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문화체육관광부의 감사를 받았던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황지우 총장이 지난 19일 총장직을 사퇴했다.
황지우 총장의 사퇴는 지난해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잇따랐던 문화계 진보 인사 '물갈이'의 마지막 수순인 동시에 보수계에서 밀어붙이는 한예종 구조 개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사퇴 거부-감사-징계…김정헌, 김윤수 경우와 '닮은 꼴'
앞서 문화부는 지난 3월 18일부터 지난 1일까지 감사를 진행했다. 황 총장은 "3월 초 문화부 예술국장이 학교를 찾아와 거취를 물었다"며 "내년 2월까지 임기를 지키는 것이 학내 동요와 사회적 소음을 차단하는 길이라는 의견을 밝혔고, 이후 바로 감사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어 문화부는 지난 18일 밤 감사 결과를 한예종에 통보했다. 문화부는 황지우 총장이 학교발전기금을 유용하고, 장관의 승인 없이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며 황 총장에 대한 중징계(파면·해임·정직)를 교육과학기술부에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두고 황지우 총장은 이날 서울 석관동 한예종 캠퍼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 설립 이후 17년 연혁에서 유례가 없는 융단폭격식 감사였다"며 "감사의 최종 도착지가 총장 퇴진과 한예종 구조 개편을 겨냥한 전형적인 표적감사라는 것이 노골화됐다"고 주장했다.
황 총장은 징계 사유를 두고 "발전기금 유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다만 영수증 처리 과정에서 일부 실수가 있었고 여기에 대해서는 책임은 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과연 총장 퇴진에 이를 만큼 중대한 비리 사실인지 개인적으로 수긍이 안 된다"고 말했다.
또 승인 없이 외국 여행을 갔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몽골과 중국의 경우 휴가를 내고 다녀온 것이며 일본의 경우 휴일에 1박 다녀온 것인데 휴일이라도 외국에 가면 장관에게 보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실제로 황지우 총장에 대한 징계 추진은 지난해 사임한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사퇴를 거부한 뒤 집중 감사, 징계가 추진됐던 수순이 이번에도 되풀이된 것.
유인촌 문화부 장관도 지난 4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정부에서 임명한 기관장을 내보낸 것과 관련해 "지난 1년간은 이걸 정비하는 데 모든 역량을 쏟았다"며 부처 차원의 정책이었음을 밝힌 바 있다.
또 문화부는 황지우 총장의 사퇴 표명과 상관없이 예정대로 20일 중 징계 절차를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문화부 관계자는 "행정안전부와 교육부에 문의해본 결과 징계위원회에서 파면이나 해임 결정이 내려지면 교수직까지 내놓아야 한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보수 예술계의 한예종 '손보기' 수순?
한편, 문화부의 감사 결과가 드러나면서 이번 감사가 단순히 '코드 인사'만이 아닌 한예종의 구조 개편을 겨냥한 수순이라는 의혹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문화부는 감사 결과 12건의 주의, 개선, 징계 처분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지우 총장은 "예술과 과학기술의 통섭 교육 중지, 이론과 축소·폐지, 서사창작과 폐지 등 감사 내용이 대학 교육의 자율과 교권에 대한 침해 소지가 있다"며 "매우 섬세하고 특수한 예술교육 분야에서 아카데믹 시스템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행정관료들이 손 보려는 발상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비판했다.
황 총장은 "한예종 도약을 위한 시도가 문화부 감사에 의해 완전히 봉쇄된 지경에 이르렀다"며 "식물 상태에 빠진 총장직에 앉아있다는 것이 더이상 의미도 없고 무엇보다 나로 인해 본교에 몰려 있는 수압을 덜어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사퇴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19일 발행된 <주간미디어워치>(변희재 대표) 10호는 "부실 집단, 한예종 개혁의 깃발이 올랐다"이라는 제목으로 한예종의 감사 내용 등을 보도했다. 이 매체는 "이미 한예종 교수와, 문화예술학 전문 교수들 사이에서는 문화부의 감사 내용이 부분적으로 알려지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중도우파 문화예술인들의 모임인 (사)문화미래포럼에서 한예종의 구조조정 및 문화예술 정책 전반에 대한 개혁의 깃발을 들고 나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문화미래포럼은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 정진수 교수를 비롯해 소설가 복거일, 정용탁 전 한양대 연극영화가 교수 등이 주축이 된 단체다. 이 단체는 지난해 9월 심포지엄 등을 통해 "설립 취지에서 벗어난 한예종의 운영은 국내 예술교육 정책의 실패작이어서 구조개혁이 필요한 때"라고 주장해 왔다.
또 문화미래포럼은 오는 27일 열리는 심포지엄에서도 변희재 대표의 발제로 '한예종 개혁'을 논한다는 계획이다. <미디어워치>는 "본지 변희재 대표가 지난 6월 한예종의 진중권 씨의 강의를 듣던 학생의 제보로 시작해,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와 소속사인 <뉴데일리>, <아우어뉴스> 등이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문제점을 짚고, 한예종 설치령을 면밀히 검토하여 방만한 운영과, 무자격 교수들의 처리 방안도 제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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