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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고 또 뛰는' 이 땅의 모든 '마더'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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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고 또 뛰는' 이 땅의 모든 '마더'들에게

[김명신의 '카르페디엠'] 마더가 본 <마더>

* 영화의 전개를 짐작케하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편집자>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를 봤다. 나서는 길이 착잡했다.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만약 나라면?

나는 봉준호 감독 영화보다는 이준익 감독 영화를 선호하는 편이다. 이번에 봉준호 감독 영화를 본 이유는 미국에서 5년만에 귀국한 손윗동서가 '한 마더' 하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한 마더' 한다는 뜻은 살림 솜씨도 뛰어나고 자식 셋을 모두 잘 키워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을 졸업시킨 것은 물론 자녀들이 성장한 지금도 물적 심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헌신적 한국식 엄마라는 뜻이다. 솔직히 지금 먹고 살 만한 한국 엄마들은 거의 다 '한 마더'한다.

소문대로 영화는 스토리가 좋았다. 평소 너무 소탈해보이고 표정이 복잡해보여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여배우 김혜자 씨의 연기도 절박했다. 영화 속 '마더'는 살인 혐의를 둘러쓴 자식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우여곡절을 겪지만, 다른 자식이 피해자가 되는 상황에는 눈을 감는다. 그들의 일상은 어떻게 전개될까? 눈 한번 질끈 감으면 삶이 보장되는데 이를 거부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보고 착잡했던 첫 번째 이유는 만약 내가 그 상황에 빠졌더라면 나는 다르게 했을까라는 질문 때문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영화 속 마더와 비슷한 행동을 했을지 모른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었다.

또 내가 그 상황이라면 나는 어느 지점에선가 자식을 포기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불편했다. 나는 끝까지 헌신할 자신이 솔직히 없다. 모든 '마더'들이 겉으로는 헌신적인 것 처럼 보인다. 주변 부부들 가운데서는 자녀가 대학에 갈 때까지 이혼도 미룬다. 마더들이 이러 저런 일을 포기하고 자식의 편리와 안녕을 위해 노력하지만 과연 자식 때문일까? 영화 역시 일차적으로는 자식을 위해서인 것 같지만 거기에는 과연 애정만 있을까? 자식을 향한 병적인 그 집착은 '살인자의 엄마'가 되기를 거부하는 자기를 향한 집착이 아닐까?

마더들은 자신의 욕구를 자식에 투영한다. 이런 자식이 되어주길 바라는 심정에서 자식을 재단한다. 그러다보니 마더들은 자식을 너무 모른다. 마더들은 자신의 난자와 정자가 결합한 순간부터 자기 몸속에서 자식을 키우고 자식이 태어나서도 24시간을 함께 하기 때문에 자식을 잘 안다고 착각하기 쉽다. 남이 나와 같기를 바라거나 내뜻대로 살아주길 요구하는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허망한 일이지만 마더들은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자식을 몸속부터 키워왔기 때문이다.

영화속 마더는 '자기 자식은 물방개 한마리도 못 죽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자식은 달랐다. 엄마가 아는 자식과 실제 자식간의 차이는 엄청나게 컸다. 자신의 욕구를 자식에 투영하는 엄마. 이는 일상에서 흔하다. 초등학교 학부모의 경우도 아이 말만 믿고 담임 교사가 실수한 줄 알고 교사에게 따졌다가 봉변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식에 대한 기대가 지나쳐 자식의 결혼과 이혼을 내 일처럼 강요하기도 하며 자식에 대해 자기가 보고 싶은 장점만을 본다. 결국 마더들은 자식을 잘 모른다. 그러나 씁쓸했던 점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 영화 역시 일차적으로는 자식을 위해서인 것 같지만 거기에는 과연 애정만 있을까? 자식을 향한 병적인 그 집착은 '살인자의 엄마'가 되기를 거부하는 자기를 향한 집착이 아닐까? ⓒ마더

