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개혁을 시작한 2년 후에는 미등교 학생(연간 30일 이상 결석하는 학생)이 이전 30%에서 10% 정도로 급격히 감소한다. 학력 향상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 1년 후 성적이 낮은 학생의 학력이 대폭 향상되고 2년 후에는 성적 상위자의 학력도 향상된다."
자녀가 학교에 다니는 학부모이거나,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라면 이런 '개혁'이 있다는 말에 눈이 번쩍 뜨일 것이다. 실제 상황이라기 보다는 약장수의 말처럼 과장섞인 얘기로 들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것은 실화다.
그것도 지난 13년간 일본 내 3000여 개 학교에서 확인된 내용이다. 혹자는 '기적'이라고도 일컫는 이런 개선은 대체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
그 주인공은 도쿄대 교육학과 사토 마나부 교수다. 그가 창안한 개혁의 이름은 '배움의 공동체'이다. 한 개의 소학교(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이제 공립학교 중 10% 가량의 학교가 참여할 정도로 일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배움의 공동체' 운동을 정리한 저서는 곧 일본 내에서 베스트셀러가 됐고, 국내에도 <배움으로부터 도주하는 아이들>(북코리아 펴냄),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에듀케어 펴냄) 등으로 번역돼 나왔다. 일본 교육개혁 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사토 교수의 학교 개혁은 일본, 한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도 3년 전 대안학교인 이우학교에서 '배움의 공동체'를 도입하는 등 시범 단계에 있다.
그것은 지난 23일 서울 영등포 하자센터에서 열린 사토 마나부 교수 초청 워크숍에 사람이 몰린 이유이기도 하다. 스쿨디자인21, 좋은교사운동, 참교육연구소, 하자센터 배움공방, 함께여는교육연구소 등이 주최한 워크숍에는 250여 명이 넘는 교사, 교육 전문가, 시민단체 활동가 등이 참석해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대체 '배움의 공동체'가 무엇이고 어떻게 이뤄진 것일까? 23일 진행된 사토 교수의 강연과 인터뷰 내용을 문답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경쟁만 아는 아이들은 배우지 못한다"
▲ 사토 마나부 도쿄대 교육학과 교수. ⓒ프레시안 |
사토 : '배움의 공동체'로서의 학교란 학생들이 서로 배우면서 성장하는 학교를 말한다. 또 교사들이 교육의 전문가로서 서로 배우고, 학부모와 시민이 교육 활동에 참가해 서로 배우면서 성장하는 학교이다.
간단하지만 실현하기는 매우 어렵다. 최근 아이들은 서로 배우질 못한다. 경쟁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대신 '이건, 이런거야'라고 금방 가르치거나, 공부 못하는 아이는 '가르쳐 줘'라고만 하지 '같이 생각하자'라며 배우지 못한다.
교사도 마찬가지다. 교실을 굳게 잠그고 서로 배우려 하지 않고, 교사들이 모이면 서로 다른 교사를 욕하기 바쁘다. 교실을 열고 서로 어떻게 하는지 배우는 것은 참 하기 힘든 일이다. 부모 역시 모이면 교사을 흉보며 '연대'한다. '서로 배운다'는 것이 간단하지만 실현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프레시안 : '수업이 바뀌면 학교가 바뀐다'고 말하며 '배움의 공동체' 운동에서 수업 개혁을 강조했다. 구체적인 방법은 어떤 것인가.
사토 : '배움의 공동체'는 학생의 활동적이고 협동적이며 반성적인 배움을 조직하도록 만들어진다. 소학교 3학년 이상 모든 교실, 모든 수업에서 남녀 혼합 4명 그룹을 조직하고, 서로 가르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배우는 관계를 구축한다. 공부를 하다 모를 때 친구에게 '어떻게 하는거야?'라고 물어보는 것을 습관화하는 것이다. 수업에서 학생들은 칠판만 보는 배치가 아니라 서로 모여 앉는다.
교사는 수업을 '듣기', '연결짓기', 되돌리기'라는 세 가지 활동으로 관철시킨다. 또 목소리 톤을 낮춰 말을 엄선해서 할 것, 즉흥적인 대응으로 창조적인 수업을 할 것이 요청된다.
