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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의 날을 아시나요?

[인권오름] "한국 국적 없으면, 사람 취급도 못 받나요?"

달력을 들여다보면서 '이런 날도 있구나' 싶은 날이 있다. 휴일로 지정되거나 본인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날이 아니라면 대체로 그럴 거다. 그래도 이름을 보면 대충 뭘 하겠다는 건지 짐작 할 수 있는 날들이다. 장애인의 날, 조세의 날, 바다의 날 등등. 하지만 5월 20일 구석에 박힌 세계인의 날은 무슨 날인지, 어디서부터 흘러왔는지 도무지 짐작하기 어렵다. 당신도 고개가 갸웃해 지는가?

세계인에서도 제외된 사람들

5월 20일 세계인의 날은 국가가 지정한 기념일이다. 2007년 5월 17일에 제정된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이하 재외법)'이 그 근거다. 재외법 제 4장 국민과 재한외국인이 더불어 살아가는 환경 조성을 위해 세계인의 날을 만들고 기념 주간을 지정한 것이다. 이 법에 따라 행정안전부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거주외국인지원조례를 만들 것을 하달해 전국의 거의 모든 곳에서 행안부가 만든 표준 조례안대로 지방조례를 만들어만 놨다. 아, 하는 게 또 있다. 토론회만 열심히 한다. 그리고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진행하던 소규모 다문화축제를 대규모 예산을 들인 이벤트로 바꿔내는 일이다. 이 모두는 고스란히 UN인권보고서에 이주민 인권의 성과로 기록되어 보고된다. 세계인의 날은 관이 주도하며 왜곡하고 있는 한국의 다문화 현상의 낯짝이다.

그 낯짝 두껍게 이름 지은 세계인의 날에도 원천봉쇄 되어 있는 사람들이 있다. 범국민, 동포, 시민, 우리에 끼지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세계인이라는 그 넓디넓은 자리마저도 다 빼앗긴 20만의 미등록이주민들이 그들이다. 재외법에서는 '재한외국인이란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지지 아니한 자로서 대한민국에 거주할 목적을 가지고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자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생색내는 정책마저도 존재하는 사람들을 부정한다. 존재자체가 부정되는 사람들에게 인권이, 생존권이, 행복권이, 교육권, 주거권, 문화가 존재할리 만무하다.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만의 문제는 아니다. 2008년 3월에 만들어진 다문화가족지원법도 마찬가지다. 부부 중 한명은 한국 국적을 가져야지만 다문화가족이 된다. 그렇다면 몽골부부는 단문화가족이고, 방글라데시 남성과 인도네시아 여성으로 이루어진 가족은 다다문화가족인가? 이렇게 우리는 다문화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코미디다.
▲ 방글라데시 후세인씨와 그의 아들 루루.

365일의 삶을 하루에 가두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의 오래된 풍경이 한 달 후 세계인의 날에 그대로 재방송될까 겁난다. 장애인 아동들의 음악에 눈물 흘리는 위정자와 인간다운 삶을 외치다 경찰에 끌려가는 장애인인권활동가들의 모습. 이 땅의 소수자들이 공통적으로 부닥치는 시혜와 온정의 눈물. 그 눈물은 역시나 찬방에 홀로 담겨 '아빠 제발 잡히지 마'를 읊조리고 있을 1만 7천명의 미등록 아이들을 외면하고, 다문화가족지원법이 규정하는 다문화가족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만 바라볼 것이리라. 조금 더 양보하자면 1만 7천명의 미등록 아이들 중, 학교에 다니는 1,402명에게도 푸른 지붕의 집에서 점심을 얻어먹을 기회가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이 누구인가? 우리의 몰상식 수준을 뛰어넘는 사람들이 아닌가.

장애인의 날에 갇힌 장애인 인권처럼 이주민,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하루에 가두고 관리 홍보하려는 세계인의 날이 될까 두렵기도 하다. 토끼몰이 인간사냥에 쫓기다 부상당하면 방치되고 힘에 부쳐 내쫓겼던 32,591(2008년 단속추방된 미등록이주노동자 수)명의 세계인과 그들이 두려움에 떨며 살아내야 했던 365일, 그 고단한 한국 땅에서의 이주노동이 아시아 각국 의상을 입고 환한 웃음으로 가득한 세계인의 날 하루로 포장될까 두렵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최소한의 생존권인 최저 임금마저 깎겠다는 인종차별적인 정부정책이,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노래에 감동 받은 위정자들의 눈물 한 방울에 묻힐까 두렵다.
▲ '불법사람은 없다' 캠페인

동등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가

진짜 두려운 것은 그 눈물을 우리사회가 믿을 것 같은 분위기다. 아주 오래된 단일민족국가 대한민국과 경제위기의 만남이 빚어내고 있는 묘한 분위기. 아직은 불쌍한 외국인에게 흘릴 온정의 눈물이 우리에게 남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우리는 불쌍한 외국인이 아니라 동등한 사람이고, 노동자'라고 외쳤을 때도 과연 우리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까. 한국사회에 만연한 비정규직 문제도 풀지 못하는데, 이주노동자 문제까지 해결 할 여력이 없다는 말을 곰곰이 되새겨 보자. 그대 두렵지 않은가?

(이 글은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에도 실렸습니다. <인권오름>기사들은 정보공유라이선스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정보공유라이선스에 대해 알려면, http://www.freeuse.or.kr 을 찾아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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