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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장애가 아닌 '사람'에 대한 이야기"

[Film Festival] 인디포럼 개막작 <산책가> 김예영 감독 인터뷰

독립영화 감독들이 직접 꾸려가고 있는 영화제로 국내 양대 독립영화축제 중 하나인 인디포럼이 오는 29일 인디스페이스에서 막을 연다. 올해의 개막작으로는 서재경 감독의 <외출>과 김예영, 김영근 감독의 <산책가> 두 편이, 페막작으로는 박홍준 감독의 <소년마부>가 선정됐다. 현실의 고단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역동적으로 뚫고가는 에너지에 주목하는 영화들로서, 올해 슬로건인 '주먹쥐고 일어서'를 직, 간접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는 작품들이다.

날이면 날마다 사건사고가 터지는 '역동적인 한국'이라지만, 이들이 영화 속에 구현하고 있는 이야기들은 어느 한 순간 폭발하는 사건들이라기보다 연속적인 현실과 일상의 모습들이다. 폐막작 <소년마부>는 45분 가량의 중단편, 개막작들은 불과 9분 남짓의 짧은 영화들이지만, 단편영화는 장편과는 또 다른 매력을 품고 있기 마련이다. 인디포럼의 웹데일리팀 장호일 기자가 감독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 기록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이 인터뷰들을 요약해 영화에 대한 소개와 함께 싣는다. - 편집자 주

<외출>과 함께 인디포럼 개막작으로 선정된 <산책가>는 매우 놀라운 작품이다. 시각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는 영화라는 매체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감각의 전이'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고, 영화가 보여주는 낙관적이고 힘찬 에너지가 더욱 놀랍다. 영화는 시각장애인 소년이 책상 앞에서 온갖 재료를 펼쳐놓고 무언가를 뚝딱거리며 만드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병원에 입원해 누워있는 친한 누나를 위로하기 위해 자신이 잘 다니던 산책길의 조형물을 만드는 것이다. 소년은 누나에게 눈을 감고 그 조형물을 자신이 평소 다니던 산책코스 그대로 만지게 하면서 손가락이 손가락을 인도하면서 둘은 즐거운 가상 산책에 나서는 것이다. 비장애인들에게는 주로 시각으로 인지될 기억들을 후각과 청각의 기억을 따라 촉각으로 바꾼 뒤, 이를 다시 시각화하는 작업인 셈이다. 영화는 소년과 누나가 눈을 감고 지하철과 시장통, 다리를 지나는 동안 그들의 촉각을 통해 전해질 상상의 감각들을 관객에게 다시 시각으로 전달한다. 이는 온갖 빛과 색색깔의 선들이 춤추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를 위해 실험영화와 애니메이션 기법이 도입됐다.

▲ 산책가

이 영화에서 소년의 역할을 맡은 영광이는 실제로 시각장애인이자 도예가를 꿈꾸는 소년이다. 자신이 가진 특유의 낙관적이고 힘찬 에너지를 영화를 보는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해주는 비범한 재능을 지녔다. 영광이가 초대한 산책길을 함께 하다 보면, 우리는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들을 이전과는 다른 식으로 느껴볼 기회를 갖게 된다. 비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영화를 보는 것이 단지 눈만이 아니라 온몸의 감각을 모두 동원하는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시각과 청각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고는 해도, 우리의 감각은 (상상의) 촉각과 후각과 미각까지도 동원해야 영화를 온전히 즐길 수 있다. 애니메이션을 전공하고 있는 김예영, 김영근 감독의 졸업작품인 <산책가>는 원래 '산책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만들어진 제목이다.

"시각장애, 장애가 아니라 또 다르게 세상을 느끼는 방식"

▲ <산책가>의 김예영 감독

- 개막작 선정 소식을 들었을 때 어땠는지.

좀 신기했다(웃음). 우리 작품을 알아봐주고 개막작으로까지 선정해 줘서 고마웠고. 우리 작품이랑 같이 상영되는 <외출>과 폐막작인 <소년마부>를 먼저 봤는데 '와, 되게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 '주먹쥐고 일어서'라는 슬로건과 잘 어울리는 영화다. 관객들에게 영화에 대해 소개한다면.

