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노무현과 이건희…법치의 '윗목과 아랫목'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노무현과 이건희…법치의 '윗목과 아랫목'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 꿈꿨던 노무현이 떠난 자리엔…

삼성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 최종 선고공판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5월 29일, 마침 이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열리는 날이다.

노 전 대통령은 법을 다루는 자들이 편파적으로 휘두른 칼날에 쓰러진 사람의 한 상징이 됐다. 반면, 삼성 사건은 정반대의 상징으로 통한다.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법의 그물이, 삼성과 이건희 일가에 대해서는 한없이 느슨했다는 이야기다. 취임 당시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했던 노 전 대통령을 떠올리면, 슬픈 일이다.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과 같은 날 열리는 삼성 재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관련 기사: 이건희 수사와 박연차 수사, '극과 극')

노무현 애도 분위기와 대법원 삼성 판결

29일 온 나라가 애도 분위기에 젖어있는 동안, 대법원은 어떤 판결을 내릴까. 한 달 전, KBS는 "삼성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무죄 취지로 결론내리고 사건을 파기환송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아직 선고되지 않은 판결 내용을 미리 보도한 것이다. 이런 보도는 언론 윤리에 어긋나는 것이지만, 보도 내용의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별 논란이 없는 상태다. 무죄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런 판결에 대한 반발 목소리는 노 전 대통령 영결식에 묻혀 외면당할 가능성이 크다.

이날 대법원 판결은 같은 사건에 대한 서로 엇갈린 판결을 최종 정리하는 의미를 띠고 있다. 에버랜드 전직 사장들인 허태학·박노빈 씨가 기소된 사건에 대해 1·2심 법원은 유죄를 선고했다. 반면 같은 사건, 같은 혐의로 삼성특검에 기소된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1·2심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같은 혐의에 대해 재벌 총수는 '무죄', 계열사 사장은 '유죄' 판결을 받은 셈이다.

민병훈 재판부 "주주배정 방식이면 배임죄 불성립"

▲ 이건희 전 삼성 회장. ⓒ뉴시스
결국 최종심인 대법원으로 공이 넘어왔다. 삼성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에 대해 29일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면, 같은 사건으로 기소된 이건희 전 회장도 무죄가 최종 확정된다. 이 경우, 대법원은 삼성특검 사건에 대한 1·2심 재판부의 논리를 따를 가능성이 높다. 이 사건에 대해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의 법리를 따랐으므로, 사실상 1심 판결 내용이 기준이 된 셈이다.

지난해 7월 16일 판결이 나온 1심 재판은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3부가 맡았었다. 당시 재판을 진행한 민병훈 부장판사는 올해 초 법원을 떠나 변호사가 됐다.

1심 판결 당시, 민병훈 당시 부장판사가 취한 논리는 이렇다. "삼성에버랜드 CB를 발행하면서 에버랜드 측은 주주배정 방식을 취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을 택하면 신주발행가를 아무리 낮게 책정해도 기존 주주나 회사가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 따라서 배임죄는 성립할 수 없다."

시민단체 "사실상 제3자 배정이므로, 배임죄 성립"

판결 직후, 법학자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내놓은 반박논리는 이렇다. "회사법에 따르면, 신주 발행 시에는 객관적인 기업 가치를 반영하는 적정가로 발행할 의무가 있다. 그렇게 해야 기존 주주와 신규 주주를 평등하게 대우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평등이 깨지면 회사가 소극적이나마 손해를 입는다는 게 회사법의 취지다. 게다가 기존 주주에 비해 신규 주주가 혜택을 누린다면, 이는 이사들이 제 역할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상법 역시 신주에 대한 실제 인수가격과 공정 인수가격 사이의 차액은 회사의 손해로 파악하도록 돼 있다.

