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정부는 이 돈을 어찌해야 할지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오히려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등 관련 기관마다 다른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특히 경제팀 수장이자 부동산 투기와 '전쟁' 의지를 밝힌 바 있는 윤증현 재정부 장관이 혼란스러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빠르게 증가하는 유동성…부동자금 850조 넘는 건 시간 문제
4월말 현재 단기 부동자금은 811조 원이다. 지난 연말 748조 원이었는데 넉달 만에 63조 원이나 늘어났다.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추가경정예산, 구조조정기금 등을 통해 돈은 계속 풀릴 예정이다. 단기부동자금이 850조 원을 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예측도 나온다.
이처럼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단기 부동자금은 부동산, 주식 등 자산시장으로만 흘러들어가고 있다. 시중에 풀린 돈이 공장건설과 설비투자 등에 쓰여야 하는데 단기차익을 노린 '투기'에만 몰리고 있다. 실물경제는 여전히 '한겨울'인데 금융시장에만 '봄바람'이 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올해 들어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 지역에서 시작됐던 부동산 과열 조짐이 최근 인천 송도 청라 지구에 '떳다방'이 다시 등장하는 등 확산되고 있다. 분양현장에서 분양권 거래를 알선하는 '떳다방' 등 기획부동산이 또다시 고개를 들자 국토해양부와 지자체 공무원들이 현장 점검에 나설 정도다.
코스피 지수도 1430선을 훌쩍 뛰어넘는 등 연일 상승가도를 달리고 있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주식시장의 기대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윤증현, 부동산 투기·과잉 유동성 '오락가락'
이처럼 단기 부동자금이 '머니게임'으로 몰리자 정부가 유동성 과잉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그러나 윤증현 장관은 부동산 투기, 과잉 유동성과 관련해 엇갈린 발언을 내놓고 있다. 윤 장관은 20일 오전 YTN과 인터뷰에서 "일부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있지만 아직 자산시장의 거품을 걱정할 단계는 아니다"면서 강남 3구 이외에 투기지역을 새로 지정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부동산 가격이 아직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접근한 정도지, 완전히 회복한 게 아니다"면서 부동산 시장에 봄기운이 도는 것은 유동성 과잉보다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와 금리인하 등 정책 효과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윤 장관은 지난 12일 취임 100일을 맞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는 강력한 부동산 투기 억제 의지를 밝혔었다. 그는 "앞으로 어느 지역이든 부동산 투기 조짐이 보이면 투기지역 지정이든, 금융규제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반드시 잡겠다"며 "우리나라는 땅이 좁고 사람은 많다보니 경제운용의 최대 아킬레스건이 부동산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투기 재발은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되며 불로소득으로 돈을 버는 것을 용납하게 되면 결국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윤 장관은 과잉 유동성 논란에 대해서도 한달여 만에 상반된 입장을 내놓았다. 윤 장관은 20일 "시중에 풀린 돈의 양이 느는데도 오히려 유통속도가 떨어지고 있어 돈이 풀렸다고 보기에는 이르다"고 과잉 유동성 논란에 대해 일축했다.
하지만 과잉 유동성 논란을 일으킨 장본인 중 하나는 바로 윤 장관이다. 윤 장관은 지난달 16일 국회에 출석해 "(현재 풀려 있는)800조 원은 분명히 과잉유동성"이라고 밝혀 논란을 촉발시켰다.
▲ 19일 오후 경기도 과천 기획재정부 청사 기자실에서 윤증현 장관이 취임 100일간 정책대응 및 향후과제에 대해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뉴시스 |
허경욱 재정부 1차관은 20일 "서울 강남 3구의 부동산 거래량이 늘고 가격도 오르고 있다"며 "국지적인 부동산 과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고 말했다.
"내년 꽃피는 봄" 위해 투기 묵인?
물론 윤 장관의 '오락가락'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린 것이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고용, 투자, 소비 등 실물경제가 아직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리인상 등을 통해 유동성 환수에 나설 경우 은행 부채가 많은 중소기업이나 가계의 도산 등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팀 수장이 시장에 혼란스런 메시지를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정책에 대한 신뢰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부동산 가격이 아직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접근한 정도"에 대해 '거품'이 아니라는 윤 장관의 인식은 매우 위험하다. 이번 금융위기 이전 수준의 한국 부동산 가격은 부동산 거품이 꺼지기 전의 일본(90년대 초)이나 미국(2007년)의 부동산 가격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이다. 일본은 부동산 총액이 연간이 GDP의 5배, 미국은 2배 정도일 때 부동산 거품이 터졌다. 반면 2006년말 한국의 부동산 총액은 GDP의 7배 정도다. 금융위기 이전 수준의 부동산 가격 자체가 이미 거품이 끼어 있는 상태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과잉 유동성이 맞다"면서 "부동산 투기를 반드시 잡겠다"던 윤 장관의 입장이 확 변한 이유는 뭘까?
윤 장관은 20일 밤 KBS <뉴스라인>에 출연해 "올해 말이나 내년 초면 경기가 회복 시점으로 들어설 것"이라며 "내년엔 꽃피는 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서 19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는 "정부 정책 기조를 바꿀 타이밍이 절대 아니다"며 "아마도 올해는 유동성을 회수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밝혔다.
윤 장관이 '내년 꽃 피는 봄'을 맞기 위한 욕심에 '올해'는 유동성을 회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게 아닐까? 적어도 올해 안에는 금리인상 등 유동성 회수가 없을 테니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단기 부동자금으로 '투기'에 나서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부동산, 주식 등을 통한 경기부양은 단기적으로는 매우 효과적이다. 하지만 '거품'은 언제가 붕괴하기 마련이고, '거품 붕괴'가 가져올 고통이 얼마나 큰지는 현재 진행 중인 세계 경제위기가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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