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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그 '뜨거운 여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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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그 '뜨거운 여름'의 역사

1919→1987→2002→2008, 그리고 2009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치러지고 있는 시청 앞 서울광장에는 50만 추모 인파가 몰려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고 있다. 지난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일부터 경찰 차벽에 둘러싸여 엿새 동안 가로막혔던 '광장'을 되찾은 시민들의 물결은 그 자체로 '민심의 힘'을 웅변한다.

▲ 2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치러진 서울광장에 모인 추모인파 ⓒ프레시안

서울광장과 덕수궁 대한문 앞은 역사의 굴곡 때마다 민의가 모이는 곳이었다. 1919년 고종 황제의 국장일에 백성들은 고종의 거처이던 대한문 앞에 모여들어 망곡을 했고, 그 열기는 3.1 운동으로 이어졌다.

1987년 그 자리는 다시 한 번 역사의 무대가 됐다. 최루탄에 맞아 숨진 연세대생 이한열 씨의 노제에는 100만 명의 학생과 넥타이 부대가 몰려나와 '독재타도'를 외쳤고 결국 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2002년 6월은 월드컵 축구 응원의 장이었다. 100만 명이 넘는 붉은악마 응원단이 시청 앞 광장과 광화문 사거리에 모여 월드컵 4강 신화를 함께 이뤄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되던 그해 12월에는 미군 장갑차에 깔려 숨진 미선이 효순이를 추모하는 수만 촉의 촛불이 시청 앞에서 타올랐고,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을 규탄하는 촛불로 번졌다.

효순이 미선이는 2007년 서울광장과 청계광장, 광화문 사거리에서 '촛불소녀'로 부활했다. 어린 여학생들이 불씨를 당겨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는 무려 석 달 동안 이어지며 한여름을 달궜다. 현정권과는 '명박산성'으로 대표되는 소통의 단절이 심해졌지만, 서울광장은 시민들 사이의 자발적 소통이 오가는 민의의 장으로 자리매김 했다.

▲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 촛불집회 ⓒ프레시안

그리고 2009년 5월 29일. 전직 대통령의 돌연한 서거를 애도하고 현직 대통령의 시대퇴행에 좌절해 새벽밥 지어먹고 전국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50만 노란색의 물결이 5월 광장의 뜨거운 역사를 다시 한 번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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