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나라 일본 역시 지금 일자리 대란으로 난리다. 기업의 투자수요가 급감하면서 수많은 일자리가 순식간에 없어진 것이다. 일자리가 사회 전체의 부가가치를 낳는 것 중 하나라는 점을 감안하면, 일자리가 없는 상황은 국가가 국민 전체의 잠재력을 충분히 끌어내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역시 우리의 장래를 위해서는 냉각된 국내수요를 회복시켜 일자리 확보를 통해 사회에 공헌해나가기 위한 기초를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현재 일본은 어느 정도의 일자리 대란을 겪고 있을까? 일본 총무성 통계국이 제시하고 있는 관련 데이터를 보면, 1990년대 초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의 실업률은 매우 급속히 상승하고 있다. 특히 청년 구직자의 실업률은 심각한 수준에 달하고 있다. 지금의 일본은 청년 10명 중 3명이 아무리 취업을 희망해도 취직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일본 청년실업의 현실은 데이터에서 나타나는 것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이 공통적인 인식이다. 일본의 실업자에 관한 통계 데이터는 실제 수치보다 작게 드러나고 있다는 악평이 일본 사회에서는 지배적이다. 예를 들어 실업 중에 일시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만으로도 일본에서는 취업자로 계산되는 반면 미국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실업자로 분류한다. 종신고용제도에 의한 이른바 '정년만을 기다리는 사내 실업자' 도 일본에는 예상 외로 많다. 대부분의 일본인 경제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일본의 실업률 공식데이터는 실제 수치의 1/2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지금 일본은 청년 10명 중 6명이 실업자 처지로부터 벗어나지 못 하고 있는 상황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혹자는 독일, 프랑스 등의 나라에서도 청년 실업이 심각하니, 이를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본의 실업률, 나아가 청년실업률은 타국에 비해 매우 급속한 상승 경향 보이고 있고, 청년들의 일자리문제가 지금보다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열심히 구직활동을 해도 취업하지 못 하는 사람들의 수입은 아무래도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만큼 국내수요 측면에서 볼 때도 악영향이 초래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일본의 청년실업률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이는 심각한 사회적 병폐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청년실업자들, 사회인의 기초를 배울 기회를 상실
이러한 심각한 청년실업의 문제는 구체적으로 어떤 부작용을 낳는 것일까? 답은 청년들이 산업숙련을 익힐 수 없게 되며 또 사회인으로서 기초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다는 것이다. 현재 일본인들은 학생들의 상식과 사회인의 상식이 매우 다르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다고 한다. 정장 구두에 흰 양말을 신으면 안 된다는 룰을 가르쳐 주는 신입사원연수와 받침 위에 서류를 올려 상사의 사인을 받아야 한다는 직계 상사의 지도와 같은 것이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학생을 '기업전사'로 만들기 위한 일상적 교육 인프라로 작용해왔다.
그런데 지금의 일본 청년들은 학교를 졸업한 후 곧바로 취직하지 못하게 되니 이와 같은 신입사원연수 등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 하고, 또 이런 이유만으로도 직장을 구하지 못 하고 있는 청년들은 당연히 기성세대의 상식으로 볼때 기본 소양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취직기회로부터도 점점 멀어지게 된 채 방치되고 있다.
▲ 일본 청년실업자들이 고용안정센터에 설치된 단말기를 통해 일자리를 검색하고 있다. ⓒ연합 |
기업 경쟁력과 구매력 저하
이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 하고 있는 청년들의 문제만도 아니다. 사회 전체적으로 심각해지고 있는 일본의 청년실업 문제는 이미 기업에 취직해 현직에서 근무하고 있는 젊은 직원들에게 그들의 후배를 데려다 주지 못 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일본의 젊은 샐러리맨들은 선배로서 후배를 가르치고 또 육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전혀 갖지 못하고 있다. 필자의 교토대 경제학부 동기인 한 지인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2000년에 마쓰시타 그룹에 입사하였는데, 입사 후 단 한 번도 회사 후배를 접한 적이 없다고 할 정도다.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젊은 직원들에게 있어서 후배를 지도한다는 것은 장래에 자신이 관리자가 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것이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러한 일본의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는 기업의 미래 역량에도 마이너스 영향만을 초래할 뿐이다. 이 역시 지금의 일본인들이 가장 크게 걱정하는 부분이다.
