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일,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며 시작했던 촛불 집회가 1년을 맞는다. 100일 넘게 매일같이 계속됐던 촛불 집회는 한국은 물론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사건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 물리력을 동원한 경찰 진압은 계속되고, '촛불'이 반대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뿐만 아니라 영리법인 병원 추진, 공기업 민영화, 대운하(4대강 살리기 사업) 등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서울 광화문, 시청 광장에서 타오르던 촛불은 점차 줄어들었지만 꺼진 것은 아니었다. 기륭전자, YTN, 문화방송(MBC), 용산 참사, 각 지역 등에서 사람들은 촛불을 들었다. 그러나 2008년 광화문과 같은 촛불은 좀처럼 되살아나지 않았다. 최대 인원 100만 명을 기록한 참가자 숫자만큼, 2008년 촛불에 대한 해석은 여전히 분분하다. 촛불은 무슨 의미였나? 촛불만이 대안인가? 혹 그때의 촛불은 역풍을 몰고 온 '한여름 밤의 꿈'이었나? 촛불은 한국 사회에 희망 혹은 절망, 아니면 그 무엇이었을까? 유일무이한 경험이기에 다른 어떤 사회에서도 구할 수 없는 답을 찾기 위한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프레시안>이 당시 촛불 집회의 주인공들을 다시 만나 물었다. |
▲ 일명 '유모차부대'로 불려졌던 촛불 집회 참가자들은 곧 2008 촛불의 상징이 됐다. ⓒ뉴시스 |
"사실, 촛불을 든 사람이 '많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많이 돌려놨다. 정치에 전혀 무관심했던 사람들을."
유모차부대 카페지기 '일루'의 대답은 명료했다. 2008년 촛불 집회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이었다. 다른 대답들도 마찬가지였다. 단순명쾌한 대답과 즐거운 수다가 섞인 인터뷰가 유쾌하게 이어졌다.
어디서 많이 느꼈던 기분이었다. 지난 2008년 8월 '세상을 바꾸는 여자들' 회원들을 만났을 때도 그랬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그전까지 집회에 나오지 않았지만 지난해 누구보다 높이 촛불을 들어 주목을 받았던 20~30대 여성이라는 것. 이들의 참여는 곧 2008년 촛불 집회를 특징짓는 한 현상이 됐다.
그러나 지난 24일 경기도 분당에서 만난 일루 씨는 촛불을 들었던 시민이나 젊은이들의 특성을 하나로 묶는 시도를 경계했다. 그는 "물론 순수하고 불타는 의협심에 들끓어 온 분들도 많지만, 촛불을 들지 않으면 생각이 없고 촌스러워 보인다는 식으로 여기는 분위기 때문에 나간 이들도 많다"라며 "저도 크게 보면 그 중 하나일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화가 진행될수록 그가 촛불 집회에 참가했던 계기가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해졌다. 그의 옆에 있는 생후 25개월 아이가 정답이었다.
"아이가 아니었으면 아마 집회에 안 나갔을 거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어떤 사회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중에 '엄마는 2008년에 뭐했어' 라고 묻는데 '너 키우느라 집회 못 나갔어' 하면 너무 부끄럽잖아."
아이가 더 좋은 사회, 더 높은 삶의 질을 누리게 하고 싶다는 책임감. 그러나 지난해 경찰은 카페지기라는 이유만으로 일루 씨를 비롯해 유모차부대 회원의 집앞까지 찾아가 조사를 벌이고 소환했다. 또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장제원 의원은 유모차부대를 '아동학대죄'로 몰아가며 참고인으로 출석한 일루 씨에게 호통을 쳤다. 그렇다면 정작 그의 아이는 지난해 어땠을까?
"너무 좋아했다. 우리 애가 원래 사람들 많은데 가면 좋아한다. 다니려던 문화센터도 끊고 집회에 나가야겠다고 결심한 이유였다.
