같은 거리 공동 행동은 공기업 선진화 방안이 나온 지 1년 여 만에 이뤄진 것이다. 이들은 오는 18일 조합원 2만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를 다시 열 계획이다.
한국노총을 거리로 부른 것은? "현 정부다"
▲ 현 정부 들어 처음으로 한국노총이 9일 장외 집회를 벌였다. 민영화를 포함한 기관 통폐합, 인력 감축에 덧붙여 대졸 초임 삭감과 단체협약 변경까지 요구하는 정부 때문이다. ⓒ연합뉴스 |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한국노총을 어르기만 했을 뿐, 집권 2년차 들어 더 '세게' 나가기 시작했다. 올해 초 대졸 초임 삭감을 강제로 요구한 정부는 노동부를 통해 각 기관의 단체협약까지 위협하기 시작했다. 모든 단협을 분석하고 정부 기준에 맞게 개정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성과급 삭감을 통해 기존 정규직의 임금마저 깎았다.
정부의 행보는 거침이 없는데 정책 연대는 성과도 없이 1년 넘도록 지지부진했다. 8일 있었던 6차 고위정책협의회에서도 한나라당은 "정부가 하는 일이라…"는 말로 피해나갈 뿐이었다. 그간 몇 차례 한국노총이 기자 회견을 통해 "인내심에 한계가 있다"고 경고했지만, 정부는 한결 같았다.
그런 점에서, 이들이 끝내 거리로 나온 것은 김동만 부위원장의 말대로 "정부가 자초한 것"인 셈이다. 김주영 전력노조 위원장은 "토사구팽"을 언급했고, 배정근 공공연맹 위원장은 "이 정권과 연대한 우리에게 돌아온 것을 '식물노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폭발직전의 현장 "'재앙' MB에 맞서 우리가 정부·여당에 '재앙'이 되자"
사실 공기업은 노무현,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늘 개혁의 대상으로 공격 타깃이 됐다. 그러나 "그래도 그때는 최소한 대화는 했다"는 것이 한국노총의 설명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전 정부에서는 공기업노조의 입장을 들어보려 했었지만 현 정부에서는 그런 것도 일체 없다"고 말했다. '막무가내'라는 것이다.
유례없이 전방위로 벌어지는 공기업노조에 대한 압박으로 한국노총은 최근 공기업 노사관계 등의 문제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 6일 공동투쟁본부를 발족한 데 이어 8일 고위정책협의회에서도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은 "공기업 선진화는 마녀사냥일 뿐"이라며 맹비난했다.
이런 강경 모드는 현장의 누적된 불만에서 비롯된다. 김동유 금융노조 자산관리공사지부장은 폭발직전의 현장 분위기를 "막무가내 폭력을 휘두르는 이명박 정부는 그야말로 우리에게 '재앙'"이라는 말로 설명했다.
김동유 지부장은 "폭력에는 폭력으로 답할 수밖에 없다"며 "지금처럼 우리를 벼랑 끝으로 내몰면 우리 노동자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재앙이 되는 수밖에 없다"고 투쟁을 호소했다.
김동만 부위원장도 "더이상 정치나 법으로 권력의 횡포를 막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상당 기간 '투쟁 모드'를 이어갈 수밖에 없음을 시사했다. 간부 참여의 이날 집회에 이어 18일에는 조합원이 참여하는 규탄대회가 예정돼 있다.
물론 이런 장외 '액션'이 당장 정책 연대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공기업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장내 협상도 필요하다는 것이 지도부의 기본 인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 말까지 풀어야 하는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협상에서도 정책연대는 중요한 카드다.
김동만 부위원장도 "다음주 정책 협의에서 한나라당의 입장 변화를 기다려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로서 한나라당의 입장 변화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이 '줄타기'의 결론은 "현장과 최상층의 목소리 간극이 너무 크지만, 투쟁은 이제 시작"이라는 김동유 지부장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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