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용어의 문제
민족(民族)은 영어로 치면 nation에 해당하는 서양 개념을 번역한 한자어다. 동양의 고전은 대부분 한문으로 되어 있었고, 한문에서는 특별히 단어(물론 이것도 영어로 치면 word를 번역한 말이다)라고 하는 관념 자체가 없이 한 음절이 한 단어처럼 사용되었다. 일본어 『위키피디아(ウィキペディア)』 「民族」 항목을 보면, 民자와 族자가 겹쳐서 사용된 최초의 용례는 6세기 중국 남조 제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南齊書』 「列傳第35 高逸傳」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 사용된 민족은 현대식으로 말하면 씨족, 종족, 부족 등 어떤 단어로 바꿔도 괜찮은 느슨한 의미일 뿐이다. 지금 보통 사용되는 것처럼 nation의 번역어일 수 있는 용례는 1837년 중국에서 서양 개신교 선교사들이 편집했던 東西洋考每月統記傳 9월호에 "以色列民族", 즉 "이스라엘민족"이라는 문구가 있다고 한다 (이를 알게 된 것은 용인대학교 장현근 교수 덕분이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에서 이 번역어가 어떻게 만들어져 사용되었는지를 정확히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반면에 한국어에서는 권보드래의 연구 덕택으로 상당히 세밀한 사연을 알 수 있다 ((권보드래, 「근대 초기 '민족' 개념의 변화: 1905-1910 『대한매일신보』를 중심으로」, 『민족문학사연구』 33, 2007년, pp. 188-212). 우선 <표10>에서 보이듯, 『독립신문』에서는 "민족"이라는 단어가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고, "백성"이 가장 많이 그리고 "인민"이 그 다음으로 자주 쓰였다. "민족"이라는 단어가 인쇄된 한국어에서 최초로 사용된 용례는 1897년 『대조선유학생친목회회보』라고 한다. 거기 "邦境을 限하여 民族이 集했다", "優高安樂의 地에 入함은 民族의 固有한 本心" 등의 문구가 나타난다고 하는데, 명백히 뜻은 단순히 불확정적인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출전: 권보드래, p. 198) |
한편 1904년부터 1910년까지 간행된 『대한매일신보』의 경우는 확연하게 다르다. <표11>이 보여주듯이, "백성"의 사용은 현저하게 쇠퇴하고 "인민"의 용례는 어느 정도 남아있지만 대신 "국민"이 점차 가장 자주 쓰이게 된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민족"도 이 시기에 서서히 주요 용어로 자리를 잡은 것이 보인다. 물론 "민족"이 가리킨 의미도 다양하다. 한 집안의 구성원, 사농공상 각 계급, "호남 민족" 등 지방의 주민, 등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고, "숙신 민족", "예맥 민족", "거란 민족"처럼 사용되기도 했으며, "튜톤 민족", "지나 민족", "일본 민족"을 일컫기도 했다. 그래서 권보드래는 이 시기 민족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의미를 ① 막연히 사람들을 가리키는 의미, ② 부족, ③ 일정한 국가에 소속하는 구성원, ④ 국가가 없는 상태에서도 존재할 수 있는 국가의 원형적 집단 등, 넷으로 정리했다. 한국어에서 "민족"은 1897년에 쓰이기 시작해서 1910년까지 ①의 의미에서 ④의 의미로 변천했다는 것이다.
▲ (출전: 권보드래, p. 198) |
현대 한국어에서 "민족"이라고 하면 국가보다 선행하는 자연적 문화적 공동체라는 뉘앙스가 상당히 짙게 깔린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권보드래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그런 뉘앙스는 1908년 즈음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상고사까지 연결되는 추상적인 의미로 발전했다. 이 시기는 신채호가 『대한매일신보』 주필로 있으면서 논설을 집필하는 한편, 『讀史新論』(1908. 8. 27 - 12. 13)을 연재한 시기와 겹친다. 한국어에서 "민족"이라는 용어의 의미가 정착되는 데에 신채호의 시각이 녹아들어간 농도를 짐작할 수 있는 사연이다. 더구나 국권상실 이후에는 국가의 근거를 이루는 원형집단이라는 ④의 의미가 국가의 구성원이라는 ③의 의미보다도 전면으로 부각되기에 이른다.
