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신문으로 유일하게 <경향신문>을 구독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본다. 시원찮아 보이는 기사는 첫 줄 보다가 넘어가고 재미있는 것만 더 살펴본다. 몇 달 전부터 그냥 지나가는 글이 많아지다가 거의 외부 필자 글만 보게 되었다. 문제된 유인화 글도 오늘 우리 게시판 기사 덕분에 들어가 보니 그런 글 있었던 것 같다. 첫 줄만 흘낏 보고 그냥 지나쳤던 것 같다. 그냥 틀린 '비'보다 비슷하면서 아닌 '사이비'가 더 나쁜 거라고 공자님도 말씀했다. 그래서 일전의 <프레시안> 글 "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에서도 <경향신문>에 비판의 초점을 맞췄다. (☞관련 기사 : "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사실 <한겨레> 인상이 더 나쁘지만, 훑어보지도 않으면서 비판할 수는 없는 거니까. 그런데 <경향신문>의 그 동안 시원찮은 자세를 비판한다고 했지만. 유인화 글처럼 흉악무도한 글이 있었다는 사실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그걸 염두에 뒀으면 더 세게 조지는 건데.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분을 씹었다 해서 '흉악무도'하다는 게 아니다. 누구를 대상으로 하더라도 미디어의 힘을 그딴 식으로 사람 잡는데 쓰는 건 흉악무도한 짓이다. 사람이 아니라 권력을 비판하는 거라면 강렬한 패러디도 쓰일 수 있다. 하지만 이명박 깐다고 해서…. 그 부부간의 대화를 유인화 식으로 패러디한다는 건…. 너무 조·중·동스러운 짓이다. 일 터지기 전 <경향신문>의 시원찮은 짓들이나 흉악무도한 짓까지도, 반성만 제대로 한다면 구독을 끊을 사유까지는 안 된다. 내게는. 그런데 너무도 반성을 할 줄 모른다. 차악이라도 아껴 줄 가치가 있는 거라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조·중·동이 '비'라면 <경향신문>은 '사이비'다. 돌아가신 분이 신문 보고 마음 상하셨다면 조·중·동 보고 상했겠냐고 내가 물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칠 힘을 조·중·동보다 경향이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사이비는 차악이 아니라 최악이다. 6월 말까지만 반성을 기다려 보겠다. 유인화 글을 보며 글쟁이로서 조심스러운 마음이 더 든다. 게시판에서 이렇게 주고받는 글은 마음대로 써도 괜찮다. 쌍방향이니까. 그런데 미디어를 통해 내놓을 때는 근본적으로 일방적인 것이 된다. 메시지를 내놓기 전에 확고한 것으로 만들려는 강박 때문에 오버하기 쉽다. <프레시안>에 쓰는 데는 시간에도 돈에도 쫓기지 않는 입장이라서 강박이 덜한 편이지만, 그래도 메시지를 분명히 하기 위해 오버할 위험에 늘 불안하다. 10년 전 쓴 글들을 재활용하는 작업을 하면서 그리 심한 망발은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 다행스럽게 여긴다. |
ⓒ경향신문 |
지난 금요일 내가 속한 동호회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경향신문>에 좋은 점이 있다고 봐서 구독해 왔고, 그 동안 추한 꼴 좀 보였다 해서 확 끊어버릴 생각도 없다. 그런데 잘못된 일이 밝혀졌는데도 반성을 제대로 못한다면 계속 구독할 의미가 없다.
영결식이 있던 5월 29일 만평 란과 조그만 사설 한 꼭지에서 "잘못을 저지른 게 있다"는 표시는 있었지만, 그 잘못이 어떤 잘못인지 반성도 충분해 보이지 않았고, 그 잘못을 극복하려는 의지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 시점까지 그 정도밖에 뜻을 밝히지 못하는 것이 한심스러웠지만, 시간을 두고 더 반성하는 게 있겠지, 하고 기다려 왔다.
오늘 아침 두 개 면을 털어 나름대로 그 동안의 반성 내용을 내놓았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제대로 된 반성이 아니다. 그래서 <경향신문>을 끊기로 했다.
두 면 중 한 면(5면)은 아예 반성을 등진 방향이다. <조선일보>, <동아일보>보다 자기네가 나쁜 짓을 덜해 왔다고 우기는 내용이다. 50보 도망간 놈이 100보 도망간 놈 흉보는 꼴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변명도 못 되는 변명에 진짜 반성(비슷한 것)과 똑같은 지면을 쓰다니. 쯧쯧.
