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극이 너무 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비통한 심정으로 애도하는 사람들은 검찰의 책임을 묻는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교묘한 언론플레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덤덤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은 검찰을 옹호한다. 검찰의 수사는 비리 혐의에 대한 정당한 수사였다고 주장한다.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처럼 다른데 어떻게 화해할 수 있겠는가. 가능하지 않다. 이런 시각차를 묻어두고 손을 맞잡는 행위는 공모 행위다. 양자가 공모해서 진실을 은폐하는 행위다.
화해는 나중에나 모색할 일이다. 지금 긴요한 건 따질 걸 분명히 따지는 일이고 가릴 걸 분명히 가리는 일이다.
좋은 예가 있다. 시각차를 확인하고 진실을 가리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소재다. '동아일보'의 보도다.
'동아일보'가 사설에서 주장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죽였단 말인가"라고 물었다.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직 대통령의 죽음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것을 '누구의 탓'으로 돌리자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 신문의 육정수 논설위원이 주장했다. "대통령과 검찰에 응분의 책임을 강요할 만한 근거는 현재로선 없다"고 했다. 책임 추궁에 상응하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했다.
그가 그랬다. "정권과 검찰, 특정 신문들이 거짓 혐의 사실을 흘리고 보도함으로써 죽음으로 몰았다는 주장"은 "억지"라고 했다. 오히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최대한 예우하면서 신중한 조사 태도를 보였다"고 했다. "검찰 소환 후 너무 오랫동안 법적 처리를 미루는 바람에 죽음을 재촉했다는 주장"은 '왜곡"이라고 했다. 오히려 "박연차 씨의 진술과 객관적 자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혐의사실을 부인해 증거 보강수사를 하던 중이었다는 검찰 설명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 걸 기준으로 삼자. '동아일보'의 이 같은 주장을 지렛대 삼아 진실 확인의 필요성을 확인하자.
반대 정황이 있다. '동아일보'가 "억지"라고 주장한 "거짓 혐의 사실을 흘리고 보도(한 행위)"가 꼭 "억지" 만은 아님을 시사하는 사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창이 밝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부는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받았다는 1억원짜리 명품시계를 구경도 못 했다고 밝혔다. 박연차 회장이 이 시계를 건넨 상대방은 노건평 씨 측이라고 했다. 노건평 씨의 부인이 권양숙 씨에게 전화를 걸어 시계 수령 사실을 얘기하자 권양숙 씨가 "논두렁에 버리든지" 알아서 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또 있다. 검찰이 전 시애틀 총영사와 노건호 씨의 경호원을 조사했을 때 '동아일보'를 비롯한 언론이 의혹을 제기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받은 100만 달러를 아들 노건호 씨에게 전달하기 위해 대통령 직위를 이용한 의혹,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 차 과테말라로 향하다가 기착한 시애틀에서 몰래 100만 달러를 전달했을 가능성을 집중 부각시켰다. 하지만 이 의혹은 권양숙 씨가 딸 노정연 씨에게 돈을 나눠 전달했다는 검찰발 소식이 나오면서 묻혀버렸다.
아주 상징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뇌물 수수범'을 넘어 '파렴치범'으로까지 몰아갔던 의혹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 때문만이 아니다. 이것이 약화시킨다. 검찰 수사의 핵심 문제, 즉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금품이 오간 사실을 대통령 재임 중에 알고 있었는지를 살피는 창을 뿌옇게 가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명품 시계를 받아 손목에 찼다면, 외국 방문길에 100만 달러를 몰래 숨겨간 사실이 확정됐다면 그 순간 논란은 종지부를 찍었을 것이다. '동아일보'의 주장대로 "전직 대통령의 죽음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것을 '누구의 탓'으로 돌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금품 수수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음을 암시하는 정황이 하나 둘 나오고 있다.
그래서 제기하는 것이다.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으면서도, 그것도 전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불러 조사했으면서도 23일이 지나도록 사법적 판단을 미룬 검찰의 처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고 책임 소재를 따지는 것이다. 객관보다 주관을 앞세웠을 가능성, 사실보다 의도를 우선시했을 가능성, 과정에 천착하지 않고 결과를 미리 도출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정하지는 않겠다. 검찰 수사가 형편없었다고, 그런 수사는 안 하느니만 못했다고 몰아가지는 않겠다. 정황에 기댄 섣부른 예단이 아니라 엄격한 사실 규명을 통한 확정만이 논란을 해소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야만 훗날 또 발생할지 모를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의 시금석이 마련될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동시에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린 검찰의 조치를 되살펴야 한다. 사망한 피의자를 대상으로 한 수사는 지속할 수 없다는 사법논리가 문제라면 수사가 아니라 규명 차원에서라도 해법을 찾아야 한다. 추가 수사가 불가능하다면 그동안 축적한 수사자료만이라도 공개해야 한다. 다른 게 힘들다면 최소한 노무현 전 대통령 진술조서만이라도 공개해 대척관계에 있던 의혹과 항변의 줄기가 무엇인지 국민이 알도록 해야 한다. 이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를 여는 '서막'이어야 한다.
걱정할 필요 없다. 수사자료 공개가 확정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공개하는 것이라면, 그래서 고인에게 누를 끼치는 것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미 피의사실은 과도할 만큼 공개되지 않았는가. 누를 끼치는 것으로 모자라 고인의 이미지는 누더기가 되지 않았는가.
검찰이 안 하면, 나아가 MB정부가 거부하면 국회가 나서야 한다. 국회의 권한으로 수사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제출받은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이건 정치공세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국가원수의 도덕성을 확인하고 권력의 수준을 재기 위한 당연한 업무이자 역사적 과제다.
ⓒ동아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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