오늘날 국가의 구성원을 통칭하는 용어를 대표하는 "국민"이라는 말이 이 시기에 정착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그 뒤를 이어 "민족"도 국가의 구성원을 가리키는 용어로 등장한 후, 이내 국가에 선행하는 자연적 공동체라는 의미가 덧붙여졌음을 음미할 가치가 있다. 이런 과정은 사실 고대 서양어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례로, 민족주의 연구자 중 원초론의 입장으로 국제적으로 유명한 스미스는 근대 민족국가의 원형에 해당하는 집단을 지칭하기 위해 에스니(ethnie)라는 프랑스어 단어를 사용한다. 이는 문화, 언어, 교양을 공유하는 인간집단을 가리키니 영어로 치면 에스니시티(ethnicity)이고 한국어로 치면 종족 정도가 된다. 그런데 그 어원인 그리스어 에스노스(ethnos)는 고대어로는 인종, 부족, 종류 등을 느슨하게 가리켰지만, 현대어로는 뜻이 바뀌어서 민족(nation)에 해당한다. 더구나 고대 그리스어 문헌에서 가족, 혈족, 씨족, 부족 따위를 지칭하던 단어로는 에스노스 외에도 게노스(genos), 오이코스(oikos), 프라테르(phrater), 퓔레(phylē) 등이 더 있지만, 각각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집단을 가리켰는지에 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오이코스가 혈통보다는 경제적인 의미, 즉 재산과 노예를 포함하는 의미의 가정을 가리켰고, 프라테르가 어의 상으로는 형제를 가리켰지만 이내 의형제라든지 단순한 동지관계를 포함하는 의미로 발전했으며, 퓔레가 게노스보다는 보통 더 큰 단위를 가리키는 만큼 게노스에 비해 혈통적 연관의 중요성이 약화되는 것까지는 합의가 가능하다. 그러나 그렇다면 게노스는 얼마나 혈통이 중요시되는 것인지를 물으면 분명한 대답은 쉽지가 않다.
스미스는 현대(에스노스=민족) 그리스어와 고대(에스노스=종족) 그리스어 사이의 뉘앙스 차이를 프랑스어 단어 에스니에 살짝 실어서, 마치 민족국가 이전에 그 원형으로서 민족단위의 자연적 공동체가 있었던 것 같은 인상을 뿌렸다. 그러면서 에스니는 반드시 혈통과 직접 연관될 필요는 없는 신화와 상징의 소산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게노스(genos)도 마찬가지로 신화와 상징의 소산이라는 사실에는 전혀 눈길을 주지 않는다. 게노스라는 단어는 "아이를 낳다", "생성하다" 등의 뜻을 가진 동사 게나오(gennaō)에서 파생해서 부족, 인종, 종족 등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어원만 보면 마치 혈연으로 모인 집단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극히 작은 규모일 때까지만 해당하는 일이다. 수천 명, 수만 명으로 부족인구의 크기가 늘어나게 되면 다른 게노스와 교류가 확대되면서 당연히 혈통의 혼입도 이루어졌으리라는 점은 증거가 필요 없는 일이다. 이런 지점에 도달하면 오히려 주어진 게노스의 구성원들끼리 혈통이 어떻게 연관되는지 보다는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들이 어떻게 게노스의 일원으로 편입되고 인정되는지를 찾는 것이 훨씬 흥미롭기도 하고 생산적이기도 한 연구주제일 것이다.
고고학에서 부족의 존재를 확인하는 절차를 보면 이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유적이나 유물을 통해 고대 종족을 연구할 때, 유골들을 수집해서 DNA의 유사성을 찾은 다음에 부족의 존재를 확인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무덤, 그릇, 복식, 등 인공적 관습적 요소들의 유사성으로부터 혈연적 공통성을 유추하는 것이 상식적인 순서다. 나아가, 씨족들을 확인하고 씨족간 공통성을 찾은 다음에 부족을 말한다든지, 부족들을 확인하고 부족간 공통성을 찾은 다음에 고대국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도 고대국가를 확인한 다음 그 준거 위에서 여러 부족들이 같은 국가에 속했다고 말하고, 부족의 존재를 확인한 다음 그 준거 위에서 여러 씨족들이 같은 부족에 속했다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일례로 박순발, 「한국 고대사에서 종족성의 인식」, 『한국고대사연구』 44, 2006년, pp. 5-19를 보라).
