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그으면 될까? 이제 버리는 게 아니라 이미 버렸다고 주장하면 될까? 노무현 정부가 좌회전 깜빡이 켜고 우회전 할 때 이미 파경을 선언했다고 환기시키면 될까? 그러면 '노무현의 화'가 자기 쪽으로 번지는 건 막을 수 있을까?
부질없다. 개인과 계파 차원을 넘어 세력과 진영 차원에서 보면 모두 부질없는 짓이다. '나는 아니야'라고 아무리 외쳐봤자 곧이들을 국민은 별로 없다. 억울하더라도 이게 현실이다. 여론조사가 반증한다. 민주당이나 진보정당 모두 지지율 추이가 'L'자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절반이 넘는 국민이 무당파층으로 부유하고 있다. 이게 엄연한 현실이다. '바보 노무현'을 믿었던 자신을 '천치'로 생각한다. 이게 부인할 수 없는 국민 정서다.
수렁에 빠진 건 노무현만이 아니다.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린 이 또한 노무현만이 아니다.
최근에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을 거치면서 이미 부각된 현상이다. 진보개혁진영은 그 때 이미 빈사상태에 빠져있었다.
'노무현 수사' 이전에 작지만 뼈아픈 사례가 여러 건 있었다. 시민단체 간부의 횡령사건이 있었고 노동단체 간부의 성폭력 사건이 있었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 들어 '확인사살'에 해당하는 사건은 줄을 이었다. 검찰의 '노무현 수사'는 이런 흐름에 마침표를 찍는 절차일 뿐이다. 정치적 파산에 이어 도덕적 파탄으로까지 내모는 부관참시일 뿐이다.
'재건'은 절박한 과제지만 요원한 목표다. 주체가 없다. 백의종군해야 할 어떤 인사는 금의환향하고, 선명투쟁해야 할 어떤 야당은 부평에서 여당보다 더 큰 당근을 내놓기에 바쁘다. 이런 상태에선 '재건'의 뼈대는 고사하고 '재생'의 기운마저 확보할 수 없다.
그렇다고 패배주의에 빠질 필요는 없다. '박근혜 모델'이 있고 '노무현 모델'도 있다. 박근혜는 탄핵 역풍 때문에 존망의 기로에 섰던 한나라당을 구하는 방법으로 물갈이를 선택했다. 기득권을 내놓는 대신 새 피를 수혈 받아 기사회생의 단초를 마련했다. 노무현은 후보단일화 여파 때문에 자중지란 상태에 빠진 민주당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단절을 선택했다. 다수의 지원을 포기하는 대신 소수의 결속에 기대 전세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따지지 말자. 박근혜 모델과 노무현 모델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자. 박근혜 모델의 힘이 영남 지역주의에 있었는지 여부도, 노무현 모델의 힘이 탄핵 이벤트에 있었는지 여부도 따지지 말자. 그건 따로 논의할 문제다. 여기서 움켜쥐어야 하는 줄기는 하나로 족하다. 구질서와의 창조적 단절만이 '재생'을 담보하며, 단기필마의 정신만이 '재건'을 보증한다는 점이다.
노무현을 진정으로 버리는 방법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노무현은 버리되 '바보'의 초심은 이어가는 것이다. 단기필마의 정신으로 구질서와의 단절을 선언하는 또 다른 '바보'를 감별하거나 세우는 것이다.
시발점은 이미 열려 있다. 4.29재보선이다. 단절을 선언해야 할 구질서가 무엇이고 청산해야 할 구인물이 누구인지를 1차로 가려내는 데 4.29재보선은 손색없는 시연장이다. 세력의 흥망보다 개인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행태, 정권 심판보다 표심의 이익에 영합하는 행태, 대의의 응집보다 정파의 이해에 함몰하는 행태가 투표일까지 이어진다면 그렇다. 다른 건 몰라도 배제·청산의 대상이 무엇인지만은 분명하게 보여줄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 |
* 이 글은 뉴스블로그 '미디어토씨(www.mediatossi.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