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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속도, 너무 빨라 기록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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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속도, 너무 빨라 기록할 수도 없다"

[질주] 우리의 소박한 질주를 응원해 주세요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쫓겨나고 있다. 쫓겨나지 않으면 임금이 깎인다.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고통 분담이라는데 노동자 혼자 모든 고통을 짊어지는 모양새다.

왜 나만 이토록 고통스러워해야 할까?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등이 자전거를 타고 전국을 순회하는 이유다. '질주'팀은 "누구도 우리를 대변하지 않기에 스스로를 대변하려 한다"고 이번 순회의 이유를 밝혔다.

21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되는 '질주'의 오늘을 르포작가 이선옥 씨가 <프레시안>에 연재한다.

2009년 4월 21일 오전 11시, 청와대 들머리에 너희가 아닌 우리의 세상을 향해 열흘 동안 '질주'를 함께 할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이젠 징하다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는 낯익은 기륭 해고자들, 서산의 동희오토, 구미의 코오롱, 시설노조,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용산대책위의 시인, 민교협의 교수, 그리고 촛불 시민까지 백인백색의 사람들이 몸으로, 마음으로 이 질주를 함께 하기 위해 모였다. 이들은 열흘 동안 전국을 돌면서 세상을 향해 비정규직의 목소리를 들려줄 계획이다.

모르거나, 모른척 하거나, 혹은 잊은 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오늘 이 시대를 함께 살고 있는 우리 이웃들의 고통과 상처에 대해 말하면서 신나게 자전거도 탈 생각이다. 여의도에 벚꽃이 활짝 핀 게 엊그젠데 언제 봄이었나 싶을 정도로 날씨는 추웠다. 시샘하듯, 탄압하듯 날씨마저 우리 편이 아니다. 하지만 그러면 어떤가. 추운 겨울을 서로의 체온 하나로 몇 해 째 버텨온 동지들이 함께 있어 춥지 않다.

출발 선포식을 마친 후 이들이 서둘러 닿은 곳은 대구의 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 열린 이주노동자집회였다. 질주단을 실은 대형버스가 집회장에 닿자 서울에서 온 귀한 손님들이라며 대구지역의 동지들이 반갑게 맞아준다. 얼마 전 중국에서 온 이주노동자 여성을 출입국관리소의 관리가 무차별 폭행으로 끌고 가는 장면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또 다시 이주노동자에 대한 폭력단속과 추방이 도마에 올랐다. 오늘 대구지역도 단속에 걸린 이주노동자들을 대구출입국관리소가 가둬놓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급하게 진상조사와 규탄을 위한 집회를 연 것이다. 꿈쩍도 하지 않는 법무부와 노동부를 상대로 허공에 날리고 말 메아리일지언정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함께 싸우는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든든하다.

질주단을 맞이하기 위해 특별히 한적한 오후 시간에 집회를 잡았다는 대구 지역의 연대동지들은 이들이 도착하자 바로 집회준비로 부산해진다. 그림인지 글씨인지 모를 낯선 언어로 쓰여진 피켓을 들고 어디가 위인지를 묻는 한 조합원의 물음에 작은 웃음들이 터진다. 위로 들어도 아래로 들어도 낯설기만 한 문자들, 그러나 '아, 이것이 글씨구나!' 하는 정도의 깨달음과 공감만으로도 이미 그들은 하나였다. 어느 나라의 언어든 그 나라에서 건너 온 이주노동자들의 염원을 담은, 혹은 그들의 정당한 주장을 담은 글씨려니 하는 생각으로 뜻 모를 피켓을 들고 함께 이 자리를 지키는 이들. 수십 가지 '다름'은 이처럼 한 가지 작은 '공감'으로도 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 이들은 그걸 알고 있었다.

▲그림인지 글씨인지 모를 낯선 언어로 쓰여진 피켓을 들고 어디가 위인지를 묻는 한 조합원의 물음에 작은 웃음들이 터진다. 위로 들어도 아래로 들어도 낯설기만 한 문자들, 그러나 '아, 이것이 글씨구나!' 하는 정도의 깨달음과 공감만으로도 이미 그들은 하나였다. ⓒ질주

한바탕 격려와 연대와 규탄의 발언들이 끝난 후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에서 출발할 땐 10여 명이었던 규모가 대구에서 두 배로 늘었다. 이웃인 구미의 코오롱 해고자들, 포항에서 온 DKC지회와 진장스틸 해고자들, 서산에서 출발해 온 동희오토 사내하청 지회, 노래패 좋은 친구들, 대구지역본부 간부들, 건설노조 간부들이 속속 결합했다. 이들은 건설노조가 마련한 잠자리에 모여 질주 첫날에 대한 얘기들을 풀기 시작했다.