▲ 마틴 루터 킹 목사. |
적어도 형태적으로만 보면, 정치적 유대를 근거로 모종의 혈연관련 비유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마틴 루터 킹이나 오바마가 불러들인 상징과 마찬가지다. 킹은 유명한 연설 "I Have a Dream"에서 "언젠가는 바로 저기 앨러배마에서 흑인 소년들과 소녀들이 백인 소년들과 소녀들과 함께 형제자매로서 손을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이런 신념을 지킨다면 우리 민족(nation)의 시끄러운 불협화음을 형제애의 아름다운 교향악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바마 역시 작년 선거때 행한 연설에서, "내 형제와 자매와 조카들은 온갖 인종과 온갖 모습으로 세 대륙에 흩어져 삽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내 유전적인 구조 안에는 이 민족[즉, 미국]은 모든 부분의 합보다 크고, 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졌지만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라는 생각이 각인되어 있"다고 했다 (☞ 바로가기). 미국이라는 정치적 공동체를 준거로 삼아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하나인데 더해, 진정으로 하나, 다시 말해 한 가족으로서 형제자매라는 상징적 탈바꿈이 일어나는 대목을 볼 수 있다.
영어 nation에 해당하는 서양 각국어 단어 역시 현재와 같이 "민족"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다. 이 단어의 어원은 "출생하다"의 뜻을 가진 라틴어 nascor이지만, 고대 로마에서는 natio의 형태로 다양한 외국인들을 가리켰다. 중세에서는 파리나 라이프치히와 같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출신 나라의 언어별로 네 개의 natio로 분류해 불렀는데, 이는 대학마다 달랐다. 예컨대 파리 대학은 프랑스어(현재 프랑스, 이탈리아, 에스파냐 등을 모두 합한 지역), 노르만디어, 피카르디어(현재 벨기에 왈로니아, 프랑스 피카르디 등의 지역), 알레마니아어(현재 영국과 독일을 포함한 북유럽 지역) 등, 네 개의 natio로 분류하고, 라이프치히 대학에서는 마이센, 작소니, 바이에른, 폴란드 등으로 나누는 식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처럼 민족국가의 근거를 이루는 자연적 문화적 유대의 상징으로 nation이라는 단어가 사용된 계기는 근대와 연관을 짓지 않고는 찾기가 어렵다. 프랑스 혁명이나 영국 혁명을 그 계기로 보는 것은 따라서 상식적일 수밖에 없는 접근인 것이고, 단지 정치적 통합의 수준이 얼마나 높아지고 내부적으로 공동체의식이 얼마나 두꺼워졌는지와 같은 세밀한 사항에서는 나라에 따라 다소 이를 수도 있고 늦을 수도 있을 따름이다. 영어 단어 nation-state 역시 확인된 최초의 용례는 1895년이며, 튜톤족을 도시국가와 대비되는 nation-state의 뛰어난 건축가라고 지칭하는 정도의 의미였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배경에 깔고 생각하면, 국민만이 정치적 공동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민족 역시 일차적으로 정치적 공동체를 가리킴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고 하면 한민족에 비해서 더욱 명시적으로 정치적인 구획을 가리키는 것은 틀림없다. 대한민국 국민보다 한민족이라고 하면, 대한민국 이전에도 있었고 대한민국 바깥에도 있는 모종의 인간집단을 가리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차이가 정치적 공동체와 자연적 공동체의 차이로 연결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한민족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일차적으로는 조선왕조라고 하는 정치적 단위를 준거로 해서 구획이 정해지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혹시 이에 대해 조선이라는 정치적 공동체보다 선행하는 민족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어진다면, 그런 관념 역시 고려라고 하는 정치적 공동체의 존재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주시하기 바란다. 또 고려 이전의 민족을 말하고 싶어진다면 당연히 통일신라라고 하는 정치적 공동체를 준거로 삼은 결과다. 계속해서 삼국도 하나의 민족이었고, 삼한과 고조선도 하나의 민족이었다고 말하고 싶어진다면, 장을 바꿔서 단일민족에 관해서 한번 따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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