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유들도 있다. 먼저 은행의 견제가 본격화했다. '월급통장=주거래통장=자금회전 증가'로 이어지는 이유로 은행은 월급통장 사수를 위한 공세를 거세게 시작했다. 더군다나 증권업에 지급결제를 허용하는데 따른 문제점도 여전히 잠복한 어려움이다. 금융감독 당국의 감시가 더욱 매서워질 가능성이 높다.
은행 견제 본격화
이미 시중 은행들은 앞다퉈 고금리 상품을 내놓고 있다. 증권사에 물리는 수수료 부담도 늘리는 정책을 속속 발표하고 있다.
가장 먼저 대응에 나선 곳은 SC제일은행. 지난해 입금 후 한 달이 지나면 4.1% 금리를 제공하는 '두드림 통장'을 출시해 단 1년 만에 50만 좌 이상의 판매실적을 거뒀다. 우리은행과 씨티은행 등도 3.5% 이상 고금리 통장을 내놨다. 최근 저금리 기조 속에 CMA통장이 제공하는 금리가 2.5~3%대에 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증권사에는 치명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시중 증권사 영업점 관계자는 1일 "은행에서 경쟁상품이 나오면서 CMA로 이동하려던 고객 상당수가 재고하는 분위기인 점은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하지만 "은행도 이런 고비용 상품을 계속 유지하기는 불가능한 것 아니냐"며 "일정부분 목표만 달성하면 다 사라질 것으로 본다. 지급 금리 면에서 CMA가 은행통장보다 경쟁력이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언급했다.
▲주요 증권사 CMA의 수익률 수준. 최근 은행권에서 대거 고금리 상품을 내놓으면서 금리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프레시안 |
우리은행이 먼저 칼을 뽑았다. 1일부터 우리은행은 자동화기기(CD/ATM) 영업시간 외 현금 출금수수료를 인상한다고 밝혔다. 이 은행 연계계좌를 이용하던 16개 증권사의 CMA 투자자들은 그 동안 내지 않던 수수료를 물게 된 셈이다.
현재 우리은행이 연계계좌 서비스를 제공하는 증권사는 총 20곳으로 이 가운데 우리투자증권, 대우증권, IBK증권, 금호종금 등은 기존에도 출금수수료가 부과됐다.
우리은행은 증권사들에 받는 거래수수료도 올리기 시작했다. 기존 건별 300~500원이던 수수료를 일괄 500원으로 조정했다. 국민은행 역시 증권계좌 개설수수료를 증권사로부터 더 받기로 했다.
이와 같은 은행권의 공세에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같이 성장할 방안을 찾자"며 읍소하고 있다.
한 증권사 고위간부는 "CMA는 어디까지나 투자상품 아니냐"며 "이제까지 너무 은행 중심으로 움직이던 금융시장을 재편하자고 자본시장통합법까지 나왔는데 (은행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며 불만을 토했다.
윤성희 동양종금증권 상무는 "결국 CMA 통장의 기능 자체를 올리고 편의성을 높여서 고객에게 어필해야하지 않겠느냐"며 "실제로 은행이 걱정할 정도의 자금이탈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확인됐다. 갑자기 은행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상황이 오지 않는다는 점을 이해해달라"고 했다.
지급결제, 증권사가 해도 되나
금융감독당국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2일 향후 CMA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의 보도자료를 통해 "불공정거래 방지를 위해 필요할 경우 미스터리쇼핑(판매현장 암행검사)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명목은 증권사 간 과당경쟁을 막는다는 것이지만 업계에서는 금감원의 행보를 두고 "증권사 견제를 위한 것"이라는 시각을 거두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조국환 금감원 금융투자서비스국 부국장은 "대부분 증권사의 소액지급결제 기능은 이번달 말에 시작하는 만큼, 아직은 큰 변화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면서도 "스트레스 테스트도 준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한국은행도 증권사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은은 최근 금융위원회, 금감원 등 관련 당국과 고위급 점검해외를 연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 전해진 명목은 "CMA로의 자금이동 등 시장 교란 우려가 제기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한은이 은행권의 우려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근본적으로는 은행의 고유 업무이던 지급결제에 증권사가 나서는 데 대한 우려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증권사는 경쟁을 통한 서비스 질 강화를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과거 허용여부를 두고 2년 이상 결정이 미뤄진 이유 자체가 "예금을 취급하지 않는 금융기관이 결제업무를 수행하게 되면 금융권 위험이 더 커진다"는 은행권의 반발 때문이었다.
