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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과 드렁큰타이거는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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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과 드렁큰타이거는 닮았다"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무엇이 세종의 시력을 앗아갔나?

의사들은 자신의 환자가 앓고 있는 질환이 어떤 과정을 밟는지 주목한다. 환자의 과거 병력은 물론 가족의 건강과 질병 상태도 꼬치꼬치 캐묻는다. 진료 과정은 바로 질환의 역사를 탐구하는 과정이다. 질환의 특성은 가장 진실한 환자의 삶, 더 나아가 그의 내면의 기록이다.

세종대왕은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이다. 이런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는 얼마나 말 못할 고통을 겪었을까? 우리는 그가 겪었던 질환을 연구함으로써 이런 고통의 한 단면을 탐구할 수 있다. 얼마 전 막을 내린 드라마의 마지막 대사는 세종에게 고통을 줬던 질병의 단서를 제공한다. "한사람의 눈먼 자가 만인의 눈을 뜨게 하였다."

이 드라마는 한글 창제를 위한 열정적인 노력 때문에 눈이 멀었다고 미화했지만 진실은 이렇다. 세종의 눈을 멀게 한 정확한 병명은 '강직성 척추염'이다. 강직성 척추염은 척추 관절의 인대와 건(힘줄)이 유연성을 잃고 굳으면서 잘 움직일 수 없는 상태를 일컫는다. 류머티즘과 비슷한 보통 청년기 남성에게 발병하는 자가 면역성 질환이다.

강직성 척추염은 인체의 조직과 기관, 조직과 조직 사이를 이어주는 결합 조직에서 생긴다. 척추 관절을 중심으로 질환이 나타나지만 다른 조직도 침범한다. 눈에 공막염, 포도막염, 홍채염을 유발한다. 근막통증증후군, 천장관절염도 생긴다. 말년에는 마미증후군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환자는 하지 저림, 발기 불능, 요실금 등을 호소한다.

<세종실록>을 보면 세종이 평생 강직성 척추염으로 고통을 호소한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우선 세종이 가장 고통을 호소했던 병인 풍질(풍습)부터 살펴보자. 세종13년 8월 18일 세종은 김종서를 불러서 자신의 풍질을 이렇게 설명한다. <동의보감>은 풍질의 증상을 "뼈마디가 아프거나 오그라들면서 어루만지면 몹시 아프다"고 적고 있다.

"내가 풍질을 앓은 까닭을 경은 반드시 알지 못할 것이다. 저번에 경복궁에 있을 적에 이층 창문 앞에서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두 어깨 사이가 찌르는 듯 아팠다. 이튿날 다시 회복되었다가 4, 5일을 지나서 또 찌르는 듯이 아프고 지금까지 끊이지 아니하여 드디어 묵은 병이 되었다. 그 아픔으로 30살 전에 매던 띠가 모두 헐거워졌다."

세종의 증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증상은 반복해서 나타나므로 일시적인 신경통과 구별되며 강직성 척추염의 근막증후군에 해당한다. 이어서 세종17년, 세종은 전형적인 강직성 척추염을 증상을 호소한다. 세종은 아래처럼 고통을 호소하며 중국 사신과의 전별연에 불참한다.

"내가 궁중에 있을 때는 조금 불편하기는 하나 예(禮)는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지금 등이 굳고 꼿꼿하여 굽혔다 폈다 하기가 어렵다."

세종의 이런 강직성 척추염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심해졌다. 세종21년, 세종은 "내가 비록 앓는 병은 없으나 젊을 때부터 근력이 미약하고 또 풍질(蹇濕)로 인한 질환으로 서무를 보기 힘들다"라고 토로한다. 강직성 척추염 때문에 일종의 고관절염과 비슷한 천장관절염이 생신 것이다.

드디어 세종21년 7월 강직성 척추염의 후유증으로 눈병이 나서 오래 문서를 보는 것을 힘겨워 한다. 세종 24년에는 온정(溫井)에 목욕한 이후 눈병이 더욱 심해졌다고 불만스럽게 말한다. 이후 이천과 온양 등지의 온천에서 병을 치료하지만 안질은 더욱 심해지고 눈의 상태는 더 악화된다.

간혹 세종이 눈이 먼 것을 놓고 소갈증, 즉 당뇨 탓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실제로 세종도 그렇게 생각했다. 세종21년, 세종은 "소갈병을 앓아서 하루에 마시는 물이 어찌 한 동이만 되겠는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당뇨병으로 유발하는 안질은 통증 없이 눈이 멀어지는 병(신생혈관 망막증)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세종이 앓았던 안질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강직성 척추염으로 생기는 안질 중에는 공막염, 포도막염, 홍채염이 있다. 공막은 전체 안구의 외부를 구성하며 각막이 6분의 1 ,공막이 6분의 5를 차지한다. 포도막은 각막과 공막의 하층인 혈관층을 차지한다. 세종을 고통스럽게 했던 눈병의 실체는 무엇일까?

