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앞 서울광장부터 숭례문을 지나 서울역까지 이어지는 거리에는 수 만 명의 시민이 운구 행렬을 기다렸다. 애초 오후 2시에 서울역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운구 행렬은 몰려든 인파로 인해 계속 지연돼, 3시에야 서울역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을 맞아 양복과 정장을 입은 직장인도 서울역과 숭례문 일대에서 쏟아져 나와 행렬을 지켜봤다. 또 앞치마를 두른 식당 직원, 공사장 인부 등도 잠시 일손을 놓고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길을 배웅했다.
검은색 정장과 옷을 차려입고 노제에 참석하기 위해 거리에 나온 시민들은 각자 라디오나 휴대전화를 통해 생방송되는 노제 상황에 귀를 기울였다. 서울역 앞으로 지나가는 고가 위에도 수백 명의 시민들이 올라가 숭례문에서 서울역까지 이어지는 행렬을 지켜봤다. 서울역 광장에 설치된 대형 화면으로 생방송을 보면서 시민들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오후 3시경, 2000여 개의 만장을 앞세운 운구 행렬이 서울역 앞에 서서히 도착했다. 서울시청 앞 광장부터 행렬을 따라 이동한 시민들, 그리고 역 인근에서 대기하던 시민의 인파가 합쳐졌고, "이명박은 물러나라"를 외치거나 "노무현"을 너나할 것 없이 연호했다.
당초 운구 행렬은 서울역까지 도보 이동을 마치고 수원 연화장으로 떠날 예정이었다. 그러나 몰려든 수십만 명의 행렬에 막혀 운구 차량과 뒤따르는 조문객 버스는 좀체 움직이지 못했다. 일부 시민은 다시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뒤돌아 갔지만 만장을 앞세운 행렬은 서울역에서부터 삼각지역까지 차로를 통해 행진을 계속했다.
당초 오후 3시께 연화장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운구 행렬은 인파에 가로막혀 오후 5시 30분께야 겨우 반포대교를 지나 한강을 건너 빠른 속도로 수원까지 이동 중이다. 서울역부터 삼각지까지 길게 이어진 인파는 아쉬움을 떨치지 못한 듯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후 운구 행렬이 지난간 뒤인 오후 5시 40분경 만장 행렬은 다시 방향을 돌려 서울역 방향으로 이동했다.
▲ 운구 행렬과 만장이 서울역을 지나고 있다. ⓒ프레시안 |
"꼭 돌아가신 다음에야 깨우치는 게 안타깝다"
시민들은 그늘 하나 없는 아스팔트 차도 위에 검은 옷을 입고 서 있었지만,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박세라(30) 씨는 "노통 지지자는 아니었지만 이 정권 때문에 힘없는 한 사람이 당했다는데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전경은 광화문 근처에만 깔리고, 정작 교통 정리가 필요한 곳에는 없지 않나"라며 "직접 나와보니 정말 이 나라 정부와 경찰이 시민들을 단순히 시위자와 폭도로만 보는구나 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경기도 이천에 있는 직장을 다니다 하루 휴가를 내고 이날 노제에 참석했다는 하민수(31) 씨는 "구체적으로 느낌을 표현하긴 어렵다"며 "노무현 대통령은 대한민국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분이었고, 아직 이런 정치인이 없다"고 말했다.
조카와 함께 나온 박기일(39) 씨는 "유일하게 깨끗한 대통령이었다. 너무 서럽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말했다. 그는 "조카에게 창피했지만 눈물이 너무 많이 나왔다"며 "앞으로 젊은층이 투표를 잘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꼭 돌아가신 다음에야 깨우치는게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역시 하루 휴가를 내고 참석했다는 이민수(가명·59) 씨는 "오늘 나와서 노무현 정신을 다시 생각했다"며 "우리 사회가 그쪽으로 가야 하는데 안타까운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민들은 누가 이런 상황을 만들었는지 다 알고 있다"며 "이렇게 집에 가지 못하고, 노 전 대통령을 보내지 못하고 행진을 계속하는 것에는 분노가 섞여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각지역에서 운구차를 대기하던 인파 가운데에서 만난 김경희(29) 씨는 "운구차를 마지막으로 보려고 기다렸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 가시는 길 마지막까지 시민들이 함께 하니까 쓸쓸하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실은 차량을 떠나보내지 않으려는 인파로 인해 운구 행렬은 서울시청 앞 광장을 떠난지 4시간 가까이 되어서야 한강을 건널 수 있었다. ⓒ프레시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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