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이곳에서 사학분쟁조정위원회 특별소위원회는 2007년 6월부터 공석으로 비워져 있는 상지대 이사 선임에 대한 회의를 열었다. 지난 23일 광운대에 이어 조선대에도 임시 이사를 다시 파견하기로 결정한 사분위는 현재 상지대와 세종대에 관한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두 대학에 6개월 임시이사를 재파견하는 방안을 기정사실화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년 3개월 동안 답 없더니…이제 와서 6개월 임시 이사?"
이날 열린 회의에서 사분위는 상지대 구 재단 인사인 김문기 전 이사장과 박병섭 상지대 부총장에게 임시 이사 예비 후보자 명단 17명을 제시했다. 문제가 되는 인사를 지적하면 추후 이를 반영해 임시 이사를 선임하겠다는 것. 김문기 전 이사장은 1993년 각종 비리로 징역 3년형을 받은 뒤 학교에서 물러났고 이후 10년 동안 상지대는 임시이사체제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양측 모두 이 제안을 거부했다. 박병섭 부총장은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선택할 수 없어 선택을 보류했다"며 "또 김문기 전 이사장은 임시 이사가 아닌 자기 중심의 정이사 선임을 원했다"고 말했다.
한발 더 나아가 상지대 측은 임시 이사를 파견하겠다는 사분위의 의도 자체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학교 측은 "이사 선임과 관련한 아무런 법적 권리도 없는 구 재단을 이사 선임에 관여하게 하는 것은 결국 대학교를 구 재단에게 돌려주려는 의도 아니냐"고 주장했다.
또 학교 측은 "지난해 1월부터 정이사 선임을 위한 정상화 방안을 교과부에 제출했으나 1년 3개월이 지나도록 정이사 선임을 미루다 왜 이제 와서 6개월 임기의 임시이사를 파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 30일 석탄회관 앞에는 상지대 학생과 교수들이 모인 가운데 결의대회가 진행됐다. 김문기 구재단이 배제된 이사진 구성을 촉구한 것. ⓒ프레시안 |
"6개월 임시 이사 임기, 사분위 위원 임기와 맞아 떨어져"
우영균 상지대 교수협의회 대표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의 성향이 구 재단 쪽으로 기울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6개월 단기 임기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 안에는 진보 성향의 위원이 몇 명 있다"며 "이들을 강제로 쫓아내기 부담스러우니 정부는 이들의 임기가 만료된 후 그 자리를 보수 인사로 채울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사학분쟁조정위원회 11명의 위원에는 박거용 상명대 교수,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교수 등 진보 성향의 인사가 있다. 이들의 임기는 올해 12월 27일로 만료된다. 임시 이사 임기와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우영균 대표는 "결국 보수 인사로 채워진 위원회는 구 재단 쪽에 손을 들어주지 않겠나"라며 6개월 단기 임기 이사회가 이를 위한 수순이라고 주장했다.
"구 재단 입맛대로 임시 이사 파견하려나"
정권의 성향에 따라가는 교육과학기술부의 보수화도 우려점이다. 우 대표는 "세종대의 경우 구 재단인 주명곤 전 이사장이 주장하는 사람들로 대부분 채워졌다"며 "우리 역시 그렇게 되지 말란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련의 흐름을 보면 교과부의 방향이 구 재단 쪽으로 기우는 것이 보인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임시 이사 후보 명단을 제출하면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한다.
실제 이미 임시이사 파견이 확정된 조선대의 경우 교과부 추천인사 18명 중 8명이 옛 재단과 직간접적 관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학교 측이 크게 반발했고 문제가 있던 8명의 인사가 빠진 7명이 임시 이사로 선임됐다.
세종대의 경우도 교과부가 15일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 제출한 세종대 임시이사 후보 15명 가운데에도 10~12명이 옛 재단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거나 보수 성향의 단체 인사인 것으로 나타났다.
"임시이사 파견, 대학을 혼란과 암흑으로 밀어 넣을 것"
상지대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김문기 구 재단이 퇴진한 후, 지난 16년간 상지대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며 "또 2004년 1월에는 교육부로부터 정이사 선임이 승인됐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임시이사 파견은 정상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대학을 혼란과 암흑의 구렁텅이로 밀어넣는 것"이라며 "대한민국의 사학 발전은 20년 전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만약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이런 무리수를 강행한다면 '사학분쟁조장위원회'라는 오명을 쓰고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며 민주적인 정이사 선임을 촉구했다.
한편, 사분위는 오는 5월 7일 상지대와 세종대 이사 선임에 대한 논의를 계속하기로 결정했다. 상지대 학교와 학생들은 7일 사학분쟁조정위원회에서 발표되는 결과에 따라 투쟁 수위를 조절하겠다는 입장이다.
상지대에 대체 무슨 일이? 상지대의 모태는 1962년 원흥묵 씨가 만든 재단법인 청암학원이다. 1973년 11월 청암학원 임시이사였던 김문기 씨가 청암학원을 인수한 뒤, 상지 학원으로 명칭을 바꿨다. 문제는 1990년대부터 시작됐다. 1992년 한의학과 폐지를 둘러싼 학내분규가 일어났고 1993년 3월 공금횡령과 금품수수를 통한 부정입학 등으로 김문기 이사장이 구속됐다. 이후 김문기 이사장 등 이사 전원이 사표를 냈고, 같은 해 5월 박재승 이사장 직무대행 신임이사로 선임된 것으로 논란이 일단락 된 듯 했다. 그러나 김문기 전 이사장이 업무방해죄와 특수범죄가중처벌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뒤 같은 달 사립학교법 제25조에 따라 교육부는 임시이사를 파견했다. 김 전 이사장은 1994년 3월 대법원에서 1년 6개월 형을 최종 확정 받았다. 이후 상지대는 10년간 임시이사체제를 거치게 된다. 상지대 임시이사회는 2003년 12월 변형윤, 최장집, 박원순 등 9명을 정이사로 선임해 같은 달 24일 교육부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2004년 1월 김문기 전 이사장은 '임시이사회의 정이사 선임결의 무효확인 청구'와 '이사장 직무 집행정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1심에서 모두 기각됐지만 2006년 2월 2심에서는 '정이사 선임결의 무효확인 청구'가 승소했다. 결국 2007년 5월 대법원까지 간 이 사건은 "임시이사는 임시적으로 학교의 운영을 담당하는 위기관리자로서 학교를 운영하는 경우에 한해 정이사와 동일한 권한을 가질 뿐 정이사를 선임할 권한은 없다"며 김 전 이사장 승소 판결이 확정됐다. 이로 인해 2003년 임시이사가 선임한 9명의 정이사는 모두 이사 자격을 상실했고, 이사회는 공석으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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