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무역흑자가 51억5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4월 무역흑자(57억8000만 달러)에 비해 줄었지만, 여전히 큰 폭의 흑자다. 무역수지는 4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해 누적 흑자가 145억 달러를 기록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1일 올해 200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예언했다.
이처럼 큰 폭의 무역흑자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의 표정이 썩 밝지는 않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이 1일 국내 20대 그룹 임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0%가 '한국경제의 조기회복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4개월째 계속되고 있는 무역흑자가 수출이 늘어서가 아니라 수출보다 수입이 훨씬 더 큰 폭으로 줄어 발생한 '불황형 흑자'이기 때문이다. 5월도 수출이 전년동기대비 -28.3% 줄어들었으나 수입이 1년 전에 비해 -40.4%나 줄어 흑자를 낼 수 있었다.
5월 수출 감소폭 확대…자동차 53.3%, 선박도 16.7%나 줄어
1일 지식경제부가 발표한 '5월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5월 수출은 전년동기대비 28.3% 줄어든 282억3000만 달러, 수입은 40.4% 줄어든 230만8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4월에 비해 수출, 수입 모두 큰 폭으로 줄어든 것. 4월에는 수출이 1년 전에 비해 19.0%, 수입은 35.6% 줄었었다.
품목별로 보면, 그동안 수출 감소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선박마저도 감소세로 돌아섰다. 선박 수출은 1년 전에 비해 16.7% 줄었다. 자동차는 53.3%로 절반 넘게 감소했다. 기계(-37.7%), 가전(-34.2%), 반도체(-24.4%), 컴퓨터(-40.2%), 석유제품(-63.3%) 등도 크게 줄었다.
지식경제부는 "중국을 제외한 일본, 대만, 싱가폴 등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선전한 것"이라면서 "6월은 기저효과 완화와 조업일부 증가 등으로 수출감소율 개선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환율효과 감소, 국제유가도 상승 추세
그러나 세계적 경제위기 상황에서 수출 증가 요인이 크지 않아 수출 감소추세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게 업계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달 31일 '불황형 경상수지 흑자의 한계와 과제'라는 보고서에서 "주요 교역대상인 미국, 일본, 중국의 수입 증가율도 30% 이상 감소해 우리나라의 수출 부진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원·달러 환율이 강세로 돌아서 원화 약세로 인한 '착시 효과'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LG경제연구원은 지난달 10일 '최근 글로벌 기업과 한국 기업의 경영성과 비교' 보고서를 통해 "한국기업의 실적 개선은 환율이라는 외부요인 때문"이라며 "환율이 하락하면 한국 기업의 실적은 다른 글로벌 기업보다 더 크게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현대경제연구원도 위 보고서에서 "환율 추가하락이 예상돼 수출 가격 경쟁력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국제유가를 비롯한 원자재가 상승 추세라는 점도 무역흑자 규모 축소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윤 장관의 1일 "200억 달러 무역흑자" 발언도 하반기로 갈수록 무역흑자 규모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5월까지 누적 흑자가 145억 달러이므로 하반기 무역흑자는 55억 달러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윤증현 "빠른 경제회복" 예고했지만 기업들은 'L자형 장기침체' 전망
따라서 한국 경제가 'L자형' 장기침체로 가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국내 20대그룹 임원들은 올 하반기 경영실적이 부진할 것으로 내다봤다.
1일 전경련이 20대 그룹의 임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올 하반기 국내매출, 수출, 영업이익 등이 부진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들은 국내매출이 상반기에 비해 호전될 것으로 봤지만 수입과 영업이익 등은 부진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응답자의 90%가 'V자형'의 빠른 경기회복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20대 그룹 중 16개 그룹은 연초 수립한 연간 경영목표와 계획을 하반기에도 변함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4개 그룹은 하반기 경영목표를 다소 축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하반기 기업경영에 영향을 미칠 최대 경제변수로는 경기회복 지연(세계경기 회복 지연 29.6%, 국내경기 침체 지속 29.6%), 국제유가 및 원자재가격 상승(25.9%) 등을 꼽았다.
반면 윤증현 장관은 이날 제주대학교에서 열린 '한·아세안 경제협력 포럼'에서 "한국과 아세안(ASEAN)의 성공적인 과거 경험과 협력이 어우러지면 현재의 경제위기도 빠른 시간 내에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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