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 민주당은 창을 베고 누웠고, 갑옷을 벗은 적이 없다. 하지만 그 창을 휘둘러 본 적도 없고, 상대 장수의 갑옷을 벗긴 적도 없다. 그저 갑옷 입고 창 벤 채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렸을 뿐이다.
박한 평가일지 모르겠다. 'MB악법' 저지에 혼신의 노력을 다 하는 민주당에게 '퍽치기'를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하련다. 노력만큼 성과가 없기에 어쩔 수 없다.
예를 하나 들자. '노무현 추모' 정국이 한창일 때 민주당이 5대 요구조건이란 걸 내놨다. 대통령의 사과와 검찰총장 등의 경질, 특검과 국정조사 실시 등을 내걸며 이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6월 임시국회에 등원할 수 없다고 했다.
그 뒤로 어떻게 됐을까? '……'이다. 들어본 적이 없다. 민주당 지도부가 5대 요구조건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걸 들은 기억이 없다. 어느새 없던 일이 돼 버렸다.
그 대신 끌려간다. 비정규직법 문제에 질질 끌려다니며 오락가락한다. 처음엔 해고대란은 없다며 비정규직법 유예 불가를 선언하더니 5인 연석회의에 가서는 '6개월 유예'를 제시하고, 다시 비정규직법 원안 고수로 유턴한다.
결과는 참담하다. 비정규직법 5인 연석회의에 참여함으로써 '등원 거부' 전열은 사실상 무너졌고, 정국 화두는 비정규직법으로 옮아가 버렸다. 비정규직법 5인 연석회의에서 '6개월 유예'를 제시함으로써 논란의 축은 '원안 고수'에서 '시행 유예'로 이동해 버렸다. 한나라당의 정국 탈출 전략에 모터를 달아주고, 한나라당이 펼친 그물에 제 발로 걸어들어간 것이다.
ⓒ민주당 |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이런 오류가 시정될 것 같지 않다.
정세균 대표가 말했다. 대표 임기 2년차의 정책노선으로 정부와의 '친서민' 경쟁을 설정하면서 "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진검승부를 해 보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서민' 행보를 '이벤트'로 규정하면서 이렇게 선언했다.
갇힌다. 민주당이 실제로 이런 노선을 걸으면 이명박 대통령의 프레임에 갇힌다. 청와대가 쳐놓은 '친서민' 링에 올라 아웃복싱을 구사하면 잘해야 '아류', 못하면 '반대만 일삼는 야당'으로 전락한다. 반대로 이명박 대통령은 앉은 자리에서 '친서민' 이미지를 획득한다.
지금이 그렇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민주당은 고리를 걸지 못하고, 정국을 주도하지 못한다. 정국 전체를 관통할 큰 화두를 던지지 못하고 매번 개별정책에 갇혀버린다. 청와대와 여당이 설정한 프레임에 갇혀 '안티' 행보만 반복한다. 그렇게 오락가락 하고 일희일비한다.
문제의 근원은 다른 데 있지 않다. 규모, 즉 '스몰야당'은 구실이 되지 못한다. 근원은 전략과 의지다. '민주주의 후퇴'와 '민생 파탄'을 관통하는 전선을 치지 못하고, 그 전선에서 지구전을 펼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게 문제다.
정세균 대표는 노무현 전 대통령 49재가 끝난 후에 친노 세력을 포함한 민주개혁진영의 연대와 통합을 모색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런 상태라면 공염불이 되기 십상이다. '민주주의 후퇴'와 '민생 파탄'을 한 데 아우르는 전선 속에서, 싸우면서 구축하는 연대가 아닌 한 그건 이른바 '윗대가리들' 만의 이합집산에 그칠 수밖에 없다.
지금 가장 긴요한 과제는 '민주주의 후퇴'와 '민생 파탄' 때문에 길거리에 내몰리고 그 길거리에서마저 끌려가는 민초들을 끌어안는 것이다. 지금 가장 긴급한 과제는 아우성치는 민초들을 이끌 수 있는 비전, 즉 '싸움의 기술'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근원적인 과제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후퇴' 현장과 '민생 파탄' 현장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다시 말해 '개별 싸움'을 '전체 싸움'에 편입시킬 수 있는 '고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짜놓은 링 위에서 청와대가 설정한 프레임에 갇혀 허우적대는 게 아니라 선명하면서도 질기게 싸울 수 있는 자기 판을 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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