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과 재계에서는 한국인들의 외국자본에 대한 반감을 얘기한다. 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민족주의적 정서에 따른 무조건적인 반감이 아니다. 그간 한국에 진출한 외국자본들의 행태가 반감을 유발했다.
외국자본의 한국 진출은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를 거쳐 급격히 늘어났다. '세계화'를 국시로 내걸었던 김영삼 정부와 97년 외환위기 수습 과정에서 외국자본의 힘을 빌렸던 김대중 정부를 거쳐 '외국자본'은 한국경제의 화두 중 하나가 됐다.
대부분의 외국자본이 단기적 차익을 노리는 재무적 투자에 그쳤고, 이익 추구에 우선하는 자본의 극단적 속성을 보여줬다. 외국자본에 대한 반감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MB정부, 중동자본에 쌍용차 인수 타진
쌍용자동차를 놓고도 마찬가지 논란이 일고 있다. 쌍용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게 대주주인 상하이차 때문이라는 것이다. 상하이차가 처음부터 기술유출 등을 목적으로 쌍용차를 인수한 뒤 신제품 개발, 시설투자 등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 노동계는 상하이차가 '먹튀'를 목적으로 쌍용차를 인수했다고 보고 있다.
노조의 파업에 맞서 쌍용차는 지난 주말 직장폐쇄를 단행했고, 2일에는 직원 1100명에게 우편으로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노조는 이에 맞서 대규모 정리해고는 절대 있을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1일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미국 제1의 자동차 기업 GM이 파산보호신청을 하는 등 세계경제위기를 맞아 자동차 산업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어 쌍용차 문제는 더 해법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2일 지식경제부 등 관계부처에서 흘러나오는 얘기가 쌍용차에 중동자본을 수혈하는 방안이다. 내주 지경부 관계자, 산업은행 관계자 등 우리정부 대표단이 중동을 방문해 카타르 자본의 국내유치 등 경제협력 방안을 다루면서 쌍용차의 자본 유치 여부를 타진해 본다는 얘기다. 정부는 이 자리에서 인수합병(M&A) 물망에 오르는 국내 기업들을 카타르 측에 소개할 계획인데, 쌍용차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는 것.
정부 측은 지난달 25일 방한한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타니 카타르 왕세자가 이명박 대통령을 접견한 자리에서 자동차산업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는 점을 들어 기대를 표명하고 있다.
MB, 대운하·새만금·외환은행 모두 '두바이 펀드'로
▲ 2007년 4월 두바이를 방문해 모하메드 총리와 회동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이 대통령은 두바이 방문 직후 대선 출마 선언을 했다. ⓒ뉴시스 |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의 핵심 공약이었던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대해서도 2007년 8월 31일 한나라당 연찬회에서 "두바이계 펀드 측이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투자하겠다는 의향서를 들고 왔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대선 당시 외환은행 문제 해결 방안으로 "두바이계 펀드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의향이 있다"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었다.
또 이 대통령은 당선 직후 전북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중동 등 적극적인 외자유치를 통해 새만금을 "동북아의 두바이"로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인수위 국가경쟁력강화 특위 공동위원장으로 데이비드 엘든 두바이 국제금융감독센터 회장을 임명하기도 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자산 디플레이션으로 인한 경기침체에 빠지면서 '중동자본'이 세계경제의 '큰 손'으로 재부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랍에미레이트(UAE)의 국부펀드인 아부다비투자위원회(ADIC)는 지난해 미국 뉴욕의 크라이슬러 빌딩을 매입했다. 골드만삭스와 함께 GM 빌딩을 인수한 것도 두바이의 사모펀드였다.
또 최근 두바이의 몰락 등으로 새로운 투자처를 찾고 있는 '두바이 펀드' 등이 미국, 유럽 등 선진국 뿐 아니라 한국 등 신흥국 시장에도 관심을 가질 가능성도 높다.
이 대통령이 '중동자본'에 유독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70년대 현대건설 사장으로 중동 건설 현장을 누볐던 '친숙함' 때문만은 아니다. 중동자본은 중국자본과 함께 현 위기 상황에서 적극적인 해외투자에 나설 만한 체력을 비축하고 있는 자본이다.
英 바클레이즈도 중동자본 '먹튀'로 곤혹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그토록 애착을 보이는 '중동자본'의 성격이다. '재무적 투자자'의 성격을 띤다면 이제까지 한국에 진출해 반감을 샀던 외국자본들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대운하나 새만금의 경우 토목건설에 대한 투자라는 점에서 자본의 성격이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외환은행이나 쌍용차 등 기업 인수 문제는 다르다.
특히 투자자유지역인 두바이의 사모펀드는 대표적인 실체가 불분명한 투기적 금융자본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엄밀히 말하면 '중동자본'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사모펀드는 투자자들을 비밀에 붙이기 때문이다. 외환은행을 인수한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와 관련해 '검은머리 외국인' 논란이 일었던 것도 이를 보여준다.
이런 자본들이 이번 경제위기를 맞아 M&A시장에 나온 한국 기업들을 인수한다면? '먹튀' 논란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영국 금융사 바클레이즈도 아부다비 왕가의 투자사인 인터내셔널 페트롤리엄 인베스트먼트 코프(IPIC)의 '먹튀'로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1일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바클레이즈에 '장기투자'를 약속했던 IPIC는 투자 7개월만에 돌연 보유 지분을 팔아 상당한 투자수익을 올렸다.
투기자본감시센터 홍성준 사무국장은 "현재 쌍용차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산업을 할 수 있는 배경이 있는 자본이 들어와야 하는데 중동 쪽은 자동차산업을 할 수 있는 기반이 거의 안 갖춰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금융자본이 잠깐 들어왔다 나가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에서 중동 쪽이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에 대한 수요가 많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전문기업인 쌍용차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시각을 달리했다. 장기적으로 SUV 시장의 전망이 밝지 않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어 "자동차 산업은 투자를 많이 해야 하는 산업이고, 이에 따라 시장점유 비율이 달라진다"며 "그런데 현 대주주인 상하이차는 투자를 거의 안했고 시장점유율은 계속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현 상황에서 누군가 인수하려면 몇 년간 엄청난 자본투자를 감내해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장기적으로 회사를 운영하려는 마음이 없는 이들이 회사를 인수할 경우, 그 기업은 반드시 기업가치가 떨어진다"고 덧붙였다.
쌍용차 노조는 그래서 GM처럼 '일시적인 국유화'를 하자고 주장한다. 국가가 일시적으로 생산과 고용을 책임지면서 회사를 회생시킨 뒤 '헐값'이 아니라 '제값'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 시장에 내놓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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