비 오는 날, 집회 현장에서 한 아이가 비 맞으며 뛰어다니는 사진이 있었다. 애들 키워보지 않은 사람들, 특히 촛불 집회에 반대하는 이들은 욕하는데, 키워본 엄마들은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다 이런 반응이었다. 집회 참가자들이 서로서로 챙겨주는 분위기 때문에 위험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서로 놀기 바쁜 놀이공원이 애들한테는 훨씬 위험한 곳이다."
"처음 나갔던 촛불 집회, 정말 재미있었다"
평소 인터넷을 자주 이용하는 일루 씨는 촛불 집회 소식을 알고는 있었지만, 정작 참석한 것은 한달 가량이 지난 지난해 5월 말경이었다. 그는 "그때 집회에서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끼리 벌이는 난상 토론이 너무 재미있어 계속 나가게 됐다"고 했다. 그는 촛불 집회가 점차 시들해졌던 이유도 다름 아니라 그 '재미'가 없어지면서였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촛불의 의미는 집회를 재미 차원으로 '끌어내린' 것이다. 진지하지 않은 사람도 집회에 왔다. 사실 촛불 집회는 어떤 면에서 '정치'가 아니었는데 뒤로 갈수록 너무 진지해졌고, 정치적 집회로 바뀌었다."
재미건, 정치건, 어쨌든 촛불 집회가 주부, 가족 단위 등 많은 사람을 불러들인 진짜 '대중 집회'였던 건 사실이다.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일루 씨는 "민주적 정부의 분위기 속에서 큰 중·고등학생이 집회를 만들었다고 봐야 하지 않나"라며 "또 전교조 등 교육운동을 학창 시절을 목격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대학 생활을 누린 30대 또래도 많이 촛불을 들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이 많이 나오기도 했다"며 "유모차 부대에도 아기를 키우면서도 먹을거리나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엄마들이 많이 참가한 편"이라고 덧붙였다.
참가자들에 대한 이러한 분석은 어쩌면 아직 '제2의 촛불'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일 듯도 하다. 그는 "용산 문제로 사람들이 또 촛불을 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뭐든지 이슈만 있으면 촛불로 끌어들이려는 주장은 특히 유모차 엄마들에게 설득력 있게 와닿지 않았다"고 말했다. 용산 참사는 분명 큰 사안이었지만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만큼 광범위한 계층을 자극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삶의 질에 대한 관심, 개인적 차원에서 주변과 사회로 확장됐다"
▲ 지난해 경찰은 유모차부대 회원들을 '아동학대죄' 등의 명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당시 남편의 직업까지 묻는 경찰을 두고 회원들은 "경찰이 시민을 협박하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뉴시스 |
"엄마들이 그전까지는 몰랐던 생활협동조합(생협)에 많이 가입했다. 또 투표도 많이 한다. 경기도교육감 선거 때 보면 직장에 다니는 젊은 여성도 기어이 투표하고 출근했을 정도니.
내게도 경기도교육감은 일생동안 세 번째로 한 투표였다. 그전까지는 투표하러 가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촛불 집회 전까지는 <PD수첩>도 보지 않았다는 일루 씨. 그렇지만 그는 가족의 건강을 위해 친환경 식품에 관심이 많았고 자연스레 환경, 전쟁 등 생명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고 했다. 그는 "촛불 이전까지 그런 관심이 굉장히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렀다면, 요즘엔 안전한 먹을거리가 어디에 있다더라 하면서 사람들과 같이 관심을 나누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서 일루 씨는 촛불 이후 부쩍 바빠졌다. 요즘도 친환경 한우 공동구매에 적극 나서서 생산자와 유모차맘들이 서로 만날 수 있게 노력한다. 인터뷰 중간중간 그의 전화기가 울리던 까닭이기도 했다.
"내게 앞으로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묻는다면 매우 어렵다. 그러나 나의 변화가 곧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일' 중 하나가 아닐까. 주변에도 좀 더 사회에 관심을 갖고, 좋은 먹을거리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러다보면 사회도 변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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