또한 이 책임은 교사 혼자서 지는 것이 아니라 교사, 교장, 보호자가 공유해야 한다. 쓸데없는 회의는 폐지하고 수업 관찰에 바탕을 둔 사례 연구회를 학교 경영의 중심에 둬야 한다. 모든 교사가 최소한 1년에 한 번은 동료에게 수업을 공개하고 수업 사례연구를 실시하며, 연구 내용은 교재나 교사의 지도법보다 오히려 교실에서 일어난 아이들의 배움의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
학부모와의 관계는 학기에 한 번 정도 실시하는 수업 참관을 폐지하고 학부모와 교사가 협동해 수업 만들기에 참가하는 '학습 참가'로 전환한다. 여기에는 연간 80% 이상의 학부모 참가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프레시안 : 그런 수업 개혁, 학교 개혁을 통해 일어나는 일반적인 변화는 어떤 것인가.
사토 : '배움의 공동체' 시범학교에 방문하는 이들이 가장 처음에 놀라는 것은 학교가 조용하다는 것이다. 일본 학교의 특징인 떠들썩함이나 높은 목소리, 과도한 긴장감이나 언제나 쫓기는 듯한 초조함은 사라진다. 조용하다고 해서 배움이 활발하지 않은 게 아니라 반대이다.
서로 배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겸허함이다. '저요, 저요'라고 외치는 학생이 사라지고 열심히 친구가 말하는 것을 듣고 생각하려 하는 섬세한 아이들이 키워진다.
학생은 대화하는 경험을 통해 지식을 활용, 탐구할 수 있게 되고 자기 생각을 만들고 다른 이로부터 배울 수 있게 된다. 아이와 교사들의 말과 몸짓이 부드럽고 서로 답하고 돌보는 관계가 실현된다. 다른 이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관계를 기반으로 한 협동적인 배움이 실천되는 것이다.
▲ "학생은 대화하는 경험을 통해 지식을 활용, 탐구할 수 있게 되고 자기 생각을 만들고 다른 이로부터 배울 수 있게 된다. 아이와 교사들의 말과 몸짓이 부드럽고 서로 답하고 돌보는 관계가 실현된다." ⓒ손우정 |
"1만 개 이상 수업 연구하면서 아이디어 얻었다"
프레시안 : '배움의 공동체'를 창안하게 된 배경과 동기는 무엇인지.
사토 : 대학에 부임한 이후 지난 30여 년 동안 1주일에 2~3개 학교에 꾸준히 방문해 교실을 관찰했다. 또 교사와 협동해 학교를 안에서부터 개혁하고자 했다. 이제까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특수학교를 합쳐 약 2000개 학교를 방문했고, 사례연구 대상이 된 수업은 1만 개 이상이다. 즉 학교 개혁의 아이디어와 수업을 보는 방법의 대부분은 전국 교실의 학생, 교사, 교장으로부터 배웠다.
두 번째는 국내외 개혁 사례다. 일본 국내 사례는 물론 20개 국을 방문해 조사하면서 앞서가는 사례를 배웠다. 그중 미국의 데보라 마이어가 이끈 뉴욕과 보스톤 학교 개혁, 이탈리아의 로리스 마라구치가 지도한 레지오 에밀리아의 유아 교육 실천으로부터 큰 배움을 얻었다.
세 번째는 개혁을 뒷받침하는 이론이다. 교육학이나 교육과 관련된 학문으로 수업과 학교 개혁을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문·사회과학의 모든 영역 이론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10년 넘게 '배움의 공동체' 운동을 이끌었다. 시작은 어떠했나.
사토 : 1992년 <대화적인 실천으로서의 배움-학습 공동체를 찾아서>라는 책에서 '배움의 공동체'를 처음 언급했고, 이후 니이가타현 오지야시 오지야 소학교의 개혁 사례를 바탕으로, 오지야 소학교 교장이 전임한 나가오카 미나니 중학교에 '배움의 공동체'가 파급됐다.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출발점이 된 것은 1998년 치가사키시 교육위원회가 창설한 '하마노고 소학교'였다. 이후 '배움의 공동체' 시범학교가 된 하마노고 소학교와 후지시의 가쿠요 중학교에는 매월 수백 명의 교사가 찾아왔다.
