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1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회복지시설비리척결과탈시설권리쟁취공동투쟁단', '석암재단생활인비상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장애인, 활동 보조인 40여 명이 이 곳을 찾았다. 이들이 내건 구호는 '탈시설-자립 생활' 지원 대책을 마련하라는 것. '탈시설-자립 생활'은 장애인이 복지 시설에서 나와 자유롭게 사는 것을 뜻한다.
"서울시는 약속을 지켜라"
▲ 이들이 인권위를 점거한 이유는 점거와 동시에 서울시청 방향으로 내건 현수막에 요약돼 있었다. ⓒ프레시안 |
서울시는 2008년 11월 7일 '서울-장애인행복도시프로젝트'를 발표하면서 장애인의 자립 생활을 강조했다. 같은 해 12월 24일, 오세훈 시장은 장애인 단체와 만난 자리에서 "탈시설화 정책과 관련해서는 서울시가 진행하고 있는 연구결과를 보고 중앙정부와 협의한 뒤 2009년 6월에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제안했다.
이후 서울시는 지난 3월 서울시정개발원을 통해 서울 지역 38개 시설 내 장애인을 대상으로 이른바 '탈시설 욕구 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연구 결과는 발표되지 않았고, 당초 오세훈 시장과 장애인 단체 측이 약속한 6월 면담도 성사되지 못했다.
이에 대해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임소연 활동가는 "활동 보조인 등 사회적 인프라가 갖춰지면 자립해 살겠다는 장애인이 70%가 넘는다"며 "서울시가 이런 조사 결과에 부담을 느껴 발표를 꺼리고 만나주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시와 면담, 입장차 확인에 그쳐
점거 몇 시간 뒤인 6일 오후 4시, 이들은 서울시 장애인복지과 관계자들과 면담을 가졌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양측은 팽팽한 입장차만 확인했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측에 따르면, 서울시는 주거 대책 마련 요구에 "서울시 혼자 해결할 사안이 아닌 보건복지부와 국토해양부와 같이 진행해야 할 내용"이라고 답했다. 장애인 단체 측에서 요구한 '탈시설 5개년계획' 수립에 대해서는 "진행 중"이라고만 답했을 뿐 구체적 대답은 없었다.
장애인이 참여하는 논의기구를 만들자는 제안에도 서울시는 난색을 표한 것을 전해졌다. 자립 생활에 필수적인 활동 보조인 제도에 관해선 "예산 부족의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고,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면담 요구에 관해서는 "실무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한 후에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서울시 장애인복지과 최효옥 팀장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모든 내용이 현재 검토 중이며 아직 발표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면담 결과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꺼렸다.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발표하기에 적절한 시기가 아닌 것 같다"고만 대답했다.
시설 뛰쳐나온 8명 중증장애인 '막막'
농성 참가자 중에는 장애인단체들이 '비리재단'으로 비판하는 석암재단의 시설을 나와 지역 사회에서 살 것을 선언한 중증장애인 8명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지난 6월 4일부터 33일 동안 서울 혜화동 대학로에서 대책을 마련하길 촉구하는 농성을 벌여 왔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서울시장의 동선을 쫓아 다니며 항의도 해보고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노숙하며 농성도 해봤지만, 서울시의 "관심 밖"이었다. 서울시청에서 한눈에 보이는 인권위 건물을 점거하고 현수막을 내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애인도 자유로운 삶 원한다"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벗어나 자립 생활을 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뭘까?
이원교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자유에 대한 갈망"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장애인도 똑같은 사람으로서 자유로운 삶을 원한다"며 "거창한 꿈이 아닌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데도 이뤄지기 어려운 것은 우리 현실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증거"이라고 지적했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는 송병준 씨는 비리가 만연한 시설 운영에서 이유를 찾는다. 그는 "장애인 시설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어려운지 일반인들은 모른다"라고 운을 뗀 뒤 "일부 시설은 운영비 부족을 이유로 상한 음식을 주고 배설물을 줄이기 위해 밥을 적게 주는 등 반인권적인 학대를 일삼는다"고 주장했다.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나오고 싶어하는 욕구가 비인간적인 처우에서 비롯된다는 지적이다.
점거 농성에 인권위 난색, 장애인들 "끝까지 싸울 것"
6일부터 시작된 점거 농성에 인권위는 7일 오후 공식적으로 철수 요청 공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장애인단체들은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입장이다. 인권위가 시설 보호 요청을 하면 경찰에 연행되는 건 정해진 수순이다.
농성장에서 만난 이들은 마치 어항에서 뛰쳐나온 금붕어 같았다. 이대로 죽을지 답답한 어항 속으로 다시 들어갈지 아니면 큰 물에서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을지 지금으로선 알 길이 없다. 다만 분명한 건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 중증장애인들이 서울 중구 인권위 11층 회의실을 점거하고 있다. 이들은 바닥에 스티로품을 깔고 잠자리를 해결하고 있다. ⓒ프레시안 |
▲ 6일 오후 장애인 단체는 서울시 관계자와 면담을 가졌지만 준비한 요구 사항 중 한 가지도 관철시키지 못했다. ⓒ프레시안 |
▲ 두 중증장애인이 대화하고 있다. 언어 전달은 쉽지 않아도 마음을 전달하는 일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프레시안 |
▲ 중증장애인이 자립 생활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문제다. 공간 문제가 해결된다면 자립 생활은 결코 먼 얘기가 아니다. ⓒ프레시안 |
▲ 중증장애인들은 기본적 인프라만 갖춰지면 자립 주택에서의 독립적인 생활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한다. ⓒ프레시안 |
▲ 한 장애인이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현실은 답답하다. 언제쯤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까? ⓒ프레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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