시각장애인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한편으론 장애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장애를 부각시키기보다는 장애가 있든 없든 '사람은 서로 사랑할 수 있고 아껴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나누고 싶었다. 대체로 장애인은 도움을 받아야 되는 존재라고들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 영화의 주인공 영광이도 자기가 사랑하는 누나를 위해 뭔가 하려고 노력한다.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에이블 아트'라는 장애인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됐다. 영화 주인공 영광이도 실제로 시각장애인이고 도예가를 꿈으로 갖고 있는 친구다.

- 영광이는 어떤 친군지 궁금하다.

영광이는 부모님께서 낳으러 가는 도중에 사고를 당하셔서 '전맹(시력이 전혀 없는 시각장애인)'이 된 경우다. 그런데도 인터넷도 하고, 컴퓨터로 게임도 하고,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생활을 다 하고 있다. <산책가>에서 나레이션을 더 멋있게 못해서 아쉽다고 한다(웃음). 산책길(지도)도 영광이가 직접 기획하고 우리가 재료를 구해주고 하면서 함께 만들었다.

- 촬영준비 기간이 많이 걸렸을 것 같다. 수작업도 많은 것 같고.

시나리오 들어가기 전에 사전조사만 3개월 정도 했다. 처음에 파트너(김영근 감독)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의견이었고, 나는 감각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다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주제를 찾은 거다. 그 과정에서 시각장애인에 대해 공부도 많이 했고 그들이 가진 감각에 대해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논문도 보고, 시설같은 곳에 인터뷰도 가고. 애니매이션 작업에도 시간이 꽤 걸려서 1년 정도 만들었다.

- 시각장애인과 감각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

파트너가 예전부터 봉사활동을 많이 하다보니 원래 관심이 있었고 나는 그 친구를 통해서 관심을 갖게 됐다. 우리가 캠퍼스 커플인데, 만난 이후로는 꾸준히 같이 작업을 해오고 있다(웃음).

▲ 영광이가 직접 만든 <산책가>의 지도길

- 영화를 완성하고서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너무 많다. 사전조사를 하다 알게 된 건데 시각장애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비장애인과 많이 다르다. 그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재밌는 점이 많았다. 그런데 시나리오가 있는 작품이다 보니, 오히려 시나리오가 제약이 됐다. 우리가 생각했던 걸 충분히 다 표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많다.

- 반면 만족스러웠던 점은?

살면서 했던 작업 중 가장 큰 작업이었다는 점에서 많은 의미가 부여가 된다. 무엇보다 영광이라는 재밌는 친구를 알게 돼서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남동생이 하나 생긴 것 같아서 너무 좋다.

- 영화라는 게 시각적인 매체인 만큼 정작 영화 주인공인 영광이는 볼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이 느끼는 세상을 아름답게만 그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우리가 영광이를 비롯한 시각장애인들을 직접 만나고, 영광이가 다니는 학교에 가보면서 느낀 게 있다. 분명 어려움이 있어서 그늘이 없진 않지만 항상 인생이 어두운 건 아니지 않는가. 그들에게도 밝은 순수함과 무엇보다도 꿈이 있다. 그런 점들을 부각시키고 싶었다. 영상이 전체적으로 하얀 것도 그런 점을 의도한 것이다. 작품을 만들 때 많이 신경 썼던 게 '앞이 안 보이는 친구들은 우리 영상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었다. 원래는 대사 없이 영상만 보여주려다가 영광이의 나레이션을 넣어서 스토리 전체를 들을 수 있게 만든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밖에도 효과음에도 신경을 써서 상황들을 알 수 있게 했고. 눈으로 영상을 볼 수는 없지만, 그런 것들을 통해서 머릿속으로 더 재밌는 상상들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영화제에서 상영뿐 아니라 전시를 함게 하기도 하는데, 아주대학교에서 전시했을 때에는 산책길 지도를 만지면 그 부분에 해당하는 영상이 나오도록 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들이라도 직접 만지고 상상하면서 즐겁게 산책할 수 있도록 말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 당장은 <산책가>를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욕심이 있다. 딱히 다른 준비는 못하고 있는데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다. 이번 작품은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다른 사람 얘기를 다루면서 그걸 다시 우리들의 이야기로 만든다는 점에서 어려웠던 점이 있었다. 다음 작품은 개인적인 얘기를 다루고 싶다. 그걸 통해 나 자신을 더 잘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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