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붐비는, 눈물의 바다 '대한문 앞'
정오를 갓 넘긴 시간 대한문 앞은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다. 다만 근무 부담이 있는 데다 서울시가 서울역사박물관·서울역·성북·서대문·구로·강동·양천구청 등 총 일곱 군데에 분향소를 설치해서인지 주말처럼 서너 시간씩 기다려 조문하는 장사진이 펼쳐지지는 않았다.
서울시의회를 지나 대한문 쪽으로 접근하자 노란색과 검은색의 띠가 질서유지를 위해 마련된 통제선 곳곳에 매달린 게 눈에 들어왔다. 그 사이로 시민들은 가로수와 경찰차벽 등에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글들을 남겨놓았다.
통제선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던 시민들은 두 곳으로 나뉜 분향소에서 노 전 대통령을 기리고 대한문 앞을 빠져나왔다. 시민 일부는 분향소 옆에 설치된 '이명박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서명문'에 눈물을 머금은 채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어떤 이는 흐느껴 울었고 어떤 이는 담담히 함께 온 사람과 고인에 대한 기억을 나눴다.
여전히 자발적으로 봉사에 나선 사람들이 시민들을 통제하고 있었고, 시민들은 경찰의 걱정과 달리 질서를 잘 유지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깨지 않았다. 한 남성이 큰 목소리로 "살인자가 따로 있다. 이명박 대통령을 잡아야 한다"는 등의 소리를 질렀으나 이에 호응하는 시민은 거의 없었다.
오전 강의를 마치고 잠시 점심시간에 짬을 내 들렀다는 장혜진 씨(42, 입시학원강사)는 "언론을 통한 인민재판 때문에 돌아가신 것 아니냐"며 "평범한 사람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분이었는데 (서거하셔서)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덕수궁 앞 대한문 분향소로 가는 길 곳곳에는 노란색과 검은색 띠가 매달려 있었다. 깨알같은 글씨로 시민들은 노 전 대통령을 추억했다. ⓒ뉴시스 |
일견 어수선한 듯 하면서도 훌륭히 질서가 유지되고, 엄숙하면서도 인간미가 돋보였던 대한문 앞과 달리 서울시가 마련한 서울역사박물관 분향소 분위기는 달랐다.
서울시가 장례절차 전문회사인 H상조와 대행계약을 맺고 분향소를 차리고 정부가 의전행사를 주관했다. 덕분에 전 대통령 분향소다운 묵직한 분위기가 깔려있었으나 찾는 시민의 수는 적었다. 기자실이 따로 마련되는 등 기자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서인지 몰라도 기자들이 시민들 못지 않게 많았다. 3군 의장대가 분향시설로 가는 길에 대기해 딱딱한 포즈로 시민들에게 국화꽃을 나눠주고 있었다. 분향소에는 국화꽃이 많았으나,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에 찾았다고 해서 시민들이 설치한 분향소에서는 많이 볼 수 있었던 담배는 없었다.
방명록에 쓰인 글들에는 노 전 대통령을 기리고 그의 서거를 안타까워하는 글들 못지 않게 "OO은행 임직원 일동" 따위의 '의례적' 문구도 자주 눈에 띄었다. 이날 오전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이곳을 찾아 노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분향소 앞으로 가는 길에 'H상조'의 직원카드를 목에 건 관계자는 시민들을 일일이 안내하며 "앞으로 가셔서 국화꽃을 받으시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기자가 다가가자 "서울시가 우리 회사의 장례절차 이행 능력을 높이 산 것"이라며 연신 회사 홍보에 바빴다.
▲이날 오전 박근혜 의원을 비롯한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서울역사박물관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았다. 이곳은 주로 '힘 있는' 단체 관계자들이 '단체'의 이름으로 많이 찾는 듯 했다. ⓒ뉴시스 |
그와 인터뷰하는 도중 한 남성이 방명록을 훑으며 동료와 나지막히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대화 내용의 일부는 이랬다.
"대한문 앞은 분위기 어떻대? 거기 좌파 애들만 막 모인다던데… 한번 가볼까?"
'좌파'(가 맞는지 아닌지는 몰라도)들이 모인다는 데 대한 정서적 거부감보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분향소의 분위기가 더 궁금한 듯 보였다.
나오는 길에 앞서 대한문에서 만난 한 시민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대학생 권모 씨(25)는 "서울광장을 개방하지 않으려고 그곳에 (분향소를) 만든 것 아닌가요?"라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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