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중 단기 부동자금이 사상 처음으로 800조 원대를 넘어섰다. 감독당국이 나서 투기기회를 차단해야 금융시장의 착시현상을 제거하고 불확실성을 낮출 수 있다는 평가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4월말 현재 시중 단기부동자금은 총 811조3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 들어서만 63조4000억 원이 늘어난 결과이며,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진 지난해 9월말에 비해서는 92조 원 가량이 불어난 수치다.
단기 부동자금을 따로 산출하는 통계지표는 없다. 다만 통상적으로 6개월 이내 현금화가 가능한 실세요구불예금·수시입출금식예금·6개월 미만 정기예금·양도성예금증서(CD)·머니마켓펀드(MMF)·환매조건부채권(RP)·종합자산관리계좌·증권사 고객예탁금 등을 합산해 도출한다.
이 때문에 시중에 투기 기대감이 늘어나지 않을 때는 단기 부동자금에 정기예금 등을 제외하는 것이 맞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통상 금리 수준이 높고 향후 경기 불투명성이 높다면 정기예금을 해지하는(현금화하는) 민간의 수요는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급증 현상에서는 이런 전제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3월 예금은행의 정기예금 회전율은 0.4회에 달해 통계 집계가 시작된 지난 1985년 이후 가장 높았다. 그런데 증권사 고객예탁금과 자산운용사 MMF 증가율(전년동기대비)은 각각 55.4%, 34.8%에 달했다.
은행예금 가입자가 예금을 깨고 주식시장이나 투자대기성시장(MMF)으로 자금을 옮겨놓았다는 뜻이다. 투기 기대감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다.
여전히 실물경제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지 못하는 가운데 코스피지수 등 일부 금융지표가 강한 회복세를 보이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여러 부작용이 발생할 소지가 크다.
우선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의 괴리가 커져 앞으로 경기 불확실성은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 실물 경제 주체로서는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와중에도 금융시장 개선 움직임이 뚜렷해져 의사결정에 방해를 받게 되고, 정책당국에서도 부처 간 경기대응 방법을 놓고 갑론을박이 거세질 공산이 있다.
무엇보다 거품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문제다. 최근 강남권을 중심으로 이미 부동산 시장은 반등 조짐을 뚜렷이 보이는 중이다.
부동자금 급증에 대처할 방법은 두 가지다. 우선 과잉유동성을 흡수하는 방법이 있다. 중앙은행이 통안채를 발행하거나 기준금리를 높여 시중 유동성을 흡수하면 자연히 투자기대감이 부풀어오른 자금의 부피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예상되는 부작용이 커 이 방법을 쓰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지금 금리를 올리기는 어렵다. 대출 문제가 여전히 가계와 중소기업을 짓누르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 교수는 유일한 해결책으로 시장의 투기 기대감을 제거하는 것을 들었다. "투기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돼야 부동자금이 새로운 거품을 만드는 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투기기대감을 없애기 위해서는 결국 금융 부문 규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자산시장과 실물시장의 괴리가 커진 원인의 상당 부분은 규제완화가 제공했기 때문이다. 강남권 부동산시장이 규제완화 이후 강하게 회복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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