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대립각을 날카롭게 세우고 있는 미국부터 핵감축 조약을 제대로 이행하라는 얘기다. 아울러 그는 미국의 세계적인 영향력이 전반적으로 줄어들고 있고 아시아적 가치가 주목받을 때라고 강조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90년대 후반 동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고금리, 금융시장 개방, 긴축 재정으로 요약되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처방에 맞서 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하며 저금리, 경기부양, 외환통제를 실시해 서구에서는 '골칫덩이'로 평가되는 인사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서는 "실수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실수할 수 있다"며 "한국 사회에 굉장히 큰 손실"이라고 언급했다. 경제위기 원인으로 그는 "금융시스템을 남용했기 때문"이라고 적절한 금융규제를 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는 되지만 너는 안 돼'라는 논리 설득력 없어
28일 SBS가 주최한 서울디지털포럼에 참석한 마하티르 전 총리는 기조연설 후 따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핵무기 확산에 강한 우려를 표했다. 그는 하지만 미국의 일방적 대북압박은 적절하지 못한 대처라고 비판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지구상에 핵무기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 핵무기 뿐만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원시적인 방법의 수단이 되는 어떠한 무기도 필요없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나는 되지만 너는 안 된다'는 논리로 핵보유국가(미국)가 다른 나라를 압박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북한의 핵실험을 잘 했다 못 했다 판단하기에 앞서 이 전제를 가지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아가 "핵실험을 더는 하지 말고 기존 보유무기는 감축하자는 약속을 이미 국제사회가 했음에도 대량살상무기 보유국가들은 오히려 무기를 더 증강하고 있다. 러시아가 무기 감축 약속을 이행했지만 바로 후회할 정도였다"며 기존 핵보유국가들의 이중적인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달 열릴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아시아 국가들이 비핵화에 앞장설 계기를 만들자고 마하티르 전 총리는 주장했다. 그는 "이번 정상회의에서 아세안 국가들이 전 세계의 비핵화를 주장했으면 좋겠다"며 "핵무기는 지나치게 파괴적이다. 모기 한 마리를 잡기 위해 내 팔을 망치로 내리쳐 잡겠다는 식인데 이런 무기는 필요없다"고 했다.
▲ 강연하고 있는 마하티르 전 총리. ⓒ서울디지털포럼 |
마하티르 전 총리는 '반미주의자'로 알려진 인물답게 미국의 영향력이 점차 감소하고 아시아적 가치가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잘못을 너무 많이 저지르기 때문에 아시아뿐만 아니라 온 세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감소하고 있다"며 "미국은 자신들만의 방식을 다른 나라에 강요만 하고 인내하거나 포용하지 않았다. 미국은 그야말로 실패했다"고 말했다.
또 "오바마 정부가 이 실수를 바로잡기를 바란다"며 "(오바마는) 자연스럽게 다른 지역, 특히 동아시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실패한 미국의 대표적 예로 최근 세계를 휩쓴 경제위기를 꼽았다. 세계 최강대국에서 경제위기가 발생한 것 자체가 실패의 근거라는 뜻이다.
그는 경제위기 발생 원인으로 "디지털 시대의 우수한 인재들이 노동과 생산 없이 돈을 벌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금융시스템을 남용한 탓에 금융위기에 봉착했다"며 "물건을 만들지 않고 일자리도 창출하지 않으면서 돈만 벌었다. 제품과 서비스 제공 없이 돈만 번다면 어떤 세상이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해결책으로 "지식이 올바른 방향으로 이용되지 않으면 오히려 해를 가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금융시장의 모든 것이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안타까워…아시아 가치는 서구와 달라
한편 마하티르 전 총리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누구나 실수하고, 실수하지 않을 것 같던 사람도 실수한다. (그의 서거는) 굉장히 큰 손실"이라며 "아시아인들은 서구 사람들과 달리 감상적이라서 그런 것 같다. 아시아와 서구 간 문화적 차이가 있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해 그는 "민주주의가 운영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사람이 하기 때문"이라면서도 "많은 나라가 민주주의 운영에 실패하는 것에 비하면 한국은 성공한 나라다. 한국이 민주주의에 따라 발생하는 의견불일치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국민 2/3 이상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부가 구성되면 민주주의가 강해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성숙한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서구국가들을 보면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부 임기 동안은 인내할 줄 안다"며 "민주주의에서 비롯한 자유를 스스로 조율할 힘을 가졌느냐 여부가 민주주의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서울디지털포럼 |
그는 "오늘날 아시아는 다수를 중심에 놓는 가치관을 가져 개인주의적인 서구와 다르다"며 "개인을 중심으로 가다보면 가끔은 개인이 승리하고 다수가 실패하는 경우가 생기지만 아시아는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또 "흥미로운 것은 아시아적 가치관이 과거 빅토리아 시대 유럽의 가치관과 일맥상통한다는 점"이라며 "(다수를 중심에 놓는) 한국을 말레이시아는 성공모델로 본다"고 언급했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지난 1981년부터 2003년까지 무려 22년 간 말레이시아의 총리로 자리를 지켜, 민주적으로 선출된 총리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자리를 지킨 인물이다.
취임 당시 고무·주석 등 원재료 수출에 의존하던 말레이시아에 한국과 일본의 산업경제발전을 배우자는 '동방정책(Look East Policy)'을 펼쳐 국민의 호응을 얻었다. 말레이시아의 국가적 로드맵인 '비전2020'은 산업화 성공과 적극적인 국내 개혁정치를 통해 오는 2020년까지 선진국 반열에 오른다는 목표를 담고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