특히 가쿠요 중학교 사례가 책으로 발간된 뒤 전국 수천 명의 교사가 학교를 방문했는데, '이 책이 사실인지 아닌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는 이유였다. 오랫동안 현내에서 손꼽히는 문제 학교였던 이 학교가 '부등교 학생' 수를 36명에서 3명으로 줄이고, 시내 최저였던 학력 수준을 최고로 끌어올린 개혁이 사실이라고 믿기 힘들었던 것이다.
저 자신도 그랬다. 소학교는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중·고등학교는 안 된다고 봤는데 성공적으로 실현되는 사례를 보고 머리 속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 "오랫동안 현내에서 손꼽히는 문제 학교였던 이 학교가 '부등교 학생' 수를 36명에서 3명으로 줄이고, 시내 최저였던 학력 수준을 최고로 끌어올린 개혁이 사실이라고 믿기 힘들었던 것이다." ⓒ프레시안 |
프레시안 : 공립 학교를 중심으로 '배움의 공동체'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일본 교육에서 이 개혁이 가지는 의미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사토 : 일본에서는 1995년 이후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이 교육에도 도입됐다. 작은 정부를 추구하면서 교육을 사적 영역에 맡기고, 교육을 서비스화 해서 시장 경쟁처럼 추진한다고 했다.
결국 지난 7년간 15% 이상의 지역에서 학교 선택제를 도입했고, 2001년 이후 능력별 학급제가 도입됐다. 또 2001년 이후 90% 이상의 지자체가 표준학력테스트도 도입했다.
그러나 정작 아이들은 배움으로부터 점점 도주하고 있다.신자유주의는 빈부 격차의 확대를 가져왔고, '자유', '개성', '선택', '경쟁'을 확대하는 신자유주의 레토릭은 공교육의 위기를 만들어냈다.
아이들은 배우는 한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배우는 것은 아이의 권리, 희망의 중심에 있다. 배움의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은 인생의 희망을 박탈당하는 것과 같다.
반면 아이는 배움에서 절망할 때 너무 간단하게 무너지게 된다. 어른, 사회, 친구를 불신하게 된다. '배움의 공동체'가 표방하는 것처럼 한 명도 빠짐없이 아이들의 배움을 실현하는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기적'을 보면서 제가 배우는 점이기도 하다.
프레시안 : 한국 정부는 최근 경쟁과 자율을 표방하며 교육 개혁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또 일본에서도 최근 유토리 교육(여유 교육) 정책을 전면 수정했다는 점도 보수 언론에서 부각한다. 교육에서 신자유주의가 세계적 추세라는 것이다.
사토 : 일본 정부의 성격이 신자유주의로 가고 있는 것은 맞다. 그러나 문부과학성의 움직임은 그렇지 않다. 학습지도요령이 유토리 교육 폐지로 가는 건 맞지만 실제 학교는 그렇게 움직이고 있지 않다. 학습지도요령이 한국처럼 학교나 교사를 강력하게 제어하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차이이기도 하다.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신자유주의 전환이 일어나려 하고 있지 않나. 교육 분야에서도 종래보다 2배 이상 많은 투자를 하기로 결정됐다. 향후 10년 동안 미국의 교육은 변할 것이다. 일본도 변할 것이고 한국의 교육도 변할 것이라 본다.
그간 28개국의 학교에 가봤지만 한국, 일본, 중국, 대만 이외에 선생님이 칠판에 쓰고 학생들이 따라하는 학교는 없었다. 19~20세기에는 학교도 대량생산, 대량소비 체제와 같은 모습이었지만 21세기는 포스트산업사회, 지식 기반 사회이다. 사회가 바뀌었기 때문에 교실, 학교 환경도 새로워져야 한다. 이 흐름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학력 향상은 목표가 아닌 결과"
프레시안 : '배움의 공동체'를 실시한 학교에서 학력이 대폭 향상됐다. 이를 두고 '배움의 공동체'가 학력 향상을 목적으로 한 개혁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많을 것 같다.
사토 : '배움의 공동체'의 지향 목표는 두 가지다. 한 명의 학생도 빠짐없이 교육의 권리를 행사하는 동시에 질 높은 교육을 받는 것이다.
