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부동산시장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4월말 현재 서울지역의 아파트값은 한주 동안 평균 0.29% 올랐다. 가장 많이 오른 강동구는 1주일 만에 1.21% 올랐다. 강남 3구(강남, 서초, 송파)에서 시작된 집값 상승은 서울을 넘어 경기도까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기 지역도 8개월 만에 아파트값이 소폭(0.07%) 상승했다. 분양 시장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인천 청라지구 등 서울.수도권 뿐 아니라 제주, 대전 등 지방에서도 모두 분양에 성공했다. 지난해 연말까지 부동산 시장을 지배하던 '폭락설'이 오히려 가라앉고 있는 양상이다.
이처럼 부동산 시장에 다시 훈풍이 부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이 넘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에서 돈을 계속 풀고 있고, 금리도 사상 최저(기준금리 연 2.00%) 수준이다. 또 이명박 정부는 최근 1가구 다주택자(3주택 이상)의 양도세 중과 폐지 등 부동산 규제 정책을 지속적으로 풀고 있다. 노무현 정부에서 도입한 부동산 투기 억제책 중 강남 3구 투기지역 지정만 빼고 다 풀었다.
투기가 일어날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이 다 갖춰져 있으니, 실물 경제와 무관하게 부동산 시장이 일시적으로 반등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다시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이냐, 내릴 것이냐를 놓고 논란이 불붙었다.
▲ <위기의 부동산>(부동산연구회 기획, 이정전·김윤상·이정우 외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프레시안 |
'내집 소유'의 정치적 효과
이번 미국 금융위기의 본질은 부동산 거품 붕괴다. 미국 금융시장 붕괴의 중심에 각종 파생금융상품들의 무분별한 남발이 있었다. 이 파생금융상품들을 떠받치고 있는 기반이 바로 부동산 거품이었다.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이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미 연방준비이사회(FRB)의 저금리(1%대) 정책이 이어졌고, 여기에 부시 정부는 자가 소유 비율을 높여서 '소유자 사회'(ownership society)를 실현하겠다며 지속적으로 부동산 규제를 완화했다. 이런 가운데 나온 것이 신용도가 낮은 저소득층에게도 집을 담보로 대출해주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이었다.
저금리와 주택담보대출의 확대는 주택가격 상승을 초래했고, 주택가격이 오를수록 주택담보대출 수요는 더욱더 늘어났다. 이런 사이클을 통해 커진 부동산 거품은 2005년 상반기 정점에 도달했다. 그러나 주택경기 과열을 우려한 FRB가 금리를 2006년 말 5.25%까지 올리자 부동산 거품은 붕괴되기 시작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대출을 받은 수많은 사람들이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게 됐고, 압류된 주택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택 가격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주택담보대출의 손실 뿐 아니라 이를 증권화해 만든 파생금융상품들이 휴지조각으로 전락하면서 금융위기로 전이됐다.
눈앞에서 부동산 거품 붕괴에 따른 경제위기가 펼쳐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부시 정부의 전철을 밟고 있다.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계기로 부동산 거품을 꺼트리는 쪽이 아니라 거품을 더 키우는 정책을 펴고 있다는 비판은 집권 이래로 계속됐다.
이명박 정부가 부동산 거품 붕괴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거품을 계속 키우는 이유는 뭘까?
"경기부양 효과 뿐 아니라 정치적 안정을 기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다. 주택이 워낙 연관 산업이 많고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서 주택건설을 통한 경기부양 효과는 큰 유혹이다. 이른바 부의 효과(wealth effect)는 집값이 오를수록 소비가 촉진되는 효과를 말하는데, 대부분 국가에서 이 효과가 입증되고 있다. 집값이 오른 만큼 담보대출을 받아 이를 자동차 구입에 사용한 미국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이와 함께 자가 소유자가 정치적으로 보수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이른바 신자유주의 정부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일시적 경기부양'이라는 경제적 효과도 있지만, '정치적 보수화'라는 정치적 효과도 크다는 얘기다. '강부자(강남 땅 부자) 정권'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종합부동산세(종부세) 완화 등 부동산 세제를 완화시킨 것에 대해서도 감세의 경제적 효과 보다는 지지층 결속이라는 정치적 효과를 노린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부시 정권은 '소유자 사회'를 내세워 재임 기간 내내 부동산을 통한 경기부양과 정치적 보수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듯 했지만, 결국 정권 말기 금융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정권은 상대적으로 짧은 임기(5년) 덕에 재수 좋게 거품 붕괴를 피해갈 수 있을까?
한국만 거품 붕괴를 피해갈 수 있을까
정말 위험한 '도박'이다. 부동산 거품 붕괴는 더이상 매수자가 없을 때 일어난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촉발한 거품 붕괴, 미국의 금융위기를 불러온 서브프라임모기지 파동 모두 더이상 부동산을 사고자 하는 사람이 없어지면서 발생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떤까? 외환위기 이후 빠르게 확산된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는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지난 10년간 한국의 계층구조는 중산층이 두텁고 상하층이 적은 '항아리형'에서 중산층이 줄어들고 저소득층이 늘어난 '종형'으로 변했다.
이미 소득의 양극화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동산 자산은 훨씬 더 극단적인 양극화가 진행돼 있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2005년 현재 개인 소유 기준으로 집을 가장 많이 소유한 사람은 혼자서 1083채를 갖고 있다. 2위는 819채, 3위는 577채, 4위는 512채, 5위는 476채, 6위는 471채, 7위는 412채, 8위는 405채, 9위는 403채, 10위는 341채다.
반면 한국의 평균 월급생활자가 월급을 모아 서울에서 110㎡형 아파트를 장만하려면 29년이 걸린다. 강남 아파트를 사려면 무려 44년이 걸린다. 현재 20-30대의 젊은 세대들이 월급을 모아 집 장만하는 것은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값은 계속 오르다보니 집을 산 대다수의 월급쟁이들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서 샀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가계자산의 80%가 부동산인 기형적인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런 위태위태한 상황 속에서 이명박 정부가 경제위기에 대한 단기적 대응책으로 부동산 거품을 키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부동산 거품이 커지면 커질수록 실수요자들은 집을 사기 어려워진다. 이미 투기수요가 아닌 실수요자가 집을 사는 것은 어느 정도 한계에 다다랐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위기의 부동산>의 저자들은 이제 '얼마나 지속 가능한가'로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두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땅값에 분개하지만,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서 혼자서는 빠져나올 수 없기 때문에 대출 받아서 집 사는 대열에 합류하던 것에서 벗어나 '공존'과 '지속 가능'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명박 정부는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섰는데도 여전히 '공급 부족'을 얘기하고 있지만, 과연 집값 안정을 위해 전국을 아파트촌으로 만들면 해결될 일인지도 따져봐야할 일이다.
부동산이 '욕망의 다단계 판매에서 가장 좋은 상품'으로 역할을 할 수 있는 조건이 주어지는 한 부동산 투기는 계속될 것이다. 또 부동산을 매개한 한 금융위기, 금융위기가 야기하는 경제위기의 순환 고리 역시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저자들은 예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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