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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가 뿔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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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가 뿔났다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 무소의 뿔

불교의 원시 경전 <수타니파타>에 나오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공지영 작가의 동명 소설이 큰 인기를 끌면서 많은 사람에게 삶의 격언으로 회자된다. 최근에는 정동영 씨가 민주당을 탈당하면서 똑같이 말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정동영 씨는 탈당이 여간 고민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소의 뿔은 코뿔소의 뿔을 말한다. 예로부터 코뿔소는 소, 양 등 두 개의 뿔이 달린 동물과 비교해서 뿔이 하나밖에 없어서 영묘한 동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인도·자바·수마트라계 코뿔소는 뿔이 한 개지만, 아프리카계 코뿔소는 콧잔등에 뿔이 하나 더 있다.

▲ 어미와 함께 산책을 즐기는 새끼 흰코뿔소. 뿔이 두 개인 아프리카계 코뿔소는 검정코뿔소와 흰코뿔소로 날린다. 그러나 이름과 달리 흰코뿔소가 흰색은 아니다. ⓒAP=뉴시스
아프리카계는 검정코뿔소와 흰코뿔소로 나뉜다. 이름과는 달리 둘 다 색만으로는 구별이 쉽지 않다. 두 종류의 차이는 먹는 방식에 있다. 검정코뿔소는 긴 풀, 관목의 나뭇잎 등을 부리처럼 생긴 입 끝으로 뜯어 먹는다. 반면 흰코뿔소는 지면의 잎을 뜯어 먹는다. 식성이 달라서 입의 모양이 다르게 진화한 것이다.

코뿔소는 종종 정치의 상징으로도 등장한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정조 때 '영서(靈犀)'라고 불린 코뿔소의 기록이 남아 있다. 보통의 코뿔소 뿔은 가운데가 빈 것이 아니라 섬유질로 꽉차있다. 그러나 영서는 특이하게도 뿔 가운데 구멍이 있었다. 이런 영서는 백성과 임금 사이에 의사가 서로 통하고 의기투합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렇게 오랫동안 영묘한 동물로 여겨졌던 코뿔소가 최근 진짜 뿔이 났다. 뿔을 약재로 많이 사용하는 바람에 멸종위기에 처한 것이다. 당장 한약 중에 가장 잘 알려진 우황청심환의 주요 성분 중에도 코뿔소의 뿔인 서각이 들어간다. 불안, 가슴의 두근거림, 중풍을 진정시키는데 쓰이는 우황청심환의 약효의 상당 부분은 서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로 서각은 열을 내리고, 정신을 맑게 하는 효과가 있다. 한약에 관한 최고의 고전 <신농본초경>은 서각을 놓고 "맛은 쓰고 기는 차다. 백 가지 독, 전염성 기운, 귀신·도깨비에 홀리지 않게 한다"라고 쓰고 있다. 마치 영화 <엑소시스트>의 수도사가 악령을 쫓아내는 데 쓰는 신비한 약재처럼 묘사를 해놓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서각을 신비롭게 묘사한 데는 그것을 추출하는 지난한 과정도 한몫했을 것이다. 코뿔소 뿔은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뿔이다. 약재로 사용하려면 줄톱으로 갈아야만 하는데 그 과정이 여간 어렵지 않다. 예전에는 그 강도를 약하게 하려고 밤새 겨드랑이 밑에 감싸서 어느 정도 물러진 후에야 갈 정도였다. (겨드랑이는 심장의 경락이 지나간다. 가장 뜨거운 기운이 흐르는 곳에서 가장 차갑고 단단한 서각을 녹였던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여러 가지 이유 탓인지 한의사 사이에 떠도는 서각을 사용한 임상 경험담에는 부풀린 게 많다. 중풍 환자에게 서각을 먹이고 CT를 찍었는데 뇌출혈이 멈췄다는 둥, 백혈병에 걸린 어린이가 완치됐다는 둥…. 다 전설 같은 이야기다. 뛰어난 약효에 더해서 이런 믿지 못할 이야기들이 코뿔소 씨를 말리고 있는 것이다.

글머리에 언급한 <수타니파타>의 원문은 이렇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렵혀지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여기서 무소의 뿔은 어떤 고통도 자기 스스로 고독하게 극복하리라는 통렬하고 냉철한 자기 각성을 뜻한다.

우리에게 지금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바로 코뿔소의 뿔이 아니라 바로 이 코뿔소의 지혜가 아닐까? 이런 코뿔소의 지혜만 있다면 우리를 둘러싼 온갖 불안을 야기하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황청심환의 약효에 기댈 일도 적어질 테니 코뿔소가 뿔날 일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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