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0월 1일 준공 예정인 청계천 복원공사에 대해 장애인, 임산부, 고령자 등 교통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조영황)의 지적이 나왔다.
특히 이번 인권위의 지적은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이동권'에 대한 서울시의 무지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관련 문제에 대한 행정 당국의 인식 제고가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미 청계천을 '차별의 천(川)'이라고 명명한 장애인단체는 인권위의 지적을 환영하는 한편, 서울시가 인권위의 지적을 전면 수용할 것을 촉구했다.
***인권위 "청계천 복원공사, 장애인 이동권 보장에 미흡" **
국가인권위원회는 1일 오전 인권위 브리핑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장애인, 고령자, 어린이, 영유아 동반자, 임산부 등이 청계천에 안전하게 접근해 이동함으로써 비장애인과 함께 청계천을 이용할 수 있도록 이동권 보장에 지장이 되는 시설을 개선하라고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권고키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정강자 인권위 상임위원은 "조사결과 청계천으로의 접근성, 좁은 천변보도, 경사로와 산책로의 이동 연계성, 안내판 설치, 난간이 없는 교량, 이동이 어려운 요철 설치, 급경사 계단과 징검다리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견됐다"며 "그 중 심각하다고 판단되는 4가지 사항에 대해 서울시에 권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위가 꼽은 청계천 복원공사의 첫 번째 문제점은 장애인 등이 이동하기에 너무 좁게 공간 설계된 청계천 주변 보도다. 보도의 폭은 1.5m이지만 가로수가 심어져 있어 통행가능 유효폭은 60~70㎝에 불과한 것.
인권위에 따르면, 이는 '휠체어 사용자가 통행할 수 있는 보도 등의 유효폭은 1.2m 이상으로 해야 한다', '보행장애물을 설치하는 경우에는 장애인 등의 통행에 지장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을 위반한 것이기도 하다.
청계천 복원 과정에서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은 흔적은 이뿐만이 아니다. 청계천 산책로의 바닥 마감재료가 바뀌는 곳에 석재분리대가 높게 설치돼 휠체어 이동에 치명적 장애를 준 것도 그 중 하나. 또한 보도와 차도가 만나는 지점에 불필요한 볼라드(돌말뚝)가 설치된 점도 인권위 지적사항 중 하나였다.
또한 추락 위험이 있음에도 난간이 없거나 난간이 있더라도 너무 낮게 만들어진 구간도 있어 장애인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경우도 안전한 접근과 이동이 제한될 여지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이밖에 일부 산책로에서는 징검다리만 설치돼 있어 장애인 등의 이동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구간도 발견됐다.
이번 권고 결정은 지난달 1일부터 4차례에 걸친 청계천 현장조사, 장애인단체·환경연합 등 시민단체와 서울시 관계자, 전문가 등이 참여한 간담회를 거쳐 확정됐다.
현장조사를 담당한 김만흠 위원은 "문제점은 아주 많이 발견됐지만 가장 심각하다고 판단한 4가지 사항만 지적한 것"이라며 "서울시가 다수의 전문가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숙고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인권위-장애인단체 "계획 단계부터 장애인 당사자가 참여했더라면…"**
한편 인권위 권고 결정에서 지적에서 드러났듯, 청계천 복원 공사에서 장애인 등 교통약자에 대한 배려가 미흡했던 것은 설계 단계부터 장애인 등 당사자의 참여가 원천적으로 배제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박영희 장애여성공감 대표는 "청계천 복원공사 준비 단계부터 장애인 당사자의 참여가 있었더라면 이같은 공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며 설계 단계부터 장애인의 참여를 강조했다.
이와 관련 인권위의 한 관계자는 "조사과정에서 서울시가 장애인 참여를 고민한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이는 도시개발법 등 장애인 참여를 보장하고 있는 관계법 위반 소지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인권위 권고가 뒤늦은 사후 대책인 것은 아쉬움이 많은 대목"이라며 "행정 입안자들이 관계법만 충실히 따라도 불필요한 사후 논란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강자 상임위원도 이같은 지적에 공감을 표하며 "향후 공공사업 시행에서는 계획단계부터 사회적 약자의 참여를 보장해 차별없는 공공시설 개발이 되는 데에 이번 인권위 권고가 기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시 "장애인 당사자를 참여시킨 예를 보지 못해서…"**
한편 서울시는 이같은 인권위와 장애인단체의 지적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전면 수용은 힘들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청계천 복원사업단의 한 관계자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공사가 완료되기 전에 인권위가 조사해서 지적사항이 많이 나온 것 같다"며 "공사가 완료되면 지적 사항 중 상당 부분은 해소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예산상의 문제로 개선하기 힘든 지적사항도 있다"고 말해 인권위 지적 사항이 모두 수용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관계자는 인권위와 장애인단체가 개발 계획 단계부터 장애인 당사자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한 데 대해 "다른 공공개발 공사에서 장애인 당사자를 (계획 단계부터) 참여시킨 예를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장애인 참여는 청계천 복원공사의 첫 단계에서부터 고려되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더구나 청계천 복원공사에 앞서 일반 시민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취지로 서울시가 구성한 '청계천 복원 시민위원회'는 120여명의 시민위원이 있지만 정작 장애인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위원은 한 명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장애인단체, 이동권 보장 받기 위해 또다시 거리로…**
한편 청계천 복원공사에서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고려가 없음을 일찍부터 지적해 온 장애인이동권연대 등 장애인단체들은 서울시가 인권위 지적사항을 전면 수용할 때까지 거리 행진, 서울시청 앞 집회 등 실력행사를 전개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영희 장애여성공감 대표는 "서울시가 인권위 권고 내용을 예산상의 어려움 등의 이유로 수용하지 않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며 "따라서 인권위의 권고 내용은 환영하지만, 실질적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무력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어 "언제나 그렇듯이 장애인은 이동권을 보장받기 위해 또다시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며 "서울시가 지적사항을 전면 수용하기 전까지 거리에서 장애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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