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국무총리와 양대 노총 위원장이 27일 저녁 회동한다. 이 자리에는 노동정책 주무부처인 노동부의 김대환 장관도 배석한다. 이들은 비정규직 법안 처리, 노사관계 법과 제도의 선진화 방안 등 노동현안을 놓고 포괄적인 대화를 나눈다고 한다.
이번 회동이 논의주제와는 별개로 주목되는 이유는 지난 4월 노정관계가 경색국면에 접어든 데 이어 7월 '노동부 장관 퇴진' 구호가 노동계에서 터져나온 이래 최악의 노정관계가 3개월이나 지속되던 가운데 성사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회동은 노동현안에 대한 포괄적인 논의와 함께 노정관계 회복을 위해 노정의 각 주체가 머리를 맞댄다는 것 자체에 우선 의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에서 당장 각종 노동현안에 대한 대타협이 이뤄지기를 기대하기보다는 노정 각 주체가 노정관계에 대해 얼마만큼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고, 서로 어떤 타협안을 제출하는지를 주의깊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노정관계 경색, 도대체 무엇을 남겼나?**
우선 살펴볼 것은 이번 회동의 배경이 된 노정관계다. 노동계 안팎에서는 흔히들 현재의 노정관계가 현 정부 들어 최악의 상태라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 7월부터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노동부 장관과 양대 노총 위원장 간의 회동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은 그 상징적인 예에 불과하다.
지난 6월 김태환 한국노총 충주지부장 사망 사고에 대한 김대환 노동부 장관의 태도가 결국은 양대 노총이 노사정위원회를 포함한 각종 노사정 대화기구로부터 탈퇴하는 사태를 낳았다. 더구나 과거 어떤 시기에도 노동위원회에서만큼은 자리를 지켰던 노동계가 이 자리마저 박차고 나오면서 노정관계는 극한으로 치달았다. 이로써 7월 이후 3개월 간 노동행정은 마비상태에 빠졌다.
비정규직 법안이 지난해 9월 입법예고된 이래 1년째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점도 이같은 노정관계 경색의 산물이다. 이것은 '800만 비정규직 시대'라고 표현되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추진된 법안이었지만, 노정간 의견차가 큰 것으로 확인되면서 노정 상호 간에 비방만 난무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피해는 고스란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아시아태평양 지역총회가 연기된 것도 노와 정 모두에게 뼈아픈 상처가 됐다. 국제행사에 국내 사정을 이유로 노동계가 반대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라는 정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집안싸움 때문에 국가위신이 실추됐다는 세간의 비난을 노정 모두 피할 수 없게 됐다.
요컨대 노와 정 모두 얻은 것은 없고 잃기만 했던 게 그간의 사정이었다.
***노-정 상호 분명한 '양보' 메시지 전달해야**
따라서 이해찬 국무총리가 노정관계 회복을 위해 전면에 나선 것은 바람직한 결정으로 보인다. 오히려 노동계가 줄기차게 노정관계 회복을 위해 청와대 혹은 총리실이 나설 것을 주문해 온 점을 비춰보면 때 늦은 감도 없지 않은 게 사실이다.
문제는 이번 회동이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안정적인 노정관계 혹은 대화채널의 복원으로 나아가는 계기로 작용할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지의 여부다. 이를 위해서는 노정 모두 그간 대화단절을 야기한 원인들을 살펴 서로 양해가 가능한 선에서 양보하는 움직임을 '분명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
예컨대 노동계는 노동부와의 대화단절을 야기한 '장관 퇴진' 구호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장관 퇴진 요구는 김태환 한국노총 충주지부장 사망 사고 등 당시의 상황에서는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지만, 그 후에도 노정간 대화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는 부작용을 낳았던 것도 사실이다.
노동부도 양대 노총을 '정규직 이기주의 집단'으로 보는 보수적인 관점을 버리고, 양대 노총에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실현을 위한 가시적인 조처를 약속해야 한다. 예를 들어 노사관계 법과 제도의 선진화 방안이 담긴 노동관계법을 정기국회에서 일괄 처리한다는 방침에서 유연성을 보이고, 비정규직 법안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대화의 의지를 표명할 수 있을 것이다.
노와 정이 분명한 '양보'의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할 경우에는 이번 회동 역시 '단발성'에 그칠 것이며, 노정관계가 개선될 여지가 앞으로도 상당기간 '봉쇄'될 것 같다.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바란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조정-중재 나서야**
또한 청와대와 총리실의 적극적 역할론이 다시 한번 강조될 필요가 있다. 현 정부는 출범 이후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지향한다고 밝혀 왔다. 하지만 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해 노동전문가들은 사회통합적 노사관계의 '실종'이란 표현을 자주 쓰고 있다.
이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노동부를 상대로 한 국정감사에서 장복심 열린우리당 의원은 의미심장한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노동관련 학계, 노동부의 각종 자문위원회 위원, 기자 등 노동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9%가 현 정부의 노동정책 중 가장 실패한 정책으로 '노사정 간 신뢰구축' 정책을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요컨대 주관적, 객관적으로 현 정부가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에 사실상 실패했고, 동시에 정부의 역할이 매우 미미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노무현 대통령 임기가 끝나기 전까지 다시 한번 사회적 대통합 혹은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구축하기를 원한다면, 이번 국무총리와 양대 노총 위원장 간의 회동을 시작으로 노정관계 회복을 위한 조정 및 중재 활동을 적극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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