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양지에 고인을 묻고 민들레를 심고 싶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양지에 고인을 묻고 민들레를 심고 싶다"

[현장] 용산 참사 100일 추모제…유가족 "고맙다"

문정현 신부가 영정 사진을 들고 서 있는 유가족 앞으로 다가갔다. 문 신부는 "힘들 내라"고 격려했다.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문 신부는 가장 가까이 있던 고 윤용현의 부인 유영숙 씨의 손을 꼬옥 잡았다. 그러자 유영숙 씨는 갑자기 눈물을 쏟았다.

문정현 신부는 아무 말 없이 그를 감싸 안으며 토닥거렸다. "감사합니다"란 말이 유영숙 씨의 입에서 울먹임과 함께 흘러나왔다. 무대에서는 김남주 시인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난 29일, 용산 참사 100일을 맞은 범국민 추모제가 서울역에서 열렸다. 행사 내내 아무 말 없이 한번도 고개를 들지 않는 유영숙 씨를 비롯한 침통한 유가족의 모습은 지켜보는 이들을 더욱 가슴아프게 했다.

▲ 유영숙 씨가 입술을 질끈 깨물고 무대를 응시하고 있다. ⓒ프레시안

"4월인 지금도 서울역은 여전히 겨울"

"100일의 의미가 이렇게 차갑고 안타까운 적이 있었던가"

천주교인권위원회 김덕진 사무국장은 유가족의 심정을 대신해 이렇게 말했다. 아직까지도 다섯 명의 용산 참사 희생자는 차디찬 영안실에 있을뿐더러 유가족들이 100일 동안 진상규명을 위해 추모제, 기자회견, 항의 서한 전달 등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부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김덕진 사무국장은 "참사 이후 처음 열린 추모제가 이곳 서울역 앞이었다"며 "당시 서울역은 칼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이었지만 4월인 지금도 여전히 겨울인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고 이한열 씨의 어머니인 배은심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이 추모사를 통해 "유가족들을 보니 과거 아들의 죽음을 밝혀내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던 내 모습과 똑같다"며 "시간이 지났는데도 과거 내 모습을 국민들이 똑같이 보고 있다"고 한탄할 정도였다.

"고인을 양지바른 곳에 묻고 민들레를 심고 싶어요"

하지만 아직까지 버틸수 있었던 것은 유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용산 참사 후원금 마련을 위해 이승환, 이상은 등 인기가수들이 콘서트를 열었다. 작가 15명은 철거민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 그 수익을 용산 참사 유가족들에게 돌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시사 만화가, 예술인 등은 용산 참사와 관련한 각종 전시회를 열고 문제점을 알려냈다. 참사 현장에는 수많은 예술인들이 그린 걸개와 벽화들이 수놓아져 있다.

유영숙 씨는 이날 호소문을 통해 "고맙다는 말 밖에 드릴 말이 없다"며 "당신들이 있어서 힘들어도 견딜수 있었다"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러나 안타까운 마음은 감추지 못했다.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도리를 다하고 싶어요. 남편과 아버지를 폭력에 의해 어이없이 잃었지만 양지바른 곳에 이들을 따뜻하게 묻고 주변에 민들레를 심고 싶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거리를 헤맬 수는 없잖아요. 우리의 간절함이 여러분의 간절함이길 바랍니다. 여러분이 있어 힘이 납니다. 굽히지 않고 나가겠습니다. 도와주세요. 함께 해주세요"

이날 참석한 시민단체 대표와 종교단체 대표들의 마음도 같았다. 배은심 회장은 "용산을 잊지 않는다면 서로 잡은 손을 꼭 놓지 말자"고 이날 모인 시민들을 독려했다. 문정현 신부도 "고인들의 영전이 용산 참사 현장에 안치돼 있다"며 추모를 위해서라도 용산 참사 현장에 와줄 것을 부탁했다.

▲ 이날 추모제에는 1500명의 시민들이 참석해 서울역 광장을 가득 매웠다. ⓒ프레시안

"작은 불빛이라도 켜져야 한다. 나 역시 그 불빛이 되겠다"

이날 100일 추모제에는 15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석했다. 근래 최대 규모의 추모제였다. 참석한 시민들은 유족들의 "도와달라"는 말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대학생인 김태환(28) 씨는 "답답하고 화가 난다"며 "현실의 벽이 너무 높은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삼성 사건이나 촛불 탄압 등 일련의 검·경 수사를 지켜보면 편파적이라는 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며 "용산 참사도 예상한대로 굴러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직장인인 홍은하(36) 씨는 "100일째 유족은 같은 말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 100일을 더 같은 말을 할지 모른다"며 "언제 사태가 해결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이렇게라도 촛불이 꺼지지 않게 함께 하는게 중요하다"며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작은 불빛을 꾸준히 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경찰은 25개 중대를 서울역에 배치하고 추모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행진하는 것을 막으려 했으나 시민들이 밤 10시 경 추모제를 마친 뒤 행진 없이 자진 해산했다.

▲ 추모제 마지막 행사로 시민들이 무대에 올라 고인의 영전 앞에 국화를 바치는 추모의식이 진행됐다. 이날 준비한 국화 500송이는 금방 동이 났다. ⓒ프레시안
▲ 김미선 씨가 추모제의 시작을 알리는 살풀이를 하고 있다. ⓒ프레시안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