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오는 이야기는 모두 같습니다. 이대로 가면 공멸이니까 어떻게든 해법을 도출해야 한다며 노사 합의를 종용합니다. 정리해고 문제로 진통을 겪고 있는 쌍용자동차에 대해 언론을 비롯한 제3자는 다들 이렇게 말합니다.
'공자님 말씀'입니다. 그래서 토를 달 수 없습니다. 하지만 무력합니다.
2.
'노사 협상'은 성립할 수 없습니다. 현 상태로는 그렇습니다.
쌍용자동차엔 협상장에 앉을 '사'가 없습니다. 명목상으로 '사'를 대표하는 두 명의 공동관리인에겐 아무 권한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법원이 임명한 사람들입니다. 법원을 제쳐놓고 독자적으로 해법을 모색할 권한이 이들에겐 없습니다.
결정권을 쥐고 있는 법원의 의지는 확고합니다. 회사 존속의 조건으로 감원과 자금 조달계획을 내놓으라고 합니다. 말이 좋아 두 가지 조건이지 사실은 순차 조건입니다. 채권단은 자금 지원의 조건으로 감원을 요구하고 있으니까요.
어쩔 수가 없습니다. 법원은 정책을 펴는 곳도, 정무적 판단을 내리는 곳도 아닙니다. 객관적 현실에 기초해 냉정하게 경영적 판단을 내리는 곳일 뿐입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3.
'이대로 가면 공멸'이라는 얘기는 기만적인 얘기입니다. 더불어 잔인한 얘기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노사 협상은 원천적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노조가 정리해고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노사 자율 합의는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대로 가면'이란 얘기는 '이대로 받아들이라'는 얘기와 같습니다.
노조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이대로 가면 공멸이니까 직장 동료와 그 가족의 생존권을 제물로 삼자고 얘기하는 건 노조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대로 가면'이란 얘기는 윽박지르는 것과 같습니다. 너까지 죽을래? 아니면 너라도 살래?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4.
눈을 다른 데로 돌려야 합니다. 권한없는 '사'와 물러설 수 없는 '노'에서 해법을 찾을 수 없다면 다른 데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법원이 판단의 준거로 삼는 '객관적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곳에 가서 해법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곳이 바로 정부입니다. 자금 지원 결정권을 갖고 있는 곳이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고, 산업은행의 실소유주가 정부이기 때문입니다.
5.
정부가 나설 명분과 이유도 있습니다.
노조는 나누자고 합니다. 고용만 보장하면 임금을 깎아 총비용을 줄이는 걸 감수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니 제발 정리해고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합니다.
'잡 셰어링'입니다. 노조의 이런 주장은 이명박 정부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주창했던 '잡 셰어링' 주장과 다를 바가 전혀 없습니다. 임금을 줄이고 비용을 줄여 한 명의 노동자라도 더 고용하자는 정부의 캠페인과 진배 없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노사 자율 교섭 원칙만 읊조리면서 뒷짐 지고 있습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는 헤아릴 수 있습니다.
정부에게 쌍용자동차는 '원 오브 뎀'일 겁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온리'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과는 달리 정부 입장에선 자동차산업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고, 어느 정도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겁니다. 그래서 쉽게 나서지 못하는 것일 겝니다.
그렇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그러면 그럴수록 정부가 더 나서야 합니다. 국가경제 전체의 관점에서 쌍용자동차의 해법을 모색하려는 기조를 유지하려면 할수록 더 적극 나서야 합니다.
아무 죄도 없이, 회사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희생을 강요당해야 하는 노동자들을 국가가 끌어안을 수 있는 방법을 내놔야 합니다. '잡 셰어링'을 구호로 외칠 게 아니라 구체적 방법으로 제시해야 하고, 구조조정의 억울한 희생자들을 구호할 복지책을 내놔야 합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비빌 곳 없는 노동자들에게 '자력갱생' 하라고 읊조리면서 팔짱 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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