금산분리 원칙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문제다. 소액지급결제서비스가 허용되면서 결국 대기업이 사실상 은행업 진출의 징검다리를 놓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시중 증권사 중 재벌그룹 계열사로는 삼성증권(삼성그룹), HMC투자증권(현대기아차그룹), 동양종금증권(동양그룹), 현대증권(현대그룹) 등이 있다.
CMA의 고성장史 이른바 '만능통장'이라 불리는 CMA는 지난 2004년 첫 선을 보였다. 증권사가 은행과 장벽 허물기에 나서면서 내놓은 대표 상품이다. 증권사들은 당시 어음관리계좌로 불리던 CMA에 은행 서비스 기능을 추가시켜 종합자산관리계좌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바꿔 출시했다. 2004년 1월 삼성증권이 우리은행과 제휴해 만든 SMA(Samsung Cash Management Account)를 시작으로 동양종금증권, 굿모닝신한증권 등이 앞 다퉈 CMA상품을 선보였다. CMA는 기존의 은행이 입출금이 자유로운 요구불예금에 0%에 가까운 낮은 이자를 붙였던 것과 달리 단기간만 예치해도 연 3~4%의 고금리를 얹어주었다. 단숨에 수익성 높은 단기금융상품으로 떠오른 이유다. 이자수익을 기대하지 않는 '노는 돈'을 계좌에 넣고 수시로 인출해도 잔액에 이자가 붙는다는 매력에 봉급생활자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2003년 말 전체 금융자산의 69.92%를 은행이 차지했지만 이듬해에는 67.04%, 2005년 1월이 되자 66.46%까지 떨어졌다. 반면 CMA 잔액은 2003년 말 1조7146억 원에서 2004년 말에는 1조9949억 원까지 늘어났다. 2005년 들어서는 1월에만 2조8294억 원으로 늘어나며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다. 증권사들의 이익도 급증했다. 주식투자 붐이 때맞춰 불었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의 '계좌 옮기기'가 본격화되면서 40개 증권사들의 2005년 상반기 이익은 1조5422억 원을 기록, 전년(5955억 원)보다 159.3%나 성장하는 기염을 토했다. 저금리 기조 속에서 CMA는 해를 넘길수록 인기몰이를 이어갔다. 2006년 8월에 100만 좌를 돌파했고 2007년 3월 200만 좌, 지난해 1월에 500만 좌를 넘어서더니 올해 1월에는 800만 좌에 육박했다. CMA 잔액 역시 2006년 11월 약 7조 원에서 2007년 1월 10조 원, 작년 5월에 30조 원을 넘었다. CMA가 위협적인 수준으로 성장하자 은행들도 자구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각종 수수료 면제와 적금가입 시 우대금리를 제시 등 유인책으로 고객 지키기에 나섰다. 주가연동형펀드(ELS)나 적립식 펀드, 연금보험 등 증권사들에 대항할 수 있는 투자형 금융상품도 확대해 나갔다. 월급 통장을 둘러싼 밥그릇 싸움의 핵심은 소액지급결제에 있었다. 어음이나 수표결제, 지로나 공과금 자동이체, 인터넷이나 전화를 이용한 송금 등의 소액지급결제는 기존의 CMA도 지원하는 기능이었다. 하지만 제휴를 맺은 은행의 가상계좌를 통해서만 결제가 가능했고 은행에 수익의 80%를 수수료로 건네줘야 했다.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