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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제 '자율'도 돈 내고 사라네요"

[김명신의 '카르페디엠'] 빈곤한 상상력으로 뭘 하겠단 건가

5월의 맑은 하늘 밑, 평일 오전인데도 동네 농구장에 초등학생이 모여 농구를 한다. 궁금해 물어보니 공원 바로 옆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의 체육 수업 시간이란다. 학생을 인솔해온 교사 말이 가슴을 때린다.

"이 동네 교육열 대단하잖아요. 얘네들 워낙 학원을 많이 다녀서 체육 안 하면 미쳐요. 일주일에 두 번, 그 중 한 번은 꼭 이렇게 농구나 축구를 해야 해요."

올해 자율형 사립고가 30개 생기게 되면 특목고, 자립형 사립고, 공립형 기숙고 등까지 다 합해 전체 고등학교의 25% 정도를 이런 학교들이 차지하게 된다. '인 서울(in Seoul) 대학' 정원과 비슷하다. 내 자녀가 이들 고등학교 그룹에 입학하지 못하면 '인 서울'은 불가능해진다는 단순한 계산이 초등 학부모를 불안케 하고 있다.

그 결과 사상 초유의 경제난에서도 사교육비가 늘고 있다. 그 중 초등학생 사교육비가 수직 상승하고 있다. 사교육비를 줄인다며 학원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가 사교육비 늘리는 정책을 아무 부담없이 양산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교육 정책의 핵심은 당연 자율과 다양성이다. '자율' 형 사립고, 공립형 '자율' 학교의 자율이 그것이고 4·15 학교 자율화조치가 그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4월 15일 학교자율화 조치를 발표한 이후 최근 제 2의 학교 자율화 조치를 발표했다.

학교 자율 안 되는 이유가 정말 '권한'이 없어서였나

그러나 한 번 보자. 지금 학교가 자율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는 입시 때문에, 작게는 구성원간 평등한 권력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권한이 없어서 문제였던것이 아니라 권한이 한쪽에만 집중되어서 사단이 났던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학교 자율화 조치는 교장의 권한을 강화하는 자율로 '자율'의 의미를 변질시키고 있다. 이는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을 강화한다며 시장의 자율을 의도적으로 중시하고 있는 것과 연결된다.

지난 7일, 학교 자율화 방안 관련 공청회가 열렸다. 자율형 사립고를 올해 30개부터 시작해 2010년에는 60개로 늘리고, 2012년까지 100개를 세운다는 것이다. 나는 2000년대 초 서울시교육청 자립형사립고 제도협의회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 당시 서울시에서 자사고 신청을 받을 때 이를 승인할 것인지를 자문하는 회의였다. 비싼 학비 부담 문제, 입시위주 학교로 왜곡될 우려 등이 제기되어 논란끝에 서울은 설립하지 않는 것으로 의견을 냈다.

그 이후 2000년대 중반 교육부의 자립형사립고 제도협의회에 참여한 적이 있다. 전국에서 6개로 시범 실시한 자립형사립고를 더 확대할 것인가를 자문하는 위원회였다. 참석 위원의 절반 정도가 앞의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결국 한 번 더 시범 실시를 하고 결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결정이 이명박 정부 들어 느닷없이 자율형 사립고 100개 설립으로 바뀌었다. 새 정부는 고교다양화 300플랜에 대해 "고교다양화 정책은 학교에 대한 획일적인 규제를 대폭 철폐하고 학교의 제도와 운영을 다양하게 해 학교 교육의 내실화를 선도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정부는 학부모들의 학교 선택권을 당근으로 주는 듯 하다. 그러나 학교를 '선택'하는 학부모들에겐 선택의 기쁨도 잠깐.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정도의 차이일 뿐 획일적 입시 교육이 이루어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지난 4월 특목고, 자사고, 국제중 입시 설명회에 참석한 학부모들. ⓒ뉴시스

아무리 뜻이 좋아도 돈 없으면 '자율'도 못해?

이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한국 교육판에서 '규제완화'와 '자율' 논리가 나온다. 자율, 참 좋은 말이다. 나도 단위학교 자율을 주장했었다. 자기 주도적 학습도 주장했었다. 개인이나 조직이 자기 스스로 통제하거나 절제해 남의 지배나 구속을 받지 않고 자기 스스로의 신념과 원칙에 따라 교육하고 학습하는 자율이 교육의 장에서 핵심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자율은 핀란드형 무학년제를 시도하는 등 교육적 상상력이 풍부한 자율이 아니라 시장의 자율, 입시교육에 올인하는 자율이 주를 이룬다. 입시교육도 자율, 국영수만 가르치는 것도 자율로 다 허락해준다는 것이다. 자율이 판치고 있지만 방향이 잘못되어 제몫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자율형 사립고는 기존의 '귀족학교'라 불리던 자립형 사립고와 비슷한 유형이다. 즉 국가의 획일적 통제에서 벗어나 교육과정, 교원 인사, 학사운영 등을 학교가 자유롭게 운영하고, 그 책무성을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에 의해 평가를 받게 하는 사립고교 운영 모형이다.