예전엔 1년만 투쟁해도 '장투(장기투쟁)사업장' 소리를 들었는데, 이제 1년 투쟁 정도로는 기륭이나 코오롱 앞에서 장투 축에도 못 낀다는 우스개 아닌 우스개 소리를 들으니 다시 마음이 아프다. 원직복직은 솔직히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싸우는 과정에서 재벌이 마음대로 정리해고 하지 못하도록 한 것에 의미를 갖는다는 어느 해고자처럼,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참 잔인한 일상들을 견디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웃으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위무한다.

처음 들어보는 해고 사업장들도 많았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요즘이지만,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비정규직화와 해고는 빛의 속도로도 따라잡지 못할 만큼 정말 정신없이 일어나고 있다. 기록이 미처 상황을 좇지 못할 만큼 힘겨운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목소리와 삶을 담는 작업이 필요하다. 비록 열흘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당사자들과 함께 하면서 이들의 투쟁과 삶을 충실하게 기록하는 것만이, 통계조차 남지 않고 사라진 수많은 해고자와 비정규직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작은 몸짓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 여럿이 함께 첫걸음을 뗐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너희가 아닌 우리의 세상을 향한 질주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질주하는 사람들 "내가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법을 노조가 가르쳐 줬다"

숙소인 대구지역건설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청년 4명이 눈에 띄었다. 포항에서 온 금속노조 DKC지회와 진방스틸코리아 지회의 해고자들이다. 작년부터 32명 집단해고, 집단승소로 전원복직, 다시 26명 해고라는 드라마틱한 상황을 겪고 있는 포항의 진방스틸코리아 해고자 홍승만(30) 씨를 만났다.

▲ 작년부터 32명 집단해고, 집단승소로 전원복직, 다시 26명 해고라는 드라마틱한 상황을 겪고 있는 포항의 진방스틸코리아 해고자 홍승만(30) 씨를 만났다. ⓒ질주
- 진방스틸코리아는 어떤 상황인가?


"모건스탠리라는 외국자본이 주인이었다가 2008년도에 한국주철관이라는 한국자본이 인수한 회사다. 쉽게 말하면 비닐하우스의 파이프를 만드는 회사라고 보면 된다.

한국주철관으로 경영자가 바뀌면서 바로 노조파괴와 해고가 시작되었다. 2008년 6월 20일 100명 정도 되는 조합원 중에 32명이 집단으로 정리해고 되었다.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였는데 조합원들 가운데 활동이 활발한 조합원들을 주로 추려서 해고했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가 인정되어 전원 복직을 했다. 그런데 복직된 지 한 달 만에 또 다시 26명이 해고됐다. 이번에는 지노위에서 져서 중앙노동위원회 제소를 준비 중이다."

- 회사가 내세운 이유는?

"모건스틸코리아 때 회사가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조합과 회사 사이에 별 문제가 없었다. 한국주철관이 인수 후에 천억 원대의 흑자를 내기도 했다. 고용승계를 약속하고 인수했는데 인수하자마자 노조지회장부터 간부들을 전원 해고했다. 실제로 노조탈퇴서만 쓰면 구제해 주겠다는 회유가 많았다."

- 지금 해고자들은 어떤 상황인가?

"공장 안에 천막을 치고 농성 중이다. 우리 사업장의 조합원들은 모두 정규직이었는데 집단 해고 후 인원이 줄고 노동 강도가 높아졌다. 비정규직화 하기 위한 전단계로 가고 있다. 회사와 노조의 약속인 단협도 일방적으로 해지해버렸다. 막말로 우리가 쇠파이프 만드는 회사인데(웃음) 파이프 한 번 안 들고 적법, 준법 쟁의만 해왔다. 너무나 억울하고 부당한 탄압이어서 조합원들이 같은 마음으로 싸우며 견디고 있다."

- 하고 싶은 말?

"노조 활동을 하면서 내가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노조를 몰랐다면 이런 일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몰랐을 텐데 내가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법을 노조가 가르쳐줬다. 자본이 가장 잔인한 것은 사람을 갈라놓는 것이다. 20년 지기 동료가 하루아침에 적이 되었고, 가족과 친척인 사람들이 노조 탈퇴 공작으로 다른 편에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이런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프다. 정말 가슴 아프다.

어떻게든 우리의 싸움을 알리고, 끝까지 싸워서 이런 비인간적인 현실을 바꿔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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