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전국적으로 공모와 심의가 이뤄지고 있는 자율형사립고의 지정 요건이 내년부터는 한층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제1차관은 지난 26일 광주 호남대에서 열린 대한사립중고등학교장회 정기총회에 참석해 "내년에 자율형사립고 지정 요건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올해는 당초 기준대로 가지만 내년에는 애로를 해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주호 차관의 발언은 우선 자율형사립고에 대한 저조한 신청율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각 지역별로 공모 절차가 진행중이거나 마무리됐지만, 국내 665개 일반계 사립고 가운데 전환 신청을 한 학교는 44개에 불과하다.
서울 지역에서는 지난해 조사했던 수요보다 절반에 못 미치는 30개 학교가 신청했고, 대원여고, 인창고 등 3개 학교는 신청을 철회했다. 또 나머지 시·도에서도 1~3개 학교만 신청했으며, 인천, 울산, 전남, 제주에서는 신청 학교가 한 곳도 없었다. 대구에서도 영진고와 경상고가 신청을 철회했다.
이런 상황에서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 공약에 맞춰 2011년까지 100개의 자율형사립고를 설립하려 했던 정부의 목표 달성에도 차질이 예상됐다. 지정 기준을 완화하겠다는 이주호 차관의 발언 역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정책 좌초되려 하니 학부모에게 부담 넘기겠다는 뜻"
현재 사립고교들이 자율형사립고에 대해 가장 큰 '불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재단전입금 요건과 학생선발 방식이다.
정부는 지난 4월 '자율형사립고등학교의지정및운영에관한규칙'을 제정하면서 학교별 필기고사 또는 교과지식 측정을 금지하고 대신 선지원-후추첨 방식으로 학생을 선발하게 했다. 모집 범위도 해당 시·도내 학생으로 제한돼 있다. 이에 대해 사립고교와 보수 언론은 "우수 학생을 뽑을 수 없는 로또식 선발"이라며 불만을 감추지 않고 있다.
또 재단 전입금의 경우 특별시 및 광역시 소재 학교에서는 등록금의 5퍼센트(%) 이상 납부하도록 했으며, 도 소재 학교는 3% 이상 납부하도록 했다. 이는 기존 자립형사립고의 지정 기준이었던 25%에서 대폭 낮춘 것이지만, 이마저도 열악한 재정 상황에 있는 대부분 사립학교에서는 과도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교육계에서는 이 중에서 학생 선발 방식보다 재단전입금 요건이 우선 완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적극적으로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주문하면서 특수목적고와 자율형사립고 등의 학생 선발 방식을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
실제로 현재 서울 지역에서 자율형사립고 전환을 신청한 30개 학교를 살펴봐도 2007년 기준으로 재단 전입금을 5% 이상 납입한 학교가 12개에 불과하다. 다른 시도 지역에서 신청한 학교 중 역시 전입금 기준을 충족시키는 학교는 대구 계성고와 부산 해운대고 정도다. 현재 수준의 재단 전입금을 요구할 경우 목표치인 전국 100개 자율형사립고 설립 달성이 어렵다는 계산이 나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행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사립위원회 사무국장은 "애초부터 교과부가 내놓은 자율형사립고 정책이 탁상공론 수준이었다"며 "이명박 정부가 꼼수를 부려 자율형사립고 재단 전입금 기준을 대폭 완화시켰지만, 이마저도 낼 수 있는 재정적인 여건이 안 되거나, 내기 싫다는 사학들을 예상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행수 사무국장은 "자율형사립고는 교과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심 정책 중 하나"라며 "그런 정책이 좌초될 듯 하니, 지정 요건을 낮춰주겠다고 나오는 것은 결국 모든 부담을 학부모에게 넘기겠다는 뜻"이라고 비판했다.
전교조 서울지부, 사회공공성연대회의, 서울교육공공성추진본부 등은 29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자율형사립고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항의의 뜻으로 삭발식을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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