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점을 감안하면 예단할 수 없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70만 해고 대란'이 도래할지, 민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월 2∼3만 해고'에 그칠 것일지 예단할 수 없다. 예측의 근거가 희박하고 고용시장의 뚜껑은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예단할 수 없을뿐더러 양당의 주장을 평가할 수 없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히 평가할 수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비정규직법 시행 유예의 최대 근거로 삼는 불경기 지속 기간에 대해서는 '엿장수 맘대로'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우선 국민 앞에서 펼친 행보부터가 '엿장수 맘대로'다. 한나라당이 애초 설정한 유예 기간은 최대 4년이었다. 그랬던 것이 의원총회에서 3년으로 정리했고, 다시 여야3당과 양대 노총이 참여한 5인 연석회의에 와서는 2년으로 줄였다.
들어보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의 경기 전망을 들어보지 못했고, 한나라당의 기업 경영 환경 진단을 들어보지 못했다. 도대체 각각의 유예 기간이 어떤 경기 '예측'에 근거하고 있는지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아니, 듣기는 했다. 한나라당이 아니라 정부로부터 장밋빛 전망을 듣기는 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말했다. 지난 15일 라디오 연설에서 "지난 1분기에 OECD 국가 중 우리 한국만이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을 이루었다"며 희미하게나마 터널 끝에 불빛이 보인다고 말했고, 지난 29일 라디오 연설에서 "OECD와 IMF가 내년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 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고 말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거들었다. 지난 5일 일본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분기에 경제 지표가 호전되면 한국 경제가 어느 정도 바닥을 쳤다고 봐도 좋을 것"이라며 "올 4분기나 내년 1분기에는 좋아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공교롭다. 정부의 이런 장밋빛 '예측'을 경청하고 나니까 한나라당의 음울한 '예측'이 생뚱맞다. 정부는 경기가 갈수록 좋아진다는데 왜 유독 한나라당만 '2년 고행'을 강요하는지 아리송하다.
이런 점 때문일까?
장밋빛 전망을 내놓은 이명박 대통령과 윤증현 장관 모두 토를 달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표 호전에도 불구하고 "실제 회복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고, 윤증현 장관은 "제비 한 마리를 보고 봄을 볼 수는 없다"고 했다.
말은 틀리지 않다. 지표 경기와 실물 경기에 시차가 있고, 성장과 고용이 따로 노는 경우가 다반사이며, 바닥을 쳤다고 경기가 'V'형으로 급반등하는 것도 아니다.
한나라당은 바로 이런 점을 고려해 '만사불여튼튼'의 태세를 갖춘 걸까?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심정으로 앞날에 대비하는 걸까? 그래서 오늘자로 비정규직법이 시행되는데도 유예 주장을 굽히지 않는 걸까?
맞는 것 같다. 불경기가 지속되는 짧은 앞날이 아니라 주∼욱 지속되는 긴 앞날을 위해서 심모원려한 것 같다. 윤증현 장관이 한 말에 따르면 그렇다.
그가 그랬다. 지난 15일 한 강연에 나서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는 외환 위기 때 다소 미흡했던 과제로 이번에도 못하면 우리 경제가 도약하지 못할 것"이라며 "임금·근로 시간을 더욱 유연하게 적용하는 방안을 노사정 협의를 거쳐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에서 노동 유연성을 강구해야 한다는 윤증현 장관의 말에 따르면 한나라당의 비정규직법 시행 유예 주장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한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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