온천을 다녀온 후 고통을 호소한 대목을 통해서 유추해볼 수 있다. 온천의 물은 대개 유황 성분이 짙으며 맵고 더운 기운이 강하다. 특히 온양의 초수(椒水)는 천초맛이 난다고 기록하였다. 천초는 추어탕의 냄새를 없애기 위해 넣는 향신료로 맵다. 매운맛은 각막과 공막을 자극하며 말초신경을 흥분하게 한다.

온천을 다녀온 후 안질이 더욱 심해졌다고 호소하는 것은 혈관층을 차지하는 포도막, 홍채가 아니라 외부로 노출된 공막에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 즉, 세종은 공막염으로 눈의 고통을 호소하다 시력을 잃었던 것이다. 물론 눈을 비롯한 몸의 고통을 해소하려고 다녔던 온천은 상태를 더 악화시키는 요인이었을 것이다.

가끔 종기와 임질의 질병이 세종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추측하는 이들도 본다. 기록에 의하면 세종은 매년 종기로 고통을 호소했다. 특히 세상을 떠나는 세종32년, 세종이 아닌 세자의 종기가 심하여 부자가 모두 중국 사신을 맞지 못하는 결례를 범한다. 아마 이러한 기록들이 만든 오해로 보인다.

임질은 현대적 질환인 감염성 성병과는 다르다. <동의보감>은 임질을 놓고 "심신의 기운이 하초에 몰려 오줌길이 꽉 막혀 까무러치거나. 찔끔찔끔 그치지 않고 나온다"고 쓰고 있다. 신장, 방광이 허약한 상태에서 나타나는 증상인데 강직성 척추염에서 나타나는 마미 증후군에 가깝다.

▲ 최근 가수 '드렁큰 타이거'는 "자신이 강직성 척추염을 앓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가 언급한 강직성 척추염은 바로 세종대왕을 평생 괴롭히고 결국 시력까지 앗아간 원인이었다. 한 사람은 고통을 노래로, 한 사람은 민중을 위한 한글로 승화했다. ⓒ프레시안

세종을 고통스럽게 한 강직성 척추염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유전성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의 아버지 태종이나 아들이 이 병을 앓은 기록은 없다. 지금까지 밝혀진 가장 확실한 병리기전은 자가 면역성 질환이라는 것이다. 면역은 자기를 지키는 힘이다. 크게 분류하면 외부를 지키는 국방부와 내부를 감시하는 검찰·경찰의 역할로 나뉜다.

외부에서 공격하는 것은 나와 다른 남이기 때문에 적이 쉽게 구별된다. 내부의 면역은 다르다. 예를 들면, 애초 국민을 지켜야하는 검찰·경찰이 국민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국민 입장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자가 면역 질환은 이렇게 자기를 보호해야 할 면역 기능이 오히려 독이 되는 질환이다.

이 자가 면역성 질환이 일어나는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대표적인 것은 스트레스다. 실제로 세종7년, 세종을 진찰한 중국의원 하양은 이렇게 말했다. "전하의 병환은 상부는 성하고 하부는 허한 것으로 이것은 정신적으로 과로한 것입니다. 그는 화(火)를 없애는 향사칠기탕과 양격도담탕을 처방한다.

잘 알다시피 세종은 태종의 삼남으로 태어나 왕위를 계승하였다. 외부적으로는 평온한 양위 과정이었지만 내부적인 압박감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두 형을 제치고 왕이 된 만큼 능력을 보이고자 엄청난 격무를 이겨내야만 했다. 하루 3~4시간만 잠자고 윤대, 경연, 서무를 계속한 기록이 곳곳에 기록되어 있다.

피로는 면역을 약화시켰고 스트레스는 면역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강직성 척추염이라는 자가 면역성 질환을 유발했다. 그 결과는 그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얼마 전 대중가수 '드렁큰 타이거'도 자신의 질병이 강직성 척추염임을 고백해 화제를 모았다.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질병의 고통을 잊고자 아직도 입에 알약을 털어 넣는다는 고백도 덧붙였다. 세종 역시 질병의 고통 속에서 자신의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세종의 업적보다 더 위대한 것은 질병과 싸우면서 꺾이지 않은 불굴의 의지다.

"한 사람의 눈먼 자가 만인의 눈을 뜨게 하였다. 세종의 고통을 엿보고 나니 이 말이 새삼 다르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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