또 하나는 민주주의의 발전이다. 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는 곳도 학교다. 민주적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학교도 민주적이어야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민주적이어야 한다.
물론 '배움의 공동체' 학교에서 학력 향상이 많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것은 결과일 뿐 추구하는 바는 아니다. 그런 결과의 비밀에 대해서는 심지어 개혁의 비전과 철학, 방법을 설계한 나 자신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프레시안 :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에서도 '배움의 공동체' 도입이 가능한가? 또는 아이들이 학습 의욕이 없거나 특수학교의 경우에는?
사토 : 입시 때문에 어렵지 않느냐는 질문은 일본에서도 많이 받는 사안이다.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하는 학교일수록 입시 성적이 나쁘다. 그래서 큰 문제로 삼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오히려 높은 수준의 학교일수록 '배움의 공동체'에 참여하는 경향이 있다.
또 아이들의 배울 의욕이 없는 학교라면 교사와 교장이 깊이 반성해야 한다. 개혁을 하려 하는데 교사가 학생들이 의욕이 없어서 못한다고 말한다? 그를 용서해서는 안된다. 병원에 왔는데 의사가 건강해질 의욕이 없다고 하는 걸 들어본 적 있나? 그렇게 해서는 전문가가 될 수 없다.어떤 아이이든 품을 수 있는 학교가 아니면 교사가 아니다.
▲ "첫 번째는 교실을 여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교사여도 교실을 닫고 있다면 학생을 사유화하는 것이다. 아무리 부끄럽고 힘들어도 교실 여는 것이 첫 번째 스텝이다. 그걸 할 수 있으면 개혁의 70%는 이뤄진 것이다." ⓒ손우정 |
프레시안 : '배움의 공동체'는 일본이나 한국 내 기존 학교에 있는 교사에게 상당한 노력을 요구할 것 같다. 업무가 많은 교사에게 너무 버겁지 않을까.
사토 : 교사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협력하면 이상적인 학교를 만들 수 있다. 결코 꿈이 아니다. 교사의 역할은 배움의 디자이너이자 촉진자다.
물론 교사들은 저글링을 하는 것처럼 교실에서도, 교무실에서도 여러가지 일에 한꺼번에 대응하고 있다. 지금 열심히 돌리는 교사에게 또 공을 돌리라고 던지면 버거울 것이다. 어리석은 교장은 공을 모두 던지려 하다가 결국 실패하고 만다.
'배움의 공동체'를 성공적으로 도입한 학교에서는 연간 100번 이상 수업 사례 연구회를 진행하고 있다. 필요없는 회의와 잡무는 다 없앴다.
신자유주의 교육으로 인해 학생들이 배움으로부터 도주하게 되면 교사의 부담은 오히려 늘어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교사의 일을 '학력 향상'이나 '이지메'와 '부등교' 해결, '진학 실적 향상'이라는 단순하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한정하고 나아가 그 달성을 증명하고 평가받기 위한 자료 작성에 막대한 힘과 시간을 쏟는 상황에 빠지게 만들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 대한 '응답 책임'과 교사에 대한 전문가로서의 평가는 무시됐다.
프레시안 : 한국에서도 '배움의 공동체'가 가능할까.
사토 : 학교 한 개만 만들면 된다. 그 지역에 하나만 있어도 지역이 변한다. 참 힘든 일이지만 불가능하지 않다.
첫 번째는 교실을 여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교사여도 교실을 닫고 있다면 학생을 사유화하는 것이다. 아무리 부끄럽고 힘들어도 교실 여는 것이 첫 번째 스텝이다. 그걸 할 수 있으면 개혁의 70%는 이뤄진 것이다.
한국처럼 일본에도 수업 연구가 전통적으로 있다. 젊은 교사가 앞에 서고 선배 교사와 학부모 등은 구경하는 수업. 그러나 이런 공개 수업은 아무리 해도 수업이 변하지 않는다.
학교 안의 모든 선생님이 수업을 하고 서로 그 수업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개혁의 시작이다. 학교만큼 대화가 없고 독백만 차지하는 곳도 없을 것이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서로 듣고 대화하는 경험을 하면 학교가 바뀌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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