그런 대로 반성 비슷한 형식을 갖춘 4면을 들여다봐도 한숨이 폭폭 나올 뿐이다. 주 기사의 소제목만 봐도 "검찰 주장에 대한 반론·해명 보도", "정권 차원의 '기획 수사' 의혹 제기",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엄정 수사 촉구" 등 그래도 자기네가 잘했다고 우기는 내용이 주종이고, 정작 잘못에 대해선 "검찰 발표 의존과 일부 과도한 보도"라고 마지못해 조금 끼워 넣었을 뿐, 끝까지 "성찰하는 언론의 자세 지켜"라며 국면이 완전히 뒤집어진 뒤에 뒷북 좀 친 것을 가지고 생색낸다.
5월 29일 올린 글("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에서 경향신문을 중심으로 언론의 행태를 비판했지만, 나는 미디어 비평가가 아니다. 한 독자로서 불평을 털어놓은 것뿐이다. 신문을 꼼꼼히 보지도 않는다. 읽을 만한 기사가 있으면 읽지만, 마음에 안 드는 기사는 제목이나 첫 줄만 훑어보고 지나가 버린다. 5월 4일자 유인화의 칼럼도 나중에 보니 그런 물건이 있었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나지만 내용은 안 읽었던 것이다. "시원찮은 글 또 하나 있나보군." 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만약 읽었더라면 그 흉악무도함에 분노하지 않았을 수 없다.
오늘 반성 기사 중 이 글을 언급한 대목이 있다. "유인화 문화1부장의 5월 4일자 칼럼 '아내 핑계대는 남편들'은 노 전 대통령이 직접 돈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심을 전제로 썼다. (…) 이는 그만큼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실망이 컸다는 걸 방증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무슨 구차한 소린가? "<경향신문>이 올려서는 안 될 글을 올렸습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는 제대로 된 반성이 왜 못 나오나?
인터넷으로 그 글을 찾아보려 해도 찾을 수 없다. 치워놓은 모양이다. 올려서 안 될 글이라서 없앤 게 아니라 놓아두면 불편하니까 치워놓은 모양이다. 그 글의 한 대목처럼 "소나기만 피하자고. 국민들, 금방 잊어버려." 하는 배짱일까?
우리 동호회 게시판에 보인 대로 그 글의 앞부분을 옮겨놓는다. 보기 흉한 글이다. 흉하지만, 내가 <경향신문> 끊기로 한 이유를 독자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옮겨놓는다.
여자 : 당신 구속 안 되겠지? 다른 대통령들은 2000억 원 넘게 챙기던데. 우린 80억도 안되잖아요. 고생하는 아들에게 엄마가 돈 좀 보낸 건데. 지들은 자식없나. 지들은 돈 안 받았어!
남자 : 내가 판사 출신 대통령이야! 고시 보느라 당신에게 가족생계 떠맡긴 죄밖에 없다고. 15년 전 내가 쓴 책 <여보 나 좀 도와줘>에 고생담이 나오잖소.
여자 : 그래요. 당신 대통령될 때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로 동정표 좀 얻었잖아. 이번에도 내가 총대 멜게요. 우리 그 돈 어디다 썼는지 끝까지 말하지 맙시다. 우리가 말 안 해도 국민들이 다 알 텐데 뭘….
남자 : 걱정 마. 내가 막무가내로 떼쓰는 초딩화법의 달인이잖아. 초지일관 당신이 돈 받아서 쓴 걸 몰랐다고 할 테니까. 소나기만 피하자고. 국민들, 금방 잊어버려.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가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연극 공연용으로 적어본 대사입니다.
누구를 대상으로 하더라도, 아무리 나쁜 사람을 대상으로 해서 쓴 글이라도 이것은 신문에 실어서 안 될 비열한 글이다. '무죄추정' 차원 얘기가 아니다. 대상자의 범죄 행위가 확정판결을 받은 뒤라 하더라도 범죄의 범위를 벗어나는 인격적 모멸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이처럼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는 것은 읽는 사람의 낯을 화끈거리게 하는 부끄러운 글쓰기다. 이런 글을 쓰는 인간, 그 심성은 어떻게 되어먹은 것일까.
이런 글을 <경향신문>은 버젓이 지면에 실었다. 앞으로도 자기네 기자의 의심이 가는 일이 있으면 이런 식의 글을 또 실을 것인가? 앞으로도 자기네 기자가 큰 실망을 느끼는 일이 있으면 이런 식의 글을 또 실을 것인가?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뜻이 오늘 <경향신문> 반성 기사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경향신문>을 끊는다.
<경향신문>이 '조·중·동'보다 나은 신문이니까 지켜줘야 한다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조·중·동'과 비교될 만한 신문을 지켜줄 생각이 없다. 무능하고 무력한 것은 참아줄 수 있고 감싸줄 수 있다. 그러나 떳떳하지 못한 상대에게 사랑을 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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