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 우울한 광경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 사태를 꿰뚫고 있는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1998년 현대자동차 사태의 반복인가? 경제 위기로 어쩔 수 없이 감원을 할 수밖에 없는데, 노동자들이 고통 분담을 거부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다. 쌍용차 문제는 98년 현대차와는 경우가 다르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쌍용차 사태는 경제 위기 탓이 아니고, 따라서 경제 위기의 부담을 누가 질 것인지 혹은 어떻게 분담할 것인지가 핵심 쟁점이 아니다.
정작 문제의 '원흉'은 우리 눈앞에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파업 지속과 해제를 놓고 노동자와 노동자끼리 서로 싸우는 현장에서도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노조와 경영진이 팽팽하게 맞서는 협상장에서도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바로 이, 무대 뒤의 주범은 정부다.
▲ 정작 문제의 '원흉'은 우리 눈앞에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파업 지속과 해제를 놓고 노동자와 노동자끼리 서로 싸우는 현장에서도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노조와 경영진이 팽팽하게 맞서는 협상장에서도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바로 이, 무대 뒤의 주범은 정부다. ⓒ프레시안 |
애초에 상하이차에 쌍용차를 넘긴 것부터가 정부의 결정이었다. 그런데 상하이차가 단물만 다 빼먹고는 쌍용차를 경영 부실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그렇다면, 다시 진창에 빠진 쌍용차에 대해 가장 깊이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은 정부 당국이다.
하지만 정부는 계속 멀찌감치 물러서서 책임을 떠넘기기만 했다. 모든 문제가 쌍용차 공장 안에서만 비롯된 것인 양 몰아갔고, 사태를 완화시킬 수 있었을 기회마다 한사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상하이차가 손을 놓은 상황에서 쌍용차 노사의 책임으로 몰아가니 결국 화살은 가장 힘이 약한 주체, 즉 노동자들에게만 쏟아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의 책임 회피가 화살이 되고 포탄이 되고 대량살상무기가 되어 돌고 돌다가 결국 애꿎은 노동자들만 학살의 희생양으로 만들고만 것이다.
사실 지금이라도 결코 늦은 것은 아니다. 정부만 나서면, 모든 꼬인 실타래를 풀 수 있다. 상하이차에 쌍용차를 넘긴 잘못을 시인하고 공적 자금을 투입해서 쌍용차를 일단 살려놓는 데 나선다면, 복잡하게만 보였던 모든 일들이 간단명료하게 정리될 수 있다. 채권단의 움직임이 바뀌게 되고, 법원의 판단도 인원 감축에만 손을 들어주는 현 상황과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오로지 고려하는 것은 공권력 활용 여부뿐이다. 막상 정부가 해야 할 경제, 산업 정책 영역에서는 책임 회피만을 계속 반복한다. 총체적 책임 회피, 그 끝이 바로 지금의 쌍용차다. 중앙정부뿐만이 아니다. 평택 시민들의 일자리와 서민 경제를 책임져야 할 경기도 지방정부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이 싸움의 대상도 이제는 더욱 분명해져야 한다. 멱살을 잡아야 할 것은 동료 노동자가 아니다. 심지어는 허수아비에 불과한 현 경영진조차 아니다. 한 일터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서로 눈을 부라리게 만든 저 책임 회피의 달인, 정부야말로 지금 준엄히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공적 제1호다.
이 싸움은 결코 쌍용차 노동자들만의 외로운 과업일 수 없다. 정부의 총체적인 책임 회피가 쌍용차 노동자들에게만 그림자를 드리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전 세계 경제 위기에 대한 정부의 부실 대응, 아니 오히려 부동산 투기 조장으로 부실을 늘려가는 역주행 대응은 조만간 대다수 국민을 쌍용차 노동자와 같은 신세로 만들 것이다. 그때 정부는 지금 우리가 쌍용차에서 목격하는 바로 그 태도, 즉 질기고 질긴 책임 회피로 다시금 일관할 것이다.
쌍용차 투쟁은 이 예고된 미래로부터 벗어날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쌍용차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든 노동자, 서민의 마지막 기회. 이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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