교육청으로부터 재정결함보조금을 받지않기 때문에 학생이 1000명 규모의 학교인 경우 재단전입금의 3~5%, 약 2억 원 정도를 부담해야한다. 또 등록금 상한선이 없어 일반 고교의 3배 정도 되는 등록금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재단전입금을 한해에 500만 원도 못내는 학교가 수두룩하니 재단에 돈이 있지 않으면 신청조차 불가능하다. 뜻의 자립보다는 돈의 자립을 중시하는 모양새다. 뜻이 아무리 좋아도 돈 없으면 자율도 자동 탈락인것이다.

자율형사립고, 결국 '일류고'만 부활시키는 꼴

자율형 사립고는 2009년 하반기에 학생을 선발한 후 2010년 3월부터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시교육청에 자사고 전환을 희망한다는 뜻을 밝힌 67개 학교 중 교과부가 정한 자사고 법인전입금 비율 기준인 5%를 충족하는 학교는 22곳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22개 학교는 강남·서초·노원구 등 13개 구에 몰려 있다.

특히 서울 8학군 지역에서 자율형 사립고 신청을 한 학교는 서초구의 일반계고 5개중 2곳(서문여고, 세화고)과 강남구의 11개 사립고 중 7곳(중대부고, 휘문고, 중산고, 은광여고, 숙명여고, 현대고, 중동고) 등이다. 그러나 나머지 12개 구에는 재정 기준을 충족하는 학교가 없다.

시교육청은 지역간 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서울지역 25개 구 모두 한 구에 하나씩 자사고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특정 지역에 자사고가 몰리면 지금까지 심화돼 온 지역간 교육 격차 문제만 더 심각해질 뿐이다. 예전에 고교평준화로 다 사라진 명문고는 평준화 보완 논리가 강해지면서 문과는 외국어고로, 이과는 과학고로 부활했다. 자율형사립고는 문이과를 통합한 일류고를 다시 부활시키는 꼴이다.

이미 흔들리는 '자율 논리', 정말 '자율' 하려면 제대로 하라

정부는 학부모들의 학교 선택권을 당근으로 주는 듯 하다. 그러나 학교를 '선택'하는 학부모들에겐 선택의 기쁨도 잠깐.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정도의 차이일 뿐, 획일적 입시 교육이 이루어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또 정부는 기존 사립고가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되면 절약되는 예산으로 공교육 살리기에 충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솔직히, 지금 학교에 돈이 넘쳐난다. 정부와 지자체가 사교육비 줄인다며 학원 강사를 불러다 방과 후 교육을 하라고 수억 원씩 예산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정상 수업 시간에 끝낼 것을 왜 방과후에 또 시켜 두 번씩 가르치나? 같은 부위를 두 번씩 수술하는 격이다. 국민들이 세금낼 때 고교입시 부활하라고, 공교육 정상화는 표류한 채 학원 강사 불러다 애들 잡아 놓고 과외시키라고 세금낸 것이 아니다. 학교는 학원이 아니며 공교육 정상화는 사교육비 줄이기와는 격이 다른 것이다.

'정부는 아무래도 교육 문제로 민심을 잃을 것 같다'는 수군거림이 곳곳에서 들려온다. 정부는 자율 타령을 하면서도 최근에는 대입 자율화를 후퇴시키고, 학원 시간은 규제한다고 하며, 부실 대학은 강제 통폐합시켰다. 이미 흔들린 '자율 논리'를 보면 그들에게 '자율'이 절대 불변의 논리도 아닌 듯 하다.

강조하건대, 학교 자율은 자사고 뿐 아니라 재단에 돈이 있건 없건 공립이건 사립이건 제대로 보장되어야 한다. 정부 주장처럼 자율이 그렇게 좋다면 차라리 초등학교부터 모든 학교를 자율학교로 인정해야 한다. 인색하게 재단 전입금을 3~5%씩 내는 사립고만 자율학교로 선정해주는 각박한 정책, 전국에 무학년제 하나 못만드는 빈곤한 상상력으로 무슨 자율 타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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