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켜쥐자. 노무현은 잊고 그가 남긴 유산만 부여잡자. 노무현에게 씌워진 혐의와 그에게 쏟아지는 질타를 곱씹자. 그러면 이런 결론이 나온다.
'검찰 파이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족과 측근의 금품 수수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물증을 확보했을 경우는 상정할 필요가 없다. 나중에 이렇게 밝혀진다면 그냥 외치면 된다. 검찰의 수사역량을 높이 사면서 '검찰, 파이팅!'이라고 외치면 된다.
'검찰, 파이팅!'을 외치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아직 확정된 게 없다.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적용하려는 (포괄적) 뇌물죄를 입증할 객관적 증거가 확보됐다는 소식은 어디서도 들리지 않는다. 검찰 주변에서 나오는 얘기는 모두 '정황'이다. 부인이 받았으니까, 조카사위와 아들이 받았으니까, 오랜 친구이자 집사가 받았으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몰랐을 리 없다는 '정황'이다. 그리고 '진술'이다. 돈을 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고 줬다'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진술에 검찰이 기대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론재판은 이미 시작됐다. '조선일보' 같은 신문은 법조계 대다수가 "그가 무죄라면 앞으로 누굴 처벌할 수 있겠나"라고 입을 모은다고 보도했다.
그냥 따르자. 검찰의 수사와 여론재판을 그대로 따르고 이 과정에서 확립되는 원칙을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러면 한국의 정치문화가 한 단계 발전한다.
▲ ⓒ연합뉴스 |
널리고 널렸다. '피의자 노무현'에게 씌워진 혐의와 그에게 쏟아진 질타를 기준 삼으면 비슷한 사례는 널려있다.
검찰은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덕룡 당시 한나라당 의원 부인을 구속기소했다. 김덕룡 당시 의원 지역구인 서울 서초구청장 공천을 희망하는 사람으로부터 4억 3900여만원을 받은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하면서도 김덕룡 당시 의원은 사법처리하지 않았다. 김덕룡 당시 의원이 부인의 금품 수수 사실을 정말 몰랐다고 판단해 무혐의 처리했다.
검찰은 2004년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줄줄이 사법처리했다. 2002년 대선 때 기업들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를 적용해 줄줄이 구속기소했다. 하지만 뺐다. 이회창·노무현 당시 대선 후보는 사법처리 대상에서 제외했다. 이들은 불법정치자금 수수 사실을 몰랐다는 판단에서였다.
말이 안 된다. '피의자 노무현'에게 씌워진 혐의에 이 사례들을 대입하면 모순이 발생한다. 김덕룡 당시 의원과 이회창·노무현 당시 대선 후보가 부인 또는 측근들의 금품 수수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이것 하나만은 상식적이다. 김덕룡 당시 의원 부인에게 억대의 돈을 건넨 구청장 희망자가 부인을 보고 돈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 천문학적인 돈을 건넨 기업들이 일개 참모 의원들의 성화에 못 이겨 차떼기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검찰은 그 때 다르고 지금 다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이런 것이었을까? 검찰이 면밀히 수사한 결과 김덕룡 당시 의원이나 이회창·노무현 당시 대선 후보는 정말 금품 수수 사실을 몰랐다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었을까? 이런 판단을 뒷받침할 객관적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금품을 제공한 사람들의 진술은 어떤 것이었을까? 국회의원이나 대선 후보는 안중에도 없고 국회의원 부인이, 그리고 대선 후보 참모가 실세라 여겨서 금품을 제공했다고 진술한 것이었을까?
확인할 길이 없다. 검찰은 김덕룡 당시 의원도, 이회창·노무현 당시 대선 후보도 기소하지 않았다. 그래서 법원이 판단을 내릴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
아주 잘 됐다. 검찰이 이번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기소하면 법원의 판단이 내려질 것이고 그것이 하나의 전범이 될 것이다. 검찰은 지금 신기원을 열고 있다. 노무현의 유죄를 이끌어냄으로써 누구라도 처벌할 수 있는 판례를 만들려 하고 있다. 돈 샐 틈 없는 천라지망을 펼치려 하고 있다.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엄정한 사법기준을 확립하려는 검찰의 노고를 치하하고, 정치문화를 정화하려는 검찰의 노력을 칭송한다. 정말 '검찰,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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