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9일 한승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금융지주회사법 개정 법률안을 의결했다. 지난 4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30일 우격다짐으로 통과된 은행법과 짝을 이루는 법안이다. 이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산업자본의 은행지주회사에 대한 소유 규제가 완화된다.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금산분리 완화'가 완성된다.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에 대한 규제를 풀 경우 재벌의 사금고화, 금융부실 등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야당, 학계,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금산분리 완화' 정책을 반대해왔다.
하지만 정부는 4월 임시국회에서 은행법을 통과시키는 등 '금산분리 완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이어 9일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하고 6월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태세다.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금산분리 완화'를 밀어붙이려다보니 이명박 정부는 각종 편법과 꼼수를 쓰고 있다. 앞서 이명박 정부는 1가구 다주택자(3가구 이상)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를 추진하면서 국회에서 관련법이 통과도 되기 전에 '소급적용' 방침을 통해 법을 시행하는 등 불법적인 행정절차로 혼란과 비난을 자초했었다. (관련기사 : 정부, '양도세 중과 폐지' 개정안도 제출 않고 시행 )
9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도 비정상적인 절차를 거쳤다. 정부와 여당인 한나라당이 거의 똑같은 내용의 개정안을 내고, 여당 안이 지난 4월 국회에서 부결되자 슬그머니 다시 정부안을 들고 나온 것. 정부입법과 의원발의, 두 가지 경로를 통해 법 개정을 추진해 입법절차에 소요되는 시기를 최대한 줄이겠다는 계산으로 풀이된다.
구체적으로 짚어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0월 14일 은행과 은행지주회사에 대한 산업자본의 지분 소유 한도를 현행 4%에서 10%로 확대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하는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함께 입법예고했다. 하지만 20일의 입법예고 절차가 끝난 뒤 이 정부입법안은 규제심사→법제처 심사→차관회의→국무회의 등 추후 절차를 밟지 않았다. 국회에 제출되지도 않았다.
대신 공성진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들이 의원 발의를 통해 거의 동일한 내용의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각각 11월말과 12월말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입법안보다 의원 발의안이 법안 처리 절차가 간단해 입법 시기를 앞당길 수 있기 때문. 의원발의 형태로 국회에 제출된 은행법은 4월 국회에서 통과됐으나, 금융지주회사법은 부결됐다.
그러자 정부는 지난해 10월 입법예고했던 정부입법안을 다시 들고 나왔다.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9일 논평을 내고 "금융위는 동일한 내용의 법안이 국회로 제출됨에 따라 누구나 폐기됐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도대체 그간 어디 처박혀 있었는지 가늠할 길조차 없는 개정안을 손질해 느닷없이 국무회의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경제개혁연대는 "역시 법과 원칙을 무시한 '관치금융이 달인'들만 모여 있는 금융위원회라 입법기간 단축의 꼼수는 따라올 자가 없는 듯 하다"며 "이 정부에 원칙과 소통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냐"고 비난했다.
이들은 "최근 이건희 전 삼성회장의 1000여 개의 차명계좌를 개설, 관리해준 삼성증권을 포함한 금융기관 및 소속 임직원들에 대한 무더기 징계가 내려졌다"며 "이처럼 산업자본의 지배하에 있는 금융기관들의 비리를 지겹게 목도하면서도, 심지어 우리은행이 삼성그룹의 지배하에 있지도 않으면서 주거래 은행이라는 이유로 불법행위에 가담한 것을 밝혀냈으면서도, 금융위원회는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참여가 은행 경쟁력을 드높일 것이라 주장하냐"고 금산분리 완화의 위험성에 대해 강조했다.
이들은 "국회는 당리당략을 떠나 은행법 및 금융지주회사법상 금산분리 완화가 훗날 우리나라 금융산업 및 경제구조에 어떤 악영향을 가져올지 깨닫고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폐기하고 은행법을 재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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