그리고, 삼성에버랜드 CB 발행에서 주주배정은 겉모습일 뿐이다. 삼성에버랜드 CB를 인수한 주주들은 곧바로 실권하여 제3자인 이재용에게 넘겼다, 이 과정에서 주주배정을 전제로 책정한 전환가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도 잘못이다. 이 경우는 사실상 제3자 배정이므로, 기업 가치가 객관적으로 반영된 적정가격을 적용하는 게 옳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에버랜드 경영진은 배임죄를 저지른 게 맞다."
▲ 지난해 7월 16일 열린 삼성특검 사건 1심 재판 풍경. 선고가 이뤄지기 직전 상황이다. 당시 재판을 진행한 민병훈 부장판사(현 변호사)는 "삼성 에버랜드 사건은 무죄"라는 소신을 공공연하게 이야기했었다. ⓒ손문상

'삼성은 무죄' 소신 가진 판사에게 굳이 재판 맡긴 이유

허태학·박노빈 씨가 기소된 사건에 대해 2심 법원이 유죄를 선고하고 4개월이 지난 뒤,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고백을 했다. 당시 김 변호사는 1996년 삼성에버랜드 CB 발행 당시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으며, 회의록도 조작됐다고 증언했다. 이런 증언대로라면, 삼성에버랜드 CB 발행 과정은 절차적인 정당성도 갖추지 못한 셈이다. 게다가 당시 증언에 따르면, 모든 과정을 삼성 비서실이 주도했다. 따라서 삼성 비서실(나중에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등으로 개편)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는 게 옳다.

하지만, 1심 재판을 진행한 민병훈 당시 부장판사는 이런 논리를 무시하고 무죄 판결을 내렸다. 물론, 재판부가 어떤 논리를 취할지는 밖에서 간섭할 일이 아니다. 민 판사는 소신에 따른 판결을 내렸을 뿐이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다. 민 판사의 소신은 공공연히 알려진 것이었다. <한겨레21>에 따르면, 민 판사는 지난 2006년 11월 5일 법원 기자실을 찾아와 "삼성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에서 배임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법원은 굳이 이런 소신을 가진 판사를 골라 재판을 맡겼다. 삼성특검 사건 1심 재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경제사건은 보통 형사합의 24부 또는 25부에 배당된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삼성특검 사건은 민 판사가 맡고 있던 형사합의 23부에 배당됐다.

삼성, 촛불, 그리고 신영철

▲ 신영철 대법관. ⓒ뉴시스
당시 민 판사에게 삼성특검 사건을 배당한 것은 허만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판사(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였다. 그리고 당시 재판이 진행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수장은 신영철 대법관이었다.

둘 다 낯설지 않은 이름이다. 이들은 최근 비슷한 일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최근 논란이 된 '촛불집회 사건 몰아주기 배당'의 두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삼성특검 사건을 굳이 "삼성은 무죄"라는 소신을 가진 민 판사에게 맡긴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촛불집회 사건을 굳이 보수 성향 판사에게 몰아줬다. 이와 더불어 신영철 대법관(당시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은 촛불집회 사건을 담당한 판사에게 메일을 보내는 등의 방법으로 재판에 개입했다.

특정 성향 판사에게 사건을 맡겨서 법원이 원하는 판결을 끌어내는 관행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난해 삼성 특검 사건과 촛불집회 관련사건을 거치며 이런 관행이 드러났다. 법관이 아무리 양심에 따라 판결을 한다 해도, 사건 배당을 담당하는 법원 수뇌부가 얼마든지 판결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 꿈꿨던 노무현

그리고 법원 고위직일수록 인사에 민감하다. 아무래도 권력의 비위를 거스르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재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변호사가 된 뒤를 생각하면, 그렇다. 재벌에 불리한 판결을 해서 '반(反)기업적'인 법률가라는 낙인이 찍히면, 높은 수입이 보장되는 대형 로펌에 취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법원장 등 고위직을 지냈던 변호사일수록 '체면'에 민감하다. 그리고 이들의 '체면'은 높은 수입이 있어야만 유지될 수 있다. 법원 고위직이 재벌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판결을 원하는 한 이유다.

이런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던 노 전 대통령의 말은 영원히 꿈으로만 남을 수밖에 없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