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딸은 "언니를 정말 엎어치기 하듯이 내던졌어요"라며 놀란 눈빛을 풀지 못했다. 역시 놀란 기자에게 엄마가 말했다. "철거민은 아파도 안 되고 죽어도 안 돼요."
곡괭이·돌솥…"이건 사람 취급하는 게 아냐"
▲ 8일 용산4구역 철거 현장에서 용역 직원이 항의하는 전철연 직원의 머리를 잡고 바닥에 넘어뜨리고 있다. 범대위에서 활영한 영상의 캡처 화면이다. ⓒ용산범대위 |
참사가 난 지 6개월이 다 되어 가지만 이곳은 말그대로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공사를 밀어붙이는 용역업체의 폭력도, 그리고 터무니없는 보상을 받고 이대로 나갈 수 없다며 맞서는 철거민들의 저항도. 심지어 이를 수수방관하는 경찰까지, 마치 계절만 바뀌어가는 듯한 풍경과 사건이 이곳에서는 날마다 반복됐다.
8일 야만적인 폭력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재개발 현장에는 새벽부터 30여 대의 덤프트럭이 들어왔다. 참사 현장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용역업체는 사고가 난 지 두 달이 지난 지난 3월 22일부터 철거를 재개했고, 이날은 건물 잔해를 실어 나르기 위한 트럭이 처음으로 들어왔다.
부상을 입었던 모녀는 전국철거민연합에 속해 있었다. 철거민들은 덤프트럭을 막으려고 했고, 용역업체 직원은 이를 또 다시 막으려 하면서 충돌이 벌어졌다. '용역'들은 곡괭이를 휘두르고 심지어 돌솥을 들고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경찰은 30분이 지나서야 개입했다. 한 철거민이 말했다. "이건 우릴 사람 취급하지 않겠다는 거야."
경찰이 뒤늦게 끼어들어 다툼을 말렸다. 그들은 '말리는' 방법으로 철거민들을 골목 안쪽으로 밀어붙이는 길을 택했다. 철거민들이 "너희는 누구 편이냐"고 외치며 저항했지만 힘에 부쳤다. 오후 2시, 경찰은 철수했고 용역직원 대부분도 멀리 떨어졌다.
그 뒤에 철거민들은 덤프트럭이 나오는 입구 앞에 앉아 남아 있는 용역 직원들과 말싸움을 벌였다. 한 회원이 "저기 맨 앞에 있는 사람이 용산 참사가 일어난 남일당 건물에서 폐타이어를 태웠던 용역"이라고 귀띔했다. 다른 철거민이 "그 옆엔 물대포 쏘던 놈"이라고 거들었다. 두 직원은 철거민들을 향해 미소를 띠고 서 있었다.
▲ 철거 작업을 하는 굴착기를 막으려고 용산 참사 피해자 유족이 다가가고 있다 ⓒ프레시안 |
위험천만한 일이었지만, 그들은 "이래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5명이 죽었는데도 이제까지 한 마디 사과도 못 들었는데 어떻게 철거하는 걸 지켜만 보고 있냐"고 말했다. 할 수 있는 건 덤프트럭 앞에 주저앉고, 굴착기에 올라가고, 5개월이 넘도록 장례를 치르지 못한 시신을 지키는 것뿐이었다.
참사에 대한 정부의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원하는 이들의 요구는 '실현불가능'한 일일까? 그것을 따지기에 앞서 우선 상대는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맨손으로 매일매일 끝이 보이지 않는 출구를 찾아 싸우고 다치는 것이 전부였다.
"충돌과 대치, 이곳에선 일상"
용산 참사 현장에서 단식 농성 중인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문정현 신부는 "처음 보는 사람은 어리둥절하고 놀랄 일들이 여기선 매일같이 일어난다"라며 "여긴 (재개발에 항의하다)사람이 5명이나 죽은 곳이라 쉽게 밀려날 순 없다"고 말했다.
이강서 신부는 "대화를 거부하고 이렇게 철거만 강행하는 이명박 정부는 우리가 제풀에 나가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라며 "하지만 우리에겐 물러설 곳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서 물러서면 철거민들 다 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그게 여기 사람들 처지"라고 강조했다.
이들이 무작정 '버티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이 날은 본래 '이명박정권용산철거민살인진압범국민대책위원회(용산범대위)'가 서울시청 본관에서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었다. 서울시가 지난 1일 내놓은 '주거환경대책'을 비판하고 용산 철거민들의 생계마련 대책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기자회견은 이날 충돌 때문에 취소됐다. 용산범대위 관계자들은 철거 현장을 지켜야 했다. 유주형 용산범대위 대변인은 "오세훈 시장의 주거환경개선대책은 여전히 원주민과 세입자를 배려하고 있지 않다"면서 "좀 미뤄지긴 했지만 이를 알리는 자리를 곧 다시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날마다 열리는 사제단의 미사, 토요일마다 열리는 '용산 참사를 위한 범국민 추모의 날' 역시 예정대로 진행될 계획이다. 이들은 참사 이후 한번도 이뤄지지 않은 '소통'을 여전히 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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