승자 독식 사회인 한국 사회, 공공성과 배려가 실종되고 청소년, 아동 등 약자에게 무관심한 한국 사회에서는 유난히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다. 책임은 주로 '마더'의 몫이다. 영화 속 마더는 살인죄를 뒤집어쓴 자식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뛰고 또 뛴다. 교육 운동을 하는 나로서는 영화 주인공이 자식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끝없이 혼자 내달리는 장면은 대입 진학 설명회를 끝없이 쫓아다니는 것도 마더들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사교육 광풍에 휩싸인 그들과 자식의 무죄를 밝히려고 들판을 홀로 뛰며 고군분투하는 영화 속 마더가 무엇이 다른가?

승자 독식 사회에서 자식 살길 찾는 것도 엄마 몫, SKY 대학 보내는 것도 엄마 몫(학교 진로상담 교사 몫이 아니라), 제 적성을 찾지 못해 우울증에 걸린 내 자식을 위로하고 치료하는 것도 엄마 몫이다. 한국 엄마들이 처한 상황, 즉 '내 자식은 내가 책임진다'는 것이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한국 엄마들 대부분은 분열적으로 살 수밖에 없다. 마더도 인간인 이상 양면성이 있게 마련인데 그중 그악한 부분만 자주 발현되도록 만드는 한국 사회이다. 엄마들은 '가만 있으면 나만 손해'라는 위기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 결과 자기가 말하는 가치와 행동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사교육이 아이의 창의성을 갉아 먹는 것인줄 알면서 0교시에 야간자율학습까지 눈감는다. 돈에 초연해 도덕적이고 청빈하게 살라고 배웠으면서도 사교육비 마련에 전전긍긍하며 눈감을 수밖에 없는데 제 정신이면 도리어 이상한 것 아닐까?

일부는 대학입시에 유리하다면 편법도 불사한다. 촌지, 학원비, 자녀 수행 평가물도 대신 만들어주고 봉사활동도 대신해주고 스승의 날 선물하느라 백화점을 휘젓는다. 영어 발음을 좋게 한다고 혀 수술을 하기도 한다. 몇 년전 '강남엄마 따라 잡기'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엄마 중에서도 경제력과 정보력이 최강이라며 극성을 부리던 다섯 명의 강남 엄마가 중인공인데 살인적 경쟁과 입시지옥으로 아이를 몰아가고, 이 과정에서 언제 어떻게 상처받을지 모를 아이들의 영혼을 치유하는 몫까지 엄마 몫이다.

한국 사회에서 생존하려면 적당히 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 정상적으로 해서는 이 세상에서 승자가 될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에 한국의 '마더'들은 너무 자주 분열적 인간이 되고 비상식으로 살아간다. 여유가 없고 힘겹고 너무 수치스러워 말을 하고 있지 않다 뿐이다.이처럼 한국 사회는 이 땅을 살아가는 '마더'들에게 무책임하고 비열한 사회이다.

▲ 한국 사회에서 생존하려면 적당히 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 정상적으로 해서는 이 세상에서 승자가 될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에 한국의 '마더'들은 너무 자주 분열적 인간이 되고 비상식으로 살아간다. ⓒ마더

나는 한국의 마더들이 이 영화를 많이 봤으면 한다. 서로들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어떻게 덜 분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청소년에게 무책임한 한국사회에서 마더들이 어떤 괴물이 되어 어떤 괴물 사회를 만들어나가고 있는지 수다떨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영화 속 마더와 현실 속 나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망정 동일인이라는 자각을 했으면 한다.

마더가 마더라는 덫, 내 자식 위하는데 무슨 선악이 있냐는 항변과 궤변에서 벗어나 좀더 상식적으로 마더 노릇을 해도 되는 세상, 내 자식의 마더이자 마더 테레사 수녀님처럼 모든 자식의 마더로서 살 수 있는 세상, 상식적인 그 세상은 아직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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