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도그빌><만덜레이><어둠 속의 댄서> 등 새로운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켜 온 덴마크의 악명높은 감독 라스 폰 트리에가 이번에는 제목부터 도발적인 <앤티크리스트(Anti Christ)>란 영화로 칸국제영화제의 뉴스메이커가 됐다. AP 등 외신들은 17일 밤 이 작품의 공식시사회 때 눈앞에 펼쳐진 영상을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한숨소리와 웃음, 박수와 야유가 동시에 터져나왔다고 전했다. 시사회 때 객석에서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기로 유명한 칸국제영화제이지만 이같은 소란스런 분위기는 근래들어 매우 이례적이었다는 것.
<앤티크리스트>에는 미국 영화배우 윌렘 데포와 프랑스 여배우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익명의 부부로 등장한다. 데포가 맡은 역할은 심리 상담가이다. 영화는 이들 부부의 유일한 자식이 사고로 숨지는 순간을 보여주는 슬로모션 흑백영상으로 시작된다.
▲ 올해 칸영화제를 발칵 뒤집어 놓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신작 <앤티크리스트>의 한 장면. 윌렘 데포와 샬롯 갱스부르가 주연을 맡아 아들을 잃은 뒤 사도-마조히즘으로 물들어가는 관계를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
사뭇 우아하고 서정적인 분위기에서 시작된 영화는 도입부가 지나면 그야말로 지옥도를 펼쳐보인다. 남편은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며 약물중독에 빠진 아내를 직접 치료하기 위해 당분간 외딴 오두막에서 지내기로 하는데, 이때부터 두 부부의 상상초월 행각이 등장한다. 특히 아내는 성적으로 사도 마조히스트로 변해버리고, 자신과 남편의 육체를 칼로 난도질하는 것. 외신들에 따르면, 영화는 이 부부의 성적 행태를 노골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 스스로뿐만 아니라 서로의 육체, 특히 성기를 자해하는 장면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에 대해 일부 평론가와 언론인들은 "어떻게 경쟁부문에 포함됐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격앙된 반응을 낸 반면, 또 일부 평론가들은 라스 폰 트리에 영화답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고 AP 등은 전했다. 폰 트리에는 시사 후 기자회견에서 "(내 영화에 대해) 어떤 변명도 하지 않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앤티크리스트>가 내 영화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란 확신을 가지고 있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칸국제영화제에서 현실에 대한 어두운 비전을 담아낸 아시아 감독들의 영화가 관심을 끌고 있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 필리핀 브릴리안테 멘도자 감독의 <키나타이(학살)>, 수많은 액션영화로 잘 알려진 홍콩 두기봉 감독의 <복수>가 대표적. <키나타이>는 한 창녀가 부패한 경찰관들에 의해 성폭행 당한 후 시신마저 토막나 유기되는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영화는 한 젋은 경찰관이 행복한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으로 시작해 끔찍한 범죄로 마무리된다. 멘도자 감독은 이 영화가 실화는 아니지만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담았다는 말로, 필리핀 사회의 부패와 범죄를 고발하려 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돼 관심을 받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신작 <마더>의 한 장면. |
<복수>는 프랑스의 전설적인 팝가수 자니 할리데이가 가족을 살해한 범인을 찾아 복수한다는 내용이다. 서부영화의 고전적인 틀을 21세기로 옮겨온 듯한 이 작품에 대해 두기봉 감독은 샘 페킨파의 스타일을 재해석하려 했음을 밝힌 바 있다. 이밖에 봉준호 감독의 <마더> 역시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국사회의 내재적 폭력성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 관심을 끌고 있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20편중 17일 현재까지 공개된 작품은 1/3 정도. 이중 19세기 영국 시인 존 키츠와 패니 브라운의 사랑을 그린 제인 캠피언 감독의 <브라이트 스타>가 가장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평론가 케네스 튜란은 "내가 기억하는 한 가장 심오하게 감동적인 로맨스 영화"라고 극찬하기까지 했다. <박쥐>와 이안 감독의 <테이킹 우드스탁>은 다소 양분된 평가를 얻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편 '주목할만 시선' 부문의 <마더>에 대해 미국 영화업계지 버라이어티는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박쥐>를 제치고 <마더>가 출품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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