일본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청년실업이 일본의 경쟁력과 시장(market)으로서의 매력을 저하시키고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기업 내부의 OJT(On the Job Training)로 제대로 된 산업숙련을 몸에 익혀야 할 청년들의 절반 이상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고, 또 젊은 직원들이 후배를 양성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는 것은 일본 노동력의 질이 전체적으로 낮아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중국 역시 청년실업으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그래도 작년에 중국에서는 대졸자의 50% 전후, 약 120만 명 정도가 취업했던 반면에, 일본에서는 대졸자의 약 30% 전후, 약 18만 명밖에 취업하지 못 했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에 한정된 통계이긴 하지만, 그래도 중국에서는 인원수로 일본의 약 6배~7배 정도의 청년들이 새로운 사회인으로서의 훈련을 받고 있는 것이다. 후배를 양성하고 있는 젊은 사원의 수를 고려하면, 이는 양국 간의 매우 큰 차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학교를 갓 졸업한 젊은 샐러리맨들의 양복을 만드는 업체의 심정에서 생각해보자. 일본의 청년층의 구매력은 크게 약화되어, 시장으로서의 매력 역시 점점 상실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희망을 상실하고 있는 일본
그리고 본의 청년들은 희망을 잃고 있다. 게다가 그 희망에도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 일본의 석학 테라시마 지쓰로는 청년들로부터 희망을 빼앗아 간다는 것, 바로 이것이 일본사회에 있어서의 가장 중대한 사회적 병폐임을 지적하고 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년들은 숙련을 향상시킬 기회를 박탈당할 뿐만 아니라, 자격증 취득을 위한 비용도 제대로 확보할 수 없다. 즉 '롤 플레잉 게임(RPG)'에 대입해서 환언하면, 레벨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전혀 확보하지 못 하는 상황인 것이다.
청년 사원들 역시 취직하여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말단사원인 채로 고도의 기능과 기획력을 요하는 일은커녕 잡무에만 매달리게 됨으로써, 이들의 레벨은 전혀 올라가지 않게 된다. 또 자신의 레벨이 정체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본의 국가경쟁력 역시 약화될 수밖에 없다. 시장원리주의를 맹목적으로 표방하는 일본의 신자유주의 정치그룹들이 청년실업에 대한 전면적인 시장 외적인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일자리 대란에 시달리고 있는 젊은이들이 과연 그들 자신의 장래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지금 일본의 청년들은 정치와 정책에 대한 관심도 없고, 심지어는 취업 자체에 대한 절망감으로 인해 마약 등 범죄에까지 손을 대는 이들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일본의 청년실업은 이렇게 사회병리현상을 초래하고 있다. 또 이들이 과연 적극적으로 소비활동을 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그들의 지갑 문은 잘 열리지 않는다. 지금 일본의 소비수요가 급격하게 감소하게 된 것의 진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희망양극화 사회>라는 책을 쓴 야마다 마사히로는 청년실업에 의한 소득양극화보다도 희망의 양극화야 말로 일본을 망하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자란 지금의 젊은이들은 부족함으로 모른다는 기성세대의 지적이 있다. 그러나 옛날 젊은이들은 풍요로운 물질은 갖지 못해도, 아니 갖지 못했기 때문에 말로, 성취가능하다고 생각되는 범위 내에서 꿈을 가지며 더욱 풍요로운 미래를 희망으로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물질적인 것'과 '희망' 중에서 청년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바로 후자이지 않고 무엇이겠는가.
부자만을 위한 입시 교육제도, 재벌만을 위한 경제정책,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는커녕 지지자의 시멘트만 팔아주는 '회색 뉴딜정책'에 의해 우리 한국의 젊은이들은 희망을 잃고 있지 않는가. 우리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지기 위해서는 과연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추상적인 이념과 이론